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마이네임이즈> 스파이크 19금 단편 소설(10)

스파이크(spike) 2016. 6. 21. 00:04


<마이네임이즈>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일산의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그녀를 너무나 좋아했고 갈망 했기에 늘 함께 있고 싶었고 영원히 나의 동반자가 되길 마음 속으론 항상 빌었지만, 늘 다양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던 그녀는 나뿐만이 아닌 모든 남자들에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는 그런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포기하고, 아니 포기라기 보단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돼 멀리 떨어지면서 나의 짝사랑은 그렇게 끝이나 버렸고 꽤 많은 시간이 흘러 그녀는 내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녀를 다시금 일산의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보게 되니 심쿵 한 내 가슴은 새벽 노을에 빛이 올라오는 듯한 희망을 품게 만들 정도로 벅차 오르는 감동 이상이었고 그런 그녀를 쫓아 이름을 부르려 하자 신호등의 푸른 신호로 인해 먼 발치 떨어져 있던 그녀는 무엇이 급했는지 신호등을 뛰어가 건너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나는 그녀의 모습을 놓칠세라 전속력으로 두 다리의 엑셀레이터를 알피엠이 터지도록 밟았고 가까이 다가가 뒤에서 놀라지 않게 크지 않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부미, 정부미씨.”

 

그 이름을 들은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 보았고, 전혀 달갑지 않은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걸음을 멈춰 섰다. 그런 그녀의 앞에 서서 나는 웃음기 가득하고 반가운 얼굴로 이야~정말 오랜만이다. 이게 몇 년 만이야? 그 동안 잘 지냈어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인사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정색을 하며 영민씨. 나 이름 바꿨어요. 지금은 예전 부미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십 년 전.

 

동호회 모임에서 본 그녀는 텔런트 이승연을 닮은 여자 대학원생이었다. 아니 이승연 보다 훨씬 더 예쁘다고 하는 게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모든 동호회 남성들이 그녀를 찍었고 다들 자신의 것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동호회에서 행하는 행사나 봉사활동 등에 관심이 있을 뿐 그 누구에게도 눈길 주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난 짝사랑 할 뿐 이었고 고백할 용기조차 없어 그냥 바라 볼 수 만 있어도 좋은 사람으로 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런데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평일 점심 시간에 한 통의 전화가 울렸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린 바로 그녀였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전화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했고 지금 회사 근처인데 혹시 같이 점심 먹고 차 한 잔 할 수 있냐는 말에 모든 일을 다 때려 치우고 달려 나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식당에 들어서서 그녀를 앞에 앉히고 함께 점심을 먹을 때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녀가 여기까지 날 찾아 온 것을 보면 분명 나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란 확신 때문에 너무나 들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같이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그제서야 그녀에게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회사 근처까지 찾아오게 됐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동호회 회장님에게 일 적으로 뭔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해 알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회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가 올 때까지도 일에 대한 부분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질 않아 분명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 온 것이라 착각에 찬 확신을 하게 됐다. 그렇게 얼추 이야길 정리하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 가지고 웃거나 왜 그런 이름을 가지 게 됐는지 묻던데 영민씬 전혀 안 물어 보시네요?”라고…… 그래서 왜요? 꼭 물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지난 이야기를 나에게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딸의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이름을 미소라 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름을 정한 아버지는 또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 이름을 미소로 짓겠다고 하였고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화를 크게 내며 애 이름 갖고 장난 해? 정미소가 뭐야 정미소가!! 우리 집안이 밥을 굶어 허기진 집안도 아니고 정미소(精米所)에 시집 보낼 일 있어? 고얀놈!! 내 알고 있는 친구 중에 유명한 작명소를 하는 사람을 소개 받아 이름을 지어 올 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며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곤 몇 칠 후 이름을 받아 왔다며 아들 내외와 아기인 그녀를 집으로 불러 들였는데 그 때 할아버지께선 작명소에서 한자로 쓰인 이름을 내미셨다고 한다. 그 이름이 적힌 한지엔 한문으로 부유할 부()자에 아름다울 미()자가 써 있었고, 그대로 이름으로 쓰여 그녀의 이름은 정부미가 되었고 한다. 그렇게 몇 년 후 그녀가 무럭무럭 자라날 때 박정희 대통령 시절 5천 년간 헐벗고 굶주리다 통일벼로 인한 벼의 수확량 증가로 정부에서 쌀을 수매 해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자 그 쌀의 이름을 정부미라 부르게 되었고, 그녀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그녀의 이름은 놀림감으로 돌변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말을 끝낸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떡이며 이름에 그런 역사가 있었군요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 이렇게 말 했다. “다들 내가 이름 얘길 해 주면 웃기 바쁜데 영민씬 하나도 안 웃긴가 봐요?”라고. 그런데 난 그녀가 말을 할 때 워낙 촉촉히 젖은 눈에 반짝이고 진지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을 하여 너무도 차분하게 경청 했을 뿐 전혀 웃기진 않았다. 그런 개인적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일산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발견한 나는 그녀를 다급히 쫓아가 이름을 부르려 하자 신호등의 푸른 신호가 켜 졌고 먼 발치 떨어져 있던 그녀는 무엇이 급했는지 신호등을 뛰어 건너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나는 그녀의 모습을 놓칠세라 전속력으로 두 다리의 엑셀레이터를 밟았고 가까이 다가가 뒤에서 놀라지 않게 크지 않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부미, 정부미씨.”

 

그 이름을 들은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늦춰 뒤를 돌아 보았고, 전혀 달갑지 않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걸음을 멈췄다. 그런 그녀의 앞에 서서 나는 웃음기 가득하고 반가운 얼굴로 부미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게 몇 년 만이야? 그 동안 잘 지냈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십 년 전 식사할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함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영민씨. 저 이름 미란으로 바꿨어요. 정미란. 그리고 지금은 예전 부미라는 이름을 그 어느 누구도 부르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어요. 그럼 실례하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싸늘하고 짧은 답변만 남기고 총총히 신호등 근처에서 멀어져 갔고 나는 사라지는

그녀의 뒤 모습만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런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묻지도 않았던

나에게 찾아와 알려줬던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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