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김제동 만민공동회의 헛발질!!

스파이크(spike) 2017. 2. 21. 18:33


개화사상을 접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정치·사회·경제·문화 걸쳐 너무나도 낙후된 조선을 조금이라도 발전 시키고자 1884년에 정변(政變)을 일으켰고 그것이 바로 '갑신정변'입니다. 갑신정변은 열강의 침략으로 국권이 유린되고, 부정부패와 무능력한 정치관료들의 정책으로 인해 백성들이 너무나 고된 삶을 살고 있어 그러한 것들을 일순간에 타파 하고자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지요. 이때 그들의 나이가 20대 초반으로 패기와 열정은 엄청나게 넘쳤을진 모르겠으나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거사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궁지에 몰렸고 일본으로 도망을 치게 되는데 그곳에서 서재필은 다시금 배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지요.


!!!~쿠데타의 댓가로 서재필은 혼자만 살아남고 3족이 멸하는 아픔을 당함~!!! 



그 후 미국에서 착실히 공부를 하며 망명 11년 만에 귀국한 그는 1895년 12월부터 1898년 5월까지 2년 6개월간 미국시민 자격으로 국내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가 미국시민권자로 대한제국에 있었던 까닭은 갑신정변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튼 그는 그 짧은 기간에 정말 많은 활동을 벌였고 가장 처음에 한 일이 바로 '공개강연'이었습니다. 서재필은 미국 체류 기간 동안 갑신정변의 실패원인을 꼼꼼히 되돌아 봤는데 그 원인중의 하나가 일반민중의 참여가 없었고 일본에 의존하려는 마음이 너무나 컷으며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러기 위해선 일단 무지한 백성을 교육, 개몽하여 의식개조를 해야 한다고 믿고 강연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런 강연에 이어 '독립신문'을 창간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학습 시킴으로써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초석을 다지게 되지요.


!!!~언론의 역할이 이래서 굉장히 중요한 것 임~!!!



그 후 독립문 등을 만들어 독립의지를 고취 시키고 1895년 배재학당에서 강연을 시작 하면서 학생들에게 '질서 있는 토론'을 활성화 시키기 위한 동아리인 '협성회'를 만듭니다. 그 때 양홍묵, 이익채, 유영석, 한치유 등의 인재들을 배출 하였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꼽을 수 있지요. 어쨌거나 학생 조직이었던 이 단체는 나중에 일반인들도 받아 들이면서 사회운동 단체로 발전 하였고 결성 1년 만에 회원수가 200여명이 넘게 됩니다. 그렇게 탄탄한 조직으로 성장한 협성회는 서재필을 중심으로 '독립협회'를 창설하게 되고 계몽사업과 함께 민중의식을 개조키 위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모토로한 '만민공동회'를 열자고 뜻을 모으기에 이르지요.


!!!~그 때 국내 최초로 서재필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란 말을 사용했다~!!!



당시 국내 상황은 '아관파천'이 발생하여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짱박혀 있다 기어 나온지 1년여가 지난 시기였고, 러시아·일본 그 밖의 열강들이 대한제국을 뜯어 먹으려고 눈깔이 빨갯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다못한 독립협회는 1898년 3월 10일 '만민공동회'란 이름으로 외세의 배격과 의회설립 등을 골자로 민회를 개최한 것이지요. 그 때 약 1만명의 시민들이 지금의 태극기 집회처럼 자발적으로 종로 백목전() 부근에 모여 집회를 열어 쌀장수 현덕호를 대표로 러시아의 침략 정책을 규탄하고 그들의 군대를 철수 시키라 주장하였습니다. 그 때 종로 거리에 모인 집회 인원이 주최측 추산 1만 명이 넘었는데 당시 서울 시민의 17분의 1이 모인 것이니 엄청난 인파가 아닐 수 없었지요. 또한 계속적으로 4월 25일부터 10월 12일까지 제2차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어 수구파 정부 개혁을 주장 하였습니다.


!!!~만민회에서 이승만은 연설을 무척이나 잘 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음~!!!



그 후 11월 5일부터 12월 26일에 개최 되었던 제3차 만민공동회는 장작불 켜고 철야집회로 이어졌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 고종과 정부는 러시아와 만민공동회의 압박에 눈치를 보며 앞으로 어떠한 정책으로 대한제국을 이끌어 나갈지를 대신들과 함께 고심하였지요. 그렇게 고종은 3차 만민공동회가 끝난 후 여론에 못이겨 어느 정도 개혁조치를 받아들이기로 약속은 했으나 서재필을 워낙에 싫어하며 이름만 들어도 짜증을 냈던 고종은 만민공동회와의 약속을 폐기하고 지금으로 따지면 용역 깡패라 할 수 있는 '보부상'들과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해산 시켜 버립니다. 어쨌거나 만민공동회를 통해 배재학당에서 서재필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한글학자 주시경과 이승만이었고 또한 서재필의 강연을 듣고 감동한 안창호와 이승훈, 여운형 등이 차후 독립을 위해 열심히 활동을 벌이게 되지요.


!!!~윤치호는 서재필을 '준비된 강력한 연사'라 감탄 함~!!!

!!!~김대중이 이걸 써먹은 듯~!!!



요즘 좌빨 사상에 심취하여 한쪽으로 편향된 개그맨이자 선동꾼 김제동이 만민공동회란 이름으로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나올때만 해도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한쪽편이 아닌 모든이들의 사랑을 받을 때와는 너무나 다르게 공격적인 증오와 분노를 사람들에게 표출하며 그것을 관객들이 받아 증폭시켜 불평과 불만을 정부에 쏟아 폭발 시키라는 듯 작심발언을 하고 있지요. 특히 개그맨이란 신분을 이용하여 어린 학생들을 모아 놓곤 '리더의 권위 효과'를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주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덴 도움이 될 진 모르겠으나 한쪽으로 쏠린 자들만 팬으로 남게 함으로써 언젠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코메디언 김병조 씨는 "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란 말 한 마디로 인해 자멸 했듯이 정치적으로 한쪽편에 편승한 연예인들은 결국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 하게 된다는 점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만민공동회란 명칭 자체도 민주화가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던 작금의 정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시기에 나타난 사건이었음에도 그러한 이름을 붙어 무슨 독립투사나 된 것인냥 앞장서는 모습은 사실을 호도하는 쌩쇼를 통한 헛발질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빨리 파악했으면 하네요.


!!!~서재필은 만민공동회의 해체 이후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