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물탐방(探訪) ★

국립 고궁 박물관 방문기 (2) - 만원데이트

스파이크(spike) 2008. 2. 26. 00:31

 

좌측의 사진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시는 분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측우대(測雨臺) 입니다.

1782년 조선시대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받침대 입니다. 가뭄이 극심하자 정조 6년에 임금이

비를 기원 하는 뜻에서 세종임금 때의 측우기를 원형으로 삼아 만들어 창덕궁에 두었다는 내용의

명문이 네 측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측우기는 보물 제 561호 금영(錦營) 측우기를 복원한 것입니다. 우측 상단의 사진은 오목해시계 입니다.

18세기 조선시대에 청동으로 만든 반구 안에 은선을 박아,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개의 계절

선으로 나타내고 수직으로 시각선을 그었습니다. 우측 하단의 사진은 평면해시계로써 19세기 조선시대

삼각형의 영표(影漂)의 그림자가 원판 위에 드리워지면 그림자의 끝이 가리키는 지점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도구 입니다. 시간이 정확하진 않아도 대~충 비슷 할 것 같습니다.(^_^;)    

조선시대 만들어진 '천칭저울''저울추'입니다. 요즘엔 전자 저울이 발달하여 이런 모양의 저울은

조각상이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물건들을 저울로 달았을지 궁금해 지네요.

이 저울을 보니 예전 헤비메탈 밴드인 '메탈리카'의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앨범이 생각나는 군요.

!!!~제가 메탈 팬이라~!!!

(^_^;) 

'도검'은 사악한 기운을 끊고 재앙을 막는 도구로 인식되어 왔는데, 좌측의 사진은 '삼인검'

'사인참사검' 입니다. '삼인검'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벽사용 검으로 인년(寅年),인월(寅月),인일(寅日),

인시(寅時) 가운데 세 가지 인의 조건을 갖추어 만든 것을 가리키며, '사인참사검'은  인년(寅年),

인월(寅月),인일(寅日),인시(寅時-새벽 3시~5시)의 네가지 인을 갖추어 만들어진 것을

'사인검'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자는 나쁜 기운을 물리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측 상단의 검(劍)들은

패도(佩刀)라 하여 칼집이 있는 허리에 차는 칼이며 조선시대 만들어진 임금의 칼 입니다. 우측 하단의

사진은 '은입사 도깨비 문양 쇠몽둥이'입니다. 보물 제 1444호 이며 조선시대에 만들어 졌다고 하네요.

 금속에 가공되어진 문양들은 감탄사가 터질만큼 정교하고 멋진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패도(佩刀) 손잡이에 조각되어 있는 용(龍)모양의 손잡이 입니다. 특별한 설명은 없었지만 보기에 상당히

멋지게 장식되어 검(劍)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의 신분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경과되어 색감이나 모양이 많이 낡았지만 훌륭한 장인의 솜씨로 용은 살아있는 듯 보입니다.   

옛 양반들의 안방 모습을 '세트장' 처럼 만들어 놓은 장소입니다. 간소하고 깔끔한 모습이 정갈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화려하게 보이는 '모란도 병풍'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밑의 사진은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붉은칠 자게이층농''자개농' 입니다. 화려하게 수 놓은 문양들이 놀랍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방안에 저런 가구가 하나쯤 있다면 분위기가 확~(!!) 살아날 듯 하네요.(^_^)  

좌측상단의 작품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왕비의 봉황보 자수본'입니다. 좌측하단은 대한제국 1898년

(광무2)에 만들어진 '고종황제의 군복보 자수본''고종황제의 보 자수본' 그리고 '황후의 보

자수본'입니다. '고종황제의 보 자수본' 뒷면 우측에는 '뎡유듭츄신조' 좌측에는 '흉비판일상'이라고

쓰여 있다고 하네요.

 

대한제국 정유년인 1897년 광무 원년에 만들어 졌습니다. 또한 우측상단의 사진은 조선시대에 '금박

도장'을 만들때 쓰인 도구이며, 용(龍)문양이 멋진 사진은 '면복의 어깨보 자수본'입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 졌으며 다섯개의 발가락을 지닌 용문양을 조각한 판으로 배면에 '면복견능판'이 먹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먼저 조각을 한후에 검은색 물감을 바른 후 옷감에 찍어 하나한 수를 놓았다고

하니 정성과 노력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을지 짐작됩니다.    

좌측상단의 작품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대삼작노리개'입니다. 산호,쌍나비,불수(佛手)를 주제로 해서

 만든 노리개 3개를 하나로 꿰어 옷 위에 착용하는 노리개로 궁중 대례복에 찼던 것이라고 합니다. 좌측

하단의 작품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쇠뿔 장식 실패와 밀대'입니다.

 

'밀대'는 옷이나 이불을 누빌 때 사용하는 도구이지요. 우측상단의 단무지 처럼 생긴 작품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영친왕비 빗' 입니다. 이 '빗'에서 '영친왕비'의 DNA를 체취하여 어디 아픈 곳은 없었는지,

혈핵형은 무엇이었는지 알아 볼수 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우측하단의 작품은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주머니삼작노리개''동자삼작노리개'입니다.

'적의 차림에 사용되는 비녀의 종류'를 그림으로 설명한 자료입니다. 머리에 저렇게 많은 장식품을 달고

 움직이려면 설치시 상당한 인내심과 체력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르게 됩니다. 아마도 

궁궐내에서 생활하려면 꽃단장을 하는데 하루를 다보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왕들마다 후궁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성은'한번 받으려고 얼마나 많은 코디네이터가 옆에 붙어 있었을지 짐작

되고도 남습니다.

!!!~이러니 나라를 뺏겼지~!!!

(-,.ㅜ;)   

좌측상단 사진은 '떨비녀'입니다. 우측상단 사진은 '산호비녀,초롱모양 비취비녀,초롱장식 떨비녀'

이고 좌측하단 사진은 '대나무 장식 진주 비녀,매화와 대나무 장식 비녀'입니다. 우측하단의 비녀는

'적의차림 대수머리에 사용하는 비녀'로써 20세기 초반때인 1922년 영친왕 내외가 순종임금을 배알 할

때 영친왕비의 대수머리를 장식한 비녀들입니다.

 

 대수머리는 대례복인 적의(翟衣)를 입을 때 갖추는 가체의 일종입니다. 머리를 어깨까지 내리고 양끝에는

봉황 장식 비녀, 윗부분에는 떨비녀와 봉황 장식 비녀를 꽂았습니다. 머리에는 옥으로 장식된 금댕기를

둘러 화려한 왕실의 분위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 설명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본다면 아마 위의

사진에 나타나 있는 여인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됩니다.(^_^)

아름다운 푸른색을 띄고있는 도자기의 이름은 18세기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화백자연꽃무늬합'입니다. 

또한 상큼한 노란색이 보기좋은 호리병은 '황채장미무늬병'이지요. 두 종류 모두 담배갑 정도의 크기

였음에도 놀라우리 만큼 정교하고 이쁜 모양을 하고있어 반해 버렸습니다.

!!!~~가지고 싶다~!!!

술을 따라마시기에 적당해 보이는 주전자는 '은주전자'입니다. 또한 옆에 놓여있는 네모난 상자는 

'은제도금 담배합'입니다. 담배를 어떻게 넣었는지 구체적인 모습은 알수 없었지만

상당히 귀여워 보입니다.(^_^)

위의 사진은 '화유옹주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라고 합니다. 화유옹주(1740~1777)는 조선 21대 임금 영조의

 열 번재 딸로 귀인(貴人) 조씨(趙氏)가 낳았습니다. 옹주(翁主)는 왕의 후궁이 낳은 딸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네요.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화유옹주와 황인점의 무덤에 함께 묻혔던 것들로, 1991년 6월 경기도 부천

시 중구에 있던 묘를 옮기기 위한 작업 도중 출되된 것들이라 합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인해 조선 후기 왕실 생활문화의 한 부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황금 빛으로 번쩍거리는 멋진 모양의 조각품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봉황장식합'입니다. 실물은 상당히

 작은 편이라 아주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정교하고 세련된 모습을 놓칠 수 있습니다. 담배갑 보다도 작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정교한 세공기술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좌측의 사진은 '은제도금 주전자'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의 각종 행사에서 사용되던 은제 주전자라고

하네요. 왕실의 행사를 기록학 의궤에 그림이 실려있다고 합니다. 우측상단의 작품은 '바리''수저담는

 그릇'입니다. '바리'는 음식을 담아내는 대표적인 그릇의 하나를 일컷는 말입니다. 또한 우측하단의 작품은

조선시대 왕실의 각종 행사에서 사용되던 '은제 잔''받침'입니다. 

조선시대 은(銀)으로 만들어진 '복숭아 모양 표주박'입니다. 어떤 용도로 쓰였을지 상당히 궁금하네요.   

푸른 무늬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도자기의 이름은 19세기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박쥐구름

무늬 침그릇'입니다. 길이는 15cm정도로 작지만 너무나 멋진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우측상단의 작품은

18세기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화백자잔과 합'이며 우측하단 사진은 '빗치개,영친왕비 머릿기름합,

영친왕비 가락지'입니다.

 

'빗치개'는 빗살 틈에 낀 때를 제거하거나 가리마를 타는데 쓰인 도구이며 '반지'는 가락지 혹은 '지환'

이라고 불렀으며 궁중이나 상류층 여인들은 비취,마노,밀화 등과 같이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제 고궁박물관의 절반 정도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직도 볼 것이 많으니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3부로 출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