◐ 만화서평(書評) ◑

48+1 - 허영만

스파이크(spike) 2007. 11. 9. 13:05

★ 

평론가들이 허영만 성인극화(成人劇畵)

의 최고 작품중 하나라고 칭(稱)하는  48+1. 

 

1980년대 후반 '홍콩느와르'는 한국 극장가에 스크린을 모두 잠식해 버릴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영웅본색'의 엄청난 성공이후 거의 모든 홍콩영화는 자동소총에 가까운 탄창에 힘입어 스크린 밖 청중들의 가슴에 무수한 총탄을 쏟아 부었고, 또한 그들은 사나이의 의리(義理)와 우정(友情)을 왠만한 총질로는 설득하기 어려웠던지 서양식 '카드게임'인 '포카'나 '블랙잭'을 스크린에서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홍콩 도박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인 지존무상(1989)이나 정전자(1989)등이 이때 개봉하였고 그들의 현란한 카드기술과 게임의 재미는 사람들을 매료(魅了)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로인해 유행처럼 카드도박이 학교내 교실안까지 번지기 시작하였고, 당시 고등학생이였던 필자도 포카와 블랙잭을 친구들에게 배워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주머니속 동전을 털어, 벌어진 판속으로 불나방 처럼 뛰어들었습니다. 급기야 명함(名銜)의 절반 정도되는 크기의 카드를 문방구에서 구입하여 동서양을 결합한 '섯다'를 만만한(?) 선생님 수업시간에 돌리는 작태까지 벌리기 시작했는데, '섯다'의 쪼는 맛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벌어지는 스릴(thrill)

까지 겹쳐지면서 공부라는 단어는 필자의 머리속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도박의 인기와 더불어 스크린 밖 만화판에서도 도박만화가 등장하여 '매주만화'에서 연재되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허영만'씨의 '48+1' 이였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48+1'에 관한 주변 이야기를 한가지 더 해볼까 합니다. 1995년에 이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로 한창 인기가 있었던 '박상민'씨와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난 (故)'김성찬'씨, 12년후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하게 되는 '김명곤'씨를 주인공으로 영화화 되었습니다. 또한 성인영화 씨리즈에서 에로배우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진주희'씨가 이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몇년후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AV(포르노)에 등장하여 별볼일 없는 일본 남성을 상대 함으로써, 한국남성들의 심기(心氣)
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48+1'은 흥행에 실패 하였으며 훗날 제각기 갈려진 출연자들의 인생행로(人生行路)
가 오히려 영화보다 극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허영만씨의 '48+1'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자해공갈단'으로 활약하는 동네 건달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인 '이강토''정수'라는 탓짜를 만난후 도박기술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이후 '인효삼'이라는 참꾼을 만나  탓짜로 성장해 가다 결국엔 사기도박으로 두손을 모두 잘린체 비극(悲劇)으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이 만화로 인해 많은 평론가들은 '48+1'을 두고 '허영만'씨가 일반 대중에서 '공부하는 자세'로 처음 충격을 준 만화라며 극찬하기 시작하였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도박(화투)에 관한 상식을 훨씬 뛰어 넘는 해박한 지식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 함으로써 당시 한국 만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작품이라고 호평(好評)하였습니다. 또한 그후 '타짜'를 통해 더욱 완성된 형태의 도박만화를 보여주며 작가 스스로가 대본소 만화를 지양(止揚)하고 노력,반성하며 지금 현재도 성장해가고 있다는 칭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시대적 조류(潮流)

에 발빠르게 반응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과 화투에 대해 알수 없었던 여러가지 내용을 소개한 점에 관해서는 공감 할수 있지만, 그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실망감을 금할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48+1'는 진품(眞品)
 이 아닌 '짝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럼 왜 '진품'이 아닐까요? 필자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밑의 '컷트'들을 보면서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우선 '좌측'의 그림과 '우측'의 그림들을 비교해 가며 설명 하도록 하겠습니다. 좌측은 허영만씨가 직접 작화한듯 보이는 페이지고 우측의 그림은 그의 문화생들이 그린것으로 추정되는 페이지 입니다. 좌측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섹시한 여주인공(향이)는 선도 깔끔하고 뎃생도 어색하지 않으며 얼굴표정이 매우 잘 살아있습니다. 작자 본인도 잘 그려 졌다고 생각 되었는지 책 표지에도 사용하였지요. 그러나 우측 그림의 동일한 여주인공의 얼굴을 보게되면 갑자기 동네 아줌마로 변신하게 됩니다. 한쪽은 화장빨이고 다른쪽은 '쌩얼'이라 그런걸까요?!(^_^)  '48+1'의 시작은 허영만씨에 의해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지나지 않아 허영만씨의 직접적 작화는 은근슬쩍 빠지기 시작하고, 1권의 후반부로 가서는 문화생들이 전적으로 작화한듯 보여지며 그로인해 캐릭터 및 펜터치가 중심을 잃고 변질(變質)되기 시작합니다. 그후 '48+1'의 2권 부터는 허영만씨의 맛깔스런 손길은 느껴지지 않으며 대본소용 공장 시스템의 특징을 여과없이 보여주는듯, 내용의 질(質)은 (그나마)살아있으나 그림의 퀄리티는 엉망진창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럼 다른 그림들과도 비교해가며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좌측의 그림은 원작자 허영만씨가 작화한 주인공 '이강토'와 단역들의 모습입니다. 이 장면은 전형적인 허영만식 캐릭터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강토의 표정 하나하나가 감칠맛 있게 표현돼 있으며 단역들의 모습또한 자연스럽게 연출돼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 및 우측의 '이강토' 얼굴을 보시면 캐릭터 자체가 같은 인물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 다르게 보이는데, 3권짜리 만화 한편에 도데체 몇명의 문화생이 얼굴을 잡아 나갔는지 궁금하기 까지 합니다. 일본에서는 마감 시간에 쫓겨 작화를 못하게 되면 뎃생맨이 투입되어 모든 형태를 잡아낸후 명시성이 가장 높은 눈과 그 주위만 작가가 직접 그려 독자들이 잘 구분할수 없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예 문화생에게 모든것을 일임함로써 '허영만'이라는 이름을 빌린 '짝퉁작품'이 탄생한 것 입니다. 한마디로 작품에 대한 작가의 프라이드(pride)나 애착(愛着)은 실종된 것이라 할수 있으며, 독자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출판사와 만화가의 현실적 이해관계 속에서 땜질하듯 만들어진 작품의 탄생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평론가들이 '48+1'을 두고 허영만씨를 '공부하는 작가 또는 노력하는 작가,대본소를 지양(止揚)하는 작가'라고 칭 한점에 대해서는 공감(共感)

할수 없으며 인정(認定)할수 없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많은 작품을 쏟아내야 하는 8~90년대 대본소 시스템의 현실속에서 공장물건을 찍어내듯 만화를 만들어 낼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만 '48+1'은 대본소 만화로 시작된 것이 아닌 '매주만화'잡지에 연재물로 시작한 것이며, 훗날 평론가들의 품평이나 허영만씨의 인터뷰기사에서 대본소 만화와는 거리를 둔듯 행동하면서도 또다른 한쪽에서는 대본소 시스템을 적용하여 이름만을 걸어둔체 작품활동을 병행한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른 그림을 비교해 보면서 이야기를 진행보지요. 1편 초반부 왼편 '정수'의 모습과 3권 오른편 '정수'의 모습은 전혀 딴 사람 처럼보입니다. 여기서 왼편의 허영만씨의 그림실력과 인물 움직임에 따른 구성력(표현력)은 탁월함을 인정하고 머리숙여 존경을 표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생이 그린듯 보이는 오른쪽 페이지의 캐릭터들은 첫번째 칸에 있는 그림을 확대하여, 보고 작화한 점으로 미루어 볼때 작가가 독자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표시 해야할 성의(誠意) 마져 앗아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론 이 작품을 돈주고 구입하여 소장하는 사람들은 허영만씨가 절반도 그리지 않은 작품을 자신도 모른체 구입하게 된 것이며 이는 독자를 기만(欺瞞)한 행위라고 할수 있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것과 같이 출판사와 현실의 이해관계의 괴리(乖離)앞에서 어쩔수 없는 '관행의 시대'였다고 자위할수도 있겠지만 그 시대에도 예술혼으로 정열을 쏟아 한작품 한작품에 장인정신으로 임한 다른 작가들 또한 있었으므로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설득력이 떨이질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 장면을 유심히 보면 어설픈 문화생의 미흡한 뎃생 실력으로 인해 '이강토'가 달리는 부분에서 형태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발견할수 있으며, 참꾼 '인효삼'의 얼굴은 처음 그린 그림을 확대 재생산 한후 마지막 부분에는 '짜깁기'한 장면까지 나타나 필자를 매우 실망시켰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허영만의 '48+1'은 기획이나 내용 자체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신선도가 높은 만화책이며 작가 개인의 상상력과 그림실력이 출중하다는 것도 확인할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작가정신은 간데없고 대본소 작품과 거리를 둔듯 하지만 한쪽발은 담궈둔체 독자들을 우롱한 기형적인 '짝퉁'만화라는 것도 확인 할수 있었습니다. 

 

허영만씨의 작품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허영만씨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작품이 적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가지고 있는 종류만 하여도 20편에 이르며, 출판 되었지만 다 보지 못한 작품도 20편의 몇배가 됩니다. 인간은 슈퍼맨이 아닌지라 그렇게 많은 작품을 창작해 낼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허영만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어 치고빠지는 식의 작품으로 독자들을 대면하게 되었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필자는 그의 만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허영만씨가 '참여한' 작품이 아닌 진정한 작가정신으로 '창조'해낸 작품을 좋아하며 모든 작품이 '진품'이기를 원합니다. 그를 한국만화의 메이저(Major) 작가라 인정하고 사랑하는 팬(fan)이기 때문이며 나의 후배와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추천하고 싶은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걸작(傑作)으로 남아야할 '48+1'이 용두사미(龍頭蛇尾)의 작품으로 만들어 진것 같아 아쉬운 생각만 들게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작품성 ★★★ 재미 ★★★☆ 

 

ps : 대본소용 만화의 패단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기 위해 자세한 부분을 생략하고 필자의 눈으로 작성한 글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