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웹 시(詩) - 고(故) 최동원 선수에 대한 나의 기억
1995년
분당 서현동에 있는 주유소에서
아침 일찍 또는 이른 점심 시간에 그는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 창문을 반쯤 열곤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 섞인 말투로 항상 기름을 가득 채워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시동을 끄고 차 밖으로 나와
내려간 양복 바지를 양손으로 추켜 올리고 주유소 주변을 늘 서성거렸는데,
주유원 대부분은 그가 예전 유명 야구선수라는 것을 알곤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거나 반가워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 무관심 때문이었는지 아님
스스로를 알리고 싶은 쇼맨십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항상 주유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주유원에게 몇 마디 말을 시키기도 하고
양손을 허리에 올린 상태에서 주유기 방향을 응시하며 카운터가
올라가는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었지요.
티비에서 보았을 땐 몸집이 그렇게 커 보이진 않았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제법 체격이 좋아 내심 놀라기도 했었고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 창문을 반쯤 열곤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 섞인
말투로 항상 기름을 가득 채워 달라며 말하곤, 밖에서 서성이는 그를
나와 주유원들은 언제부터 인가 신경쓰기 시작했습니다.
!!!~총무 형님~!!!
!!!~자꾸 자기 알아봐 달라고 저리 서성거리는 것 같은데
흰 종이 아무거나 가지고 가서 싸인 한 장 받아와요~!!!
이런 농담 반 진담 반의 말들을 주유원들에게 종종 듣곤 했었지만
난 그에게 웃으며 걸어가 싸인 받을 용기도 없었거니와 별로 싸인이
필요치 않아 그런 상황을 애써 무시하며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상을 떠난 그의 모습을 티비에서 보곤
그 당시 웃으며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 한 아쉬움에
자신의 소심함을 질책하며 1995년의 기억 조차 추억이 되버린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우울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가버린 모든 것 그리움이 되리라' 라는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깊이 와 닫는군요.
그는 야구계의 '전설' 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곧 그의 몇몇 경기가 '신화'가 되겠지요.
그러한 용어와 찬란한 수식어를 많이 붙여도
아마 전혀 어색함이 없는 몇 안되는 선수임엔 틀림 없을 것 같습니다.
…‥…
고(故) 최동원 선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영면(永眠)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