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물탐방(探訪) ★

국립 고궁 박물관 방문기 완결(3)

스파이크(spike) 2008. 3. 3. 00:20

 

 

 

국립고궁박물관 1층 왕실생활관(王室生活館)으로 입장하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순정황후어차

(純貞皇后御車)입니다. 순종의 황후인 순정황후가 탔던 차로 영국 다임러(DAIMLER)사가 제작한 리무진

이라고 하네요. 7인승,20마력,4기통 엔진,배기량 3.309cc로 연식은 1914년으로 추정됩니다.

 

순종황제 어차와 같이 차체는 목재이며 외부는 칠(漆)로 도장하였습니다. 황실문장인 황금 오얏꽃

장식을 차문에 붙였고 내부는 오얏꽃 무늬의 비단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3대만 남아 있고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자동차로 순종황제어차와 함께 자동차 발달사는 물론 황실의

생활상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사자료라 합니다. 광택(光澤)이 번쩍번쩍 한 것이

너무나 멋진 차량입니다.(^_^)

이 차량은 순종황제어차(純宗皇帝御車)입니다. 순종황제(제외1907~1910년)가 탔던 어차로 미국의

GM사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입니다. 7인승,31.25마력,8기통 엔진,배기량 5.153cc로 연식은 1918년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차체는 철재가 아닌 목재이고 외부는 칠(漆)로 도장하였습니다. 차문에는 황실 문장인

 황금색 오얏꽃 장식을 붙였고 내부는 오얏꽃 무늬의 황금색 비단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형태가

마차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초기 자동차 모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전 세계적으로

20대만 남아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며, 실제로 보면 마을버스 정도의 크기라 놀랐답니다. 

!!!~~!!!

!!!!~정말 멋지다~~~!!!!

윗쪽의 도자기는 '백자오얏꽃무늬탕그릇' 입니다. 20세기초에 만들어 진 것으로 그릇의 표면이 금색 오얏

꽃으로 장식되 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사용한 자기로 굽 안쪽의 상표명으로 보아 일본 제품을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하네요. 또한 좌측하단의 위와 비슷한 그릇은 '백자오얏무늬 탕그릇'으로 금색의

오얏꽃과 금선(金線)을 이용하여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황실이 프랑스에 주문하여 제작한

 것이라네요. 우측하단의 작은 잔들은 '꽃모양 은잔'으로써 대한제국때 순은(純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좌측의 용(龍)모양의 조각품은 우측의 사진을 확대한 것으로 '순종 황태자비 책봉시 금보'입니다.

순종비가 황태자비로 책봉될 때 제작된 '어보'이며, 옆의 거북모양의 조각품은 '순종 황태자 책봉시

금보'입니다. 대한제국때인 1897년(광무 1)에 만들어 진 것이라 하네요. 어보(御寶)란 국가의 도장을

말하는 것으로 국세(璽)라도 합니다. 정말로 뛰어난 장인정신이 살아숨쉬는 멋진 예술품 입니다. 

!!!~정말 멋지다~!!!

(^_^)/~ 

이곳 전시실은 왕실인장(王室印章)을 전시한 '왕실문예실' 입니다. 조선 왕실의 인장에는 국새나 관인 등

 국가 업무용 인장,왕과 왕비의 존엄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

(私印) 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서 조선 왕실의 문예

취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네요. 본래 인장은 사용자의 신물(信物)로 사용하다가 중국 송,원대에

 이르러 개인적 취향을 반영하는 예술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특히 전서(箋書)로 글자를 새긴다 하여

전각(箋刻)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위의 도자기들은 크기가 매우 작은 연적(硯滴)들 입니다. '연적'이란 먹을 갈 때 사용하는 물을 담는 용기

(容器)로써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각각의 훌륭한 예술품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에 있는 '연적'들은 

지우개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화백자 해태모양 연적' 이였습니다.

!!!~참 웃기게 생겼네요~!!!

(^_^)

좌측부터 '성종임금 태내항아리, 세종임금 태내항아리, 연산군 생모 윤씨 태내항아리'입니다.

 태실(胎室)은 왕실에서 왕, 왕비, 대군, 왕세자, 왕자, 왕세손, 왕손, 공주, 옹주 등이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

하던 곳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왕자는 생후 5개월, 왕녀는 생후 3개월에 행하였으며, 태봉은 들판에 우뚝

 솟아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둥근 야산을 선택하여 묻었다고 하네요. 태실 주변에는 벌목과 농사를 금지

하였고 그 바깥에는 산불을 막기 위해 나무와 풀을 불살라 화소(火巢)구역을 두었다고 합니다.

해당 도 관찰사는 태실을 잘 살펴야 했고 훼손될 경우 지방관은 책임을 면하지

못하였다고 하네요.(^_^;) 

좌측과 중앙의 사진은 '흑,백 고초 깃발'입니다. 조선시대 동서남북과 중앙 오방위로 나누어 푸른색,흰색,

붉은색,검은색,노란색으로 만들고 팔쾌를 그려 넣았다고 합니다. 군영에서 방위에 따라 다섯 곳에 하나씩

세워 길을 가르거나 합치는 신호로 사용하였다고 하네요. 고조기(高照旗)라고도 불립니다. 맨 우측의

깃발은 '표범꼬리 깃발'로써 조선시대 군대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데 쓰던 기로, 표범의 꼬리를 앞뒷면에

 그려 길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내 선조들은 깃발 하나하나에도 의미와 예술성을 많이 나타냈습니다.

!!!~오~!!!

!!!~정말 멋지다~~!!! 

임금님이 타고 다니시던 '가마'입니다. 역시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 답게 화려하고 규모가 큰 가마를 끌고

다시셨습니다. 가마꾼들은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지 가마의 크기만 봐도 짐작이 갑니다.(에고 불쌍해라)  

그래도 굉장히 아름답네요.(^_^)  

특종(特鐘)특경(特磬)입니다. '특종'은 큰 종 한 개로 구성되며 편종(編鐘-아악기의 하나로,

두 층의 걸이가 있는 틀에 12율의 순서로 조율된 종을 한 단에 여덟 개씩 달아 망치로 치는 타악기.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 들어왔다)과 '연원'을 같이 합니다. 장식은 편종과 같고 나무틀 위에

세마리의 공작을 세웠습니다.

 

제례악을 시작하면서 박을 치고 난 다음에 특종을 한 번 치고, 그 다음 축을 세 번, 북을 한 번 치는 것을

세 차례 반복하고 다시 특종을 한 번 치고 나면 음악이 시작된다고 하네요.(솔직히 잘 모르겠다) 현재는

문묘와 종묘제례악에서 댓돌 위에 배치하여 노랫말 없는 등가(登歌)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특종'과 '특경'위에 설치되어 있는 공작(孔雀) 구조물 입니다. 너무나 화려하고 이뻐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색깔을 어쩜 이렇게 표현 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토록 멋진 문화를

물려주신 조상님들에게 또다시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_^)  

'특경'과 '특종'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의 모습입니다. 이또한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특경(特磬)은 특종과 같이 한 개의 큰 경을 틀에 매단 것으로, 세종 때에는 댓돌 위에서 노랫말 없는 등가

(登歌) 음악을 연주하는 데 한 틀, 대돌 아래에서 노랫말 있는 헌가(軒歌) 음악을 연주하는 데는 아홉 틀이

 쓰였으나 성종 때에는 노랫말 없는 등가를 연주할 때 황종(黃鐘)의 특경 한 틀만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문묘와 종묘제례에서 댓돌 위에 배치하여 노랫말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데 쓰인다고 하네요.

익살스런 입 모양을 보여주고 있는 이것의 이름은 어(敔)입니다. 엎드린 호랑이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그 등에 27개의 톱니를 세운 악기(樂器)이지요. 연주할 때는 9조각으로 갈라진 대나무 채로 먼저 호랑이

머리를 세 번 치고 이어 톱니를 3번 긁어내립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1116년(예종11)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

온 후 문묘 및 종묘제례악에서 끝남을 알리는 신호악기로 사용하였습니다. 흰색을 칠해서 서쪽에 배치하여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축(祝)을 푸른색으로 칠해서 동쪽에 놓는 것과 짝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고궁박물관의 하일라이트~!!!!!! 우리나라 최최의 자동 시보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

입니다. 꼭 중국집 이름 같지만 너무나도 훌륭하고 굉장한 발명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중요

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을 알려 주는 것이였습니다. 왕은 백성들의 일상생활 리듬을

 규제하고 통제함으로써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시계는 권위와 질서의 상징이었고 통치의 수단이였다고 하네요. 옛날에는 주로 해시계를 이용

하였다고 하는데, 조선 세종 때에 드디어 '장영실'의 주도하에 해가 떨어져도 시간을 알수있는 자격루 

발명에 성공한 것입니다. 세종때의 자격루는 그대로 보존되지 못하다가 1536년(중종31)에 다시 만들어

졌는데 그 일부가 현제 덕수궁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시간만 잘 맞추면 인형들이 '징'을 치는

모습과 소리를 들을수 있습니다.  

 

아~~!!!! 드디어 고궁박물관을 다 돌아보았군요. 정말로 볼꺼리가 많은 장소였습니다. 고궁박물관을 둘러본

다음에 경복궁이나 민속박물관을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근처에 삼청동과 광화문 세종

문화회관으로 가는 길도 있으니 하루를 우리 문화재들을 바라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구요.

 

오늘도 즐거운 나들이 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참 갈곳 많고 볼곳 많은 동네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