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병동> 스파이크 19금 단편 소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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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병동>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나는 소아 혈액 종양 내과 환자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 병동엔 안타깝게도 대부분 어린 환자들이 십 년을 체 못 넘기고 사망하는 경우가 상당수라 처음 이곳에 담당 간호사로 배정 받았을 땐 주어진 업무와 의사, 보호자와의 관계보단 떠나 보내는 어린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려 부서 적응이 상당히 어려웠다. 특히 간호사를 잘 따르고 주사를 놓더라고 눈 한 번 질끈 감는 참을성 있는 아이들은 그들의 아픔만큼이나 내 자신이 아플 정도로 고통이 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은 느낌에, 부모들 만큼 괴로워 짠한 감정이 오래 남아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곤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6살짜리 작고 귀여운 꼬마 소녀 한 명이 혈액 암으로 입원 하였고 꽤 오랜 시간 동안 고열로 인해 정신이 혼미 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런 꼬마 소녀의 상태뿐만이 아닌 타 병실 안의 다른 환자를 체크하기 위해 내부를 돌다 보면 그 꼬마 소녀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거리거나 고개를 살짝살짝 흔드는 행동을 보이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일 뒤 열이 내리고 수분 섭취량이 많은 병원 식사를 할 정도가 되면 꼬마 소녀는 주변을 둘러 보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방끗 웃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활기를 돼 찾았다. 그 꼬마 소녀는 아픈 티를 내지 않는 꾸밈 없는 표정과 “안뇽하세요~”하는 어린아이 특유의 발음의 인사성으로 인해 모든 병원 관계자들이 한 번 더 그 소녀에 대해 신경을 써 줄 만큼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귀여웠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처음보다 훨씬 가까워진 꼬마소녀와 간호사인 나는 대화를 나눌 만큼 친해졌고 나를 신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또 다시 꼬마소녀는 고열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 그렇게 침상에 누워 어딘가를 향해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대며 몸을 움찔거렸다. 그 후 열이 내리고 주변 환자의 주사액을 바꾸러 들어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빤히 쳐다보던 꼬마 소녀의 총기 어린 눈과 마주쳤고 말을 걸기에 앞으로 다가섰다.
“간호사 선생님, 아까 어떤 오빠가 와서 저랑 같이 놀러 가재요.”
“응? 어떤 오빠가?”
“네……”
“그 오빠가 누군데?”
“몰라요……자고 깼는데 그 오빠가 제 앞에 있었고 저를 보며 웃으며 놀러 가자 했어요.”
“그래? 근데 지금은 지영이가 아파서 밖에 나갈 수 없는데. 다음에 그 오빠가 또 와서 그러면 네가 다 나으면 놀자고 그래.”
“그렇게 얘기 했는데 자꾸 자기랑 나가 놀자 했어요……”
그 얘길 들은 나는 가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그리고 그 꼬마 소녀가 열이 심하게 올라 몸이 안 좋아 졌다 다시금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 그 오빠가 또 놀러 가자며 자기를 불렀고 그 때마다 안 된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 후 그 소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됐고 어느 날 그 오빠가 병실 문 밖에서 자기와 놀러 나가자며 입만 뻥긋 거리고 손으로 자꾸 불러 귀찮은 생각이 들어 몰래 병실을 바꿔 자신을 못 찾게 해달라고 엄마한테 부탁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걱정해 간호사와 상담 후 다른 병실로 방을 바꿔 주었고 그랬음에도 또 그 오빠가 자길 어떻게 찾았는지 꼬마 소녀가 있는 방으로 찾아 와 나중엔 병실을 1인실로 옮겨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병과 싸움을 벌이던 꼬마 소녀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가 돼 몇 일 만에 숨을 거두었는데 같은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마친 그녀의 아버지가 한 동안 우리 딸을 위해 애써주신 의사 및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러 올라왔다. 그 때 담당 간호사였던 나에게 꼬마 소녀의 아버지는 지영이가 죽기 전날 꿈을 꾼 얘기를 해 주었다.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회사 일 때문에 늦게 퇴근 후 집에서 잠이 들었어요. 근데 꿈에 어른용이라 할 수 없는 꽃 가마 하나가 사람들에게 실려 가더군요. 그런데 그 가마 바로 뒤에 더 작은 꽃 가마 하나가 따라 가는 거 있죠. 그러다 꿈에서 깨 ‘아……우리 예쁜 딸 아이가 혼자 가는 게 아니니까 외롭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곤 잠깐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저기…… 지영이가 자기랑 놀러 가자고 조르던 8살 난 남자 아이가 입원 해 있다고 하던데 혹시 몇 호실 아이 인 줄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우리 병동엔 그런 남자아이가 입원 해 있지 않아 없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꼬마 소녀의 아버지는 “어, 그럴리가 없는데… 매일 그 꼬마가 찾아와 지영이에게 놀러 나가자고 졸라서 귀찮고 짜증나 병실도 옮겼다고 했거든요. 그랬음에도 어떻게 병실을 알았는지 또 찾아와 지영이가 귀찮게 굴지 말라고 짜증을 냈더니 나중엔 놀러 나가잔 말은 않고 자기 옆에서 재밌는 얘기도 해주고 같이 놀아 줘서 즐거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이젠 그 오빠 안 오면 심심하다고… 어쨌건 모든 걸 정리하고 여길 나가는데 그 꼬마랑 애 부모님을 만나 고맙단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요”라고 말 했다. 하지만 제 13병동 내부엔 8살 남자 아이가 입원하지 않은 상태였고 다른 환자 보호자의 자녀들도 그 만한 아이가 없어 꼬마 소녀의 아버지에게 여기 병실엔 그런 아이가 없다고 확인하듯 다시 말씀 드렸다. 그 말을 들은 꼬마 소녀의 아버지는 “네, 그렇군요……”라며 눈과 얼굴을 조용히 아래로 숙이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밝은 표정으로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라고 인사를 하곤 총총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오전 ‘데이’ 근무가 끝나갈 무렵 간호사 동기인 영은이가 나에게 다가와 다른 소식 하나를 전했다.
“저번 달에 입원한 동철이 알지?” 그 질문을 들은 나는 깜빡 잊고 있던 그 녀석을 생각했다. 그리곤 영은이에게 돼 물었다.
“아참, 걔 어떻게 됐대?”
“상태가 안 좋아 뇌사(코마) 상태로 중환자실로 한 달 전에 내려갔잖아. 근데 지영이 죽기 한 시간 전쯤 먼저 하늘 나라로 갔대. 동철이 걔도 참 씩씩 하고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걔 4대 독자 외동 아들이던데 걔네 부모는 이제 어떻게 살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