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무적 태풍 28사단 잔혹 보고서!! (1)

스파이크(spike) 2014. 8. 19. 11:21

 

★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하지만 변한건 없다…

1993년 4월. 일명 논산호텔이라 불리는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의 기본 훈련을 마친 나는 주특기 교육을 위해 다시금 그곳에서 2주간 신세를 더 졌습니다. '주특기'라 함은 4주간의 기본교육 훈련 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자대에 배치 받기 전,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제대할 때까지 사용할 무기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훈련소에서 이수 받고 나가는 것을 말하며 개개인에겐 고유의 주특기 번호를 부여 받게 되지요. 주특기 교육에선 헐리우드 영화 속 람보가 사용하는 M60사수를 배정 받아, 총을 손질할 때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애착을 많이 갖고 훈련에 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2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떠블백이라 불리는 샌드백 형태의 배낭에 자신이 소유한 짐들을 몽땅 쑤셔 넣곤 머리보다 높게 올라간 국방색 떠블빽을 어깨에 멘 후, 훈련소 안에 정차 돼 있는 기차 플랫폼으로 이동하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네요. 그때 당시 상황을 머리속에 떠올려 보노라면 아마도 처음 총을 쏠 때 만큼이나 긴장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논산훈련소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연병장에서 조교가 훈련병 하나 하나에게 번호를 불러줬는데 그 번호가 자신은 어디로 갈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숫자가 도착할 사단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자대에 도착할 때까지 번호만 알 뿐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도착하는지는 말 같지도 않은 '보안상'의 문제로 훈련병들에겐 알려주질 않아 불안에 떨며 돼지 떼가 트럭에 쫓겨 몰리듯 기차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일단 무궁화호와 비슷한 차량에 탑승한 훈련병들은 6주간 산과 들판만 굴러 다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게 돼, 무슨 여행이나 떠나게 된 듯 기분이 전환 됨을 느끼며 그새 긴장감이 풀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는 각자의 떠블백을 짐칸에 올렸지요. 그리곤 지정된 자리에 앉자 그동안 논산 훈련소에서 우리들을 지도했던 조교들이 탑승하여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환하게 웃고는 일일이 악수와 포홍을 해주며 지금까지 훈련받으며 느꼈던 기분 나빴던 감정들은 모두 털어버리고 자대생활 잘하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던지 그렇게 밉기만 했던 조교들과의 헤어짐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지요. 그 후 그들이 기차에서 퇴실하자 상사 한 분의 최종 인원 점검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확인되자 그 동안 논산 훈련소에서 교육 받느라 수고했다, 자대에 가서도 잘 지내고 건강히 제대하길 바란다며 우리에게 진지하게 경례를 해 주셨습니다. 그 모습에 뭔가 모를 울컥함을 느낀 훈련병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처음 보는 상사 임에도 그 동안 수고 하셨습니다라고 소리치며 서로에게 크게 박수를 쳤지요. 그렇게 상사가 내리자 열차객실 앞 뒤로 열차 내 담당 조교로 보이는 두 명이 바로 들어섰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열차는 서서히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플랫폼을 벗어난 때를 같이하여 모자로 눈을 반쯤 가린 열차 안 조교 놈들은 갑자기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어리둥절한 훈련병들이 정신을 차릴세도 없게 똑바로 각 잡고 앉아 개새끼들아라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너희들이 탄 이것이 지옥으로 향하는 열차이며 자신들이 저승사자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높여 욕을 해댔습니다. 야이~씨발 새끼들아 똑바로 앉아. 이 씹쎄끼들이 졸라 빠져가지고. 대가리 박아 이 개새끼들아. 난데없는 조교의 대가리 박아가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잔뜩 겁먹은 훈련병들은 그제서야 우리가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 자대로 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튼 그 좁은 열차 객실 안에서 대가릴 박을 공간을 어떻게든 찾기위해 엄청난 분주함으로 일단 머릴 바닥에 들이밀었지만 복도 쪽에 앉은 친구들을 제외하곤 머릴 박기엔 좀처럼 공간이 나오질 않았지요. 

한번 생각해 보시라. 당신 같으면 KTX안에서 난데없이 대가릴 박으라면 어쩌겠는가를. 암튼 머리가 바닥에 닫기 직전 객실 안의 조교는 기상이라는 소리를 외쳤고 그런 행위를 3번 정도 반복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어디로 향해 갈지 긴장하고 불안했던 마음과 울컥하고 소중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로지 조교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움에 떨며 정면만을 응시한 체 눈알 굴러가는 소리라도 들릴세라 꼼짝달삭 한 번 못하고 열차 복도를 오가는 조교가 내 앞에 멈추지 않기만을 바랬지요. 또한 모든 객실 안은 '등화관제'라는 미명하에 빛을 차단하는 커든이 내려져 있었는데 훈련병이 어디로 이동 하는지 북괴 간첩들이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훈련소 '기간병' 애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명목상 만들어 놓은 것뿐이며 훈련병들에게 열차 밖을 전혀 볼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 아니었나 추정되네요. 

어쨌거나 가뜩이나 컴컴한 밤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훈련병들은 출발하는 열차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알 수가 없어 매우 답답하고 긴장 되었습니다. 특히 중간중간 열차가 정차하여 다른 칸에 있던 신병들이 조금씩 내리고 앞으로 한참을 가는 듯 하다가 다시금 뒤로 가는 것을 몇 번 반복하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인지 조차 가늠할 수가 없어 다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 되었지요. 아...그럴 때 조교 놈들이 여기가 어디쯤이고 너희들은 최종적으로 어디에 내리게 되는지를 간단하게 한마디만 해 주었다면 얼마나 심적으로 안도감이 들었을까. 한마디로 깜깜한 동굴에서 길을 잃은 어린 아이가 엄마 아빠를 찾기 위해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칸마다 배치된 조교들은 커튼을 열거나 틈 사이로 밖이라도 내다 보는 게 뭐가 그리 큰 범죄나 되는 양, 그랬다가는 온갖 욕설과 함께 전투화 발로 걷어차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늘어 놓으며 객실 통로를 분주히 오갔습니다. 그러면서 고참으로 보이는 조교 하나가 객실 중간에 멈춰 서서 입가에 비열한 웃음 끼를 띠며 훈련병들을 향해 한마디 던지더군요. 야이 개새끼들아, 너희들은 아주 운 좋은 줄 알아. 올 해 영삼이가 대통령이 되면서 문민정부, 문민군대를 표방해 여기 객차 안에서 구타, 얼차려가 금지됐다. 몇 개월 전만해도 너희 같은 병아리 새끼들이 내릴 때까지 아주 열차가 반질반질 해 지도록 온 몸으로 '미씽하우스1'를 시켰는데 세상 좋아지긴 진짜 좋아졌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훈련병들은 당연히 구타와 얼차려가 없는 것이 정상임에도 어떤 게 옳고 그른 것인지를 망각한 채 조금이라도 늦게 군에 온 자신들이 행운아라고 생각하였지요. 솔직히 지금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자대로 향하는 기차가 무슨 '설국열차'도 아니고...크크크. 하지만 그 조교의 어처구니 없는 위로의 개소리가 그때는 정말 절대적 종교 지도자가 계명 하나를 신도들에게 설파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열차 안은 고요함으로 물들어 갔고 취침 시간이 지나 피곤에 지친 훈련병들은 조교의 자도 된다는 말에 전투모를 벗고 불편하고 딱딱한 의자에 고개를 기대 일정하게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잠을 청하려 노력했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리 피곤해도 자리를 뜨면 잠을 못 이루는 예민한 성격이라 도통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또한 키도 188cm나 돼, 초록색 쿠션으로 만들어진 딱딱한 객차 안 의자는 허리와 목에 무리함을 줘 도저히 꿈나라에 진입할 수 없게 만들었지요. 그런데도 옆 좌석에 동기 놈은 머리를 대자마자 쌔근쌔근 잠도 잘 들어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건 그 친구가 제대를 할 때가지 함께할 전우가 되리란 건 그때까지도 몰랐지요. 그리고 그렇게 잠이 잘 드는 성격 때문에 '대대ATT' 훈련에서 '사주경계2'를 하는 도중 아주 푹 잠이 드는 바람에 무장탈영을 했단 오해를 불러 일으켜 훈련이 끝난 후, 중대 전체에 피바람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 될꺼란 점도 그때는 전혀 알 수 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느린 속도로 열차는 밤새도록 아래 위로 달리는가 싶더니 새벽녘 커튼 틈 사이로 노란빛이 새어 들어 오기 시작했지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제 아침이 오는구나. 여기가 어디지. 이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살짝 눈을 떠 주변을 살펴 보았더니 조교 녀석들도 피곤한지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더군요. 올커니, 이때다. 그 순간 갑자기 지면을 달리던 묵직한 열차의 소리가 한 층 가벼워 짐을 느꼈고 조금 더 높은 음을 반복적인 리듬으로 토해내던 때를 같이하여 두꺼운 비닐 커튼을 손가락으로 당겨 밖의 풍경을 냉큼 살펴 보았습니다. 그 순간 철길 난간이 눈 앞으로 휙휙 지나갔고, 현 위치가 노량진에서 용산을 잊는 한강철교임을 알 수 있었지요. 그리고 눈 앞으로 떠오른 태양으로 인해 찬란히 빛나고 있는 황금빛 도자기 형태의 63빌딩이 눈에 들어오자 오랜만에 보는 서울의 풍경에 등골구석으로 짜르르한 전율감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새벽 찬란하게 빛나는 서울의 한강 풍경을 잊지 못 하고 있어요. 꼭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태양에 번쩍이는 황금색의 커다랗고 길다란 유리잔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모습을 말이지요. 그 광경을 본 나는 옆에서 자고 있던 동기 놈의 팔뚝을 툭툭 건드리려 깨우곤 야, 여기 서울이야 서울이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녀석은 놀란듯 눈을 번쩍 뜨며 인상을 팍 쓰곤 구렁내 나는 입을 열어 뭔가 큰일 났다는 듯 나지막이 이렇게 중얼 거렸지요. 


씨발...우리 전방 가나 봐.



  1. 대야에 걸래를 빨아 양손으로 양끝을 잡고 바닥을 닦는 행위. [본문으로]
  2. 훈련시 몸을 피해 주변에 적이 오감을 감시하는 행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