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문재인·강경화의 중국발 수치(羞恥)외교!!

스파이크(spike) 2017. 11. 28. 14:05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통해 10년 동안 비축한 재물을 고종과 민비가 단 1년 만에 탕진할 만큼 그 둘은 사치와 허영이 심했고 정책적 실정을 거듭 하였습니다. 이를 보다못한 김옥균과 서재필 등은 개화 급진파로 세상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조선 자체가 청나라의 종주권 아래에 있는 상태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속국의 굴욕감과 치욕감을 떨처버릴 수 있는 자주독립국이 되기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토론하였지요. 그리하여 일본 메이지유신을 벤치마킹 하여 신지식과 신문물을 도입, 미개한 조선 국민들을 계몽 시켜 근대적 산업국가로 만들려 작당모의를 하게 됩니다. 그 후 서재필은 조선인 16명과 함께 국비로 군사학을 배우려 일본으로 건너 갔고, 지금 만엔 짜리에 세겨진 '후쿠자와 유키치'의 도움으로 게이오숙(게이오 대학의 전신)에서 어학연수를 끝내고 도쿄에 있는 도야마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지요.


!!!~당시 서재필의 나이는 풋수염이 자라던 19세~!!!



그리고 겨우 3년도 안되는 유학 생활을 끝낸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세상을 다 돌아본 냥 콧바람이 잔뜩들어 젊은 혈기로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들과 함께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믿었던 일본이 등을 돌리고 고종과 민비를 제거하지 못한 중차대한 작전상의 어설픔으로 인해 위로부터의 개혁만을 주장하다 몇 몇 수구세력만을 살해하고 일본으로 도망치게 되지요. 그리고 김옥균, 서재필 등 갑신정변에 연류된 모든 사람들의 가족들은 3족 멸문지화의 참살을 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일본에서 다시 미국으로 도망 친 서재필은 '필립 서'라고 이름을 바꾸고 조선인 최초로 미국시민권도 획득하며 살아가지요. 또한 조선인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양의학의학사(M.D)를 취득하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후 11년 만에 조선에 미국인 신분으로 다시금 입국 합니다.


!!!~살해의 위협으로 미국인 신분을 유지하고 조선에서 생활함~!!!



어쨌거나 조선으로 돌아 온 서재필은 갑신정변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 많은 고뇌 및 세월로 인한 철이들어 위로부터의 개혁은 불가능 하다는 걸 깨닫고 아래로 부터의 개혁을 실행키 위해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독립신문'의 창간으로 이어지는데 1896년 4월 7일 첫 발행한 것을 기억하고자 지금 현재 '신문의 날'도 같은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지요. 어쨌거나 현재 좌빨과 비슷한 '위정척사파' 최익현과 유인석 등은 백성들을 선동질 하여 청나라에게 계속적인 도움을 받고 그들을 모시며 개별적인 독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식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런 그들과 달리 서재필은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계몽사업을 통한 미개한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치는데 노력하였고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에겐 '민주주의'란 말을 최초로 사용하며 '정치적 자유'를 심어줄 수 있는 말을 이해하고 설득 시키려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지요.


!!!~그러니 고종이 자신의 자리를 뺐으려는 줄 알고 얼마나 서재필을 미워했겠어~!!!



아무튼 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와의 속방 관계가 크게 개선되지 아니하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으로부터 종주권을 영구히 포기하고 완전한 해방을 승인하며 독립국으로 인정시켜 버리자 서재필은 독립을 상징하는 건축물의 필요성을 독립신문에서 역설하고 모금운동을 시작합니다. 또한 독립문을 직접 스케치하고 이를 토대로 공사를 추진 하지요. 여담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한양행'의 '버들표' 로고는 서재필의 둘때 딸 '뮤리엘'이 고안하여 선물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궁국적으로 청나라의 속방이었던 조선이 개별자치국이긴 했지만 종속국이나 다름 없던 시절 청나라에게 독립하여 기존체제를 혁신하고 완전히 홀로 자립하겠다는 의미로 독립문을 건립하였지요. 그렇게 독립문이 건설될 때 서재필은 청나라에게 벗어난 독립국이란 것을 명분화 시키려는듯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완성하게 하였고 청나라 사신이 오갈 때 그들을 맞은 영은문(迎恩門) 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지었습니다.


!!!~독립문의 현판 글씨를 이완용이 썼다느니 아니라느니 하며 지금도 논란이 있음~!!!



얼마전 강경화 외교장관이 한중 관계에 쟁점으로 지적 된 '3불 1한'에 대해 "발표 내용 그대로 그 이상의 합의나 논의가 없었다"고 주장 했습니다. 3불 정책은 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 하지 않는다는 것과 미국의 MD(미사일 디펜스)에 가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삼각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지요. 또한 중국 언론에 따르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으며 지금 배치된 사드도 사용을 제한할 것이고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드 레이더의 전파가 전해지지 않도록 차단벽을 설치하고 현장 검증을 중국 쪽에서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터무니 없는 말들에 대해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이를 공식적으로 약속한 바 없다는 입장만을 내놓았을 뿐 중국과 한국의 상황 차이에 대한 논쟁에 애매한 입장만을 고수하며 둘 중 누군간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도 모호한 태도 일관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문재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강경화와 정부의 외교정책은 구한말 조선이 청나라에 종속적인 위치로 회기하는 행태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암담할 따름이며 이러다간 서재필이 세운 독립문을 부수고 다시금 중국인들에 의해 영은문이 신축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뽑으라면 어떤 나라를 선택할래~??!!!

!!!~그게 정답이야 병신같은 것들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