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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입르뽀] 폭동 맛집을 찾아서(19)-최부잣집-성하멘션

스파이크(spike) 2026. 6. 19. 23:01

저기 보이는 거대한 궁궐 같은 집은 구한말 만석꾼으로 널리 알려진 최명구의 큰아들 최상현이 자신의 아들 최성숙을 위해 지은 집이다. 집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처음 보곤 정말 깜짝 놀랄 정도였다.

마당 또한 얼마나 넓은지 구석 한쪽에는 고장 난 용달 자동차가 멈춰 서서 넝쿨들을 실어 올리고 있었다. 이 집은 1942년에 완공되었으며, 집을 짓는 데에만 약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문이 굳게 닫혀 안을 살펴볼 순 없었지만 본래는 약 1,800평에 달하는 드넓은 대지 솟을대문, 11칸 규모의 문간채, 사랑채, 연못, 정원, 그리고 안채 뒤편의 서양식 양옥까지 갖추고 있던 대규모 복합 저택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의 부속 건물이 사라지고 현재는 본채와 창고 건물만 남아 있는 상황.

일제시대에 궁궐이 아니면 저렇게 5층에 가까운 높이에 창문이 달린 집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외관상으로는 지붕이 겹쳐진 중층 한옥의 웅장한 위용이 두드러지며, 다락을 포함하면 내부가 총 4개 층위로 구성된 대저택이다.

근대 상류층의 화려한 양식이 두드러진 최부잣집은 한반도 중북부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남부 지방 특유의 화려한 장식성과 규모감을 보여준다. 전통 한옥 양식 위에 근대기 부유층의 취향이 조화롭게 절충되어 공간이 매우 입체적.

솔직히 구멍 난 항아리가 너무 탐나 이렇게 버려지듯 방치된 것들이면 몇 개 달라고 부탁드리려 했지만, 저 높은 담벼락으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던 터라 침만 삼키고 돌아서야만 했다.

아무튼 오랜 기간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 분쟁(전남대학교 및 후손 간의 갈등 등), 상속 문제, 행정적 한계 등이 겹치면서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와 훼손을 겪어왔다고 한다.

특히 최부잣집(일농 최상현 가옥)이 지자체 지원이나 문화재 등록을 통한 체계적인 개발·보존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건축주의 '친일 행적 및 악덕 지주 논란' 때문이다. 2022년 말, 광주 남구청은 이 가옥의 독특한 중층 한옥 구조와 건축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관리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 지역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친일 행적과 소작농 수탈 의혹이 있는 악덕 지주의 가옥에 시민들의 혈세를 투입해 보수·유지하는 것은 친일 행위를 정당화하는 꼴"이라며 지정을 결사반대했다.

결국 남구청은 여론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2023년 초 문화유산 지정을 최종 부결(취소) 했다. 그 결과 행정이 개입하여 건물을 보수하거나 관광 자원 등으로 개발할 법적·재정적 근거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어쨌거나 이 가옥을 지은 최상현 (1880~1945)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며, 이 인물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아 개발이 가로막혀 있다. 반대 측에서는 그가 일제강점기 광주 3대 부자 중 한 명으로서, 소작농들에게 60~70%에 달하는 폭리 수준의 소작료를 부과해 소작쟁의를 일으킨 악덕 지주였다고 주장하며, 일제로부터 감수포장 등을 받은 친일 흔적이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건물이 친일한 것도 아니고 친일의 흔적이 있다면 그것을 교훈 삼아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젊은이들에게 교육적 자료로 활용하면 될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낡어가는 저택을 이렇게 망가지도록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멍청한 방침임엔 틀림없다 여겨진다.

그렇게 최부잣집 주변을 돌며 집 안을 구경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려보고자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사회 저명인사나 유명인이 안되고선 힘들듯 하여 앞으로 십 년 후에 이 집을 구매해야겠다고 큰 맘을 먹고 돌아섰다.

!!~~캬~~!!
!!ᆢ예전 골목길의 별미ᆢ!!

!!ᆢ더 망가지기 전에 보수가 돼야 될 텐데ᆢ!!

이제 최부잣집의 사랑채가 있던 '성하맨션' 방향으로 가볼까 한다. 집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팔린 땅들에 수많은 다세대ㆍ연립주택이 생겨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동네 자체가 8~90대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어 타임머신은 개나 줘 버리고 과거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진 않았고 개발이 안 됐구나 하는 생각만 들게 했다.

저기 노란색 슬라브 주택을 보면 위에 샌드위치 판넬로 증축을 한 듯 보이는데 이러한 풍경이야말로 8~90년대의 전형적인 도심의 모습이었다. 그때와 지금과 다른 점은 아마도 사람이 없다는 거?

!!?ᆢ근데 저거 불법 건축물은 아니겠지ᆢ?!!

어릴 적엔 이런 골목길을 보면 설렘과 불안감을 동시에 가졌었다. '저길 가면 뭐가 있을까'하는 호기심. 하지만 이제는 그런 호기심도 많이 줄었고 대충 뭐가 있을지 알게 되니 인생 자체도 조금은 재미없어지는 이유가 생기는 듯싶다.

성하맨션으로 가는 도중 멋지게 짱깨어가 써진 현판이 보여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파인 다이닝 (Fine Dining)이니 원테이블 다이닝 (One-table Dining)이니 하는 그런 음식점이 보였다.

"깊이 사색하고 생각하여 진리에 통달한다" 혹은 "생각이 깊어 막힘없이 소통하고 도달한다"라고 쓰인 사유달(思惟達)의 단어를 쓸 만큼 음식이 맛있는지 한번 경험을 해봐야 할 듯하다.

!!ᆢ뭔가 건방진 느낌인데ᆢ!!
!!?ᆢ지나가다 궁금하면 묻지도 못해ᆢ?!!

다이닝 식당 옆으론 일반 가정집이 보여 사진을 담아보았다. 가지런한 신발과 빗물을 받아 물을 아끼려는 모습에서 옛 시골 마을 풍경의 한쪽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예전엔 상하수도가 잘 갖춰지지 않아 빗물을 저렇게 다들 받아서 사용했다.

이제 다시 골목 중앙으로 나와 성하맨션 방향으로 가봐야겠다. 예전엔 이런 골목이 애들의 놀이터를 대신해서 시끌벅적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조용한 지방 소도심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ᆢ구름이 아주 음기를 뿜어 내는 듯하네ᆢ!!
!!ᆢ고담스러워ᆢ!!

성하맨션 위쪽 2~5층은 일반적인 아파트 주거 세대이지만, 맨 아래층은 도로와 바로 맞닿아 있는 독립된 문들로 되어 있다. ​이곳들은 과거에 동네 구멍가게, 세탁소, 미용실 같은 근린생활시설(상가)이나 창고, 혹은 소규모 제조 작업장 등으로 쓰이던 공간이다. 실제로 지금도 일부는 사무실이나 주거용 원룸 등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 얘기한 최부잣집은 대지가 1,800평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가문이 기울고 소유권이 쪼개지는 과정에서, 최부잣집의 넓은 마당과 부속 건물(사랑채 등)이 있던 부지가 매각 됐다. ​그 자리에 1978년, 1개 동 규모의 '성하맨션'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다. 즉, 최부잣집의 담장 바로 코앞까지 아파트가 밀고 들어와 고택을 완전히 포위한 형태가 된 것.

!!ᆢ그냥 동네 전체가 최부잣집 땅ᆢ!!

!!ᆢ이런 전기 계량기가 복도에 한꺼번에 노출 돼 있는 모습이 참 레트로 하네ᆢ!!

아무튼 최부잣집 부지가 성하맨션 등으로 쪼개져 팔리는 과정에서 소유권 관계가 극도로 복잡해졌는데, ​심지어 나중에는 "본채 건물은 최부잣집 후손 소유인데, 그 건물이 딛고 있는 땅(대지)은 전남대학교 소유"라는 기이한 형태로 땅과 건물의 주인이 찢어지게 된다.

​이 상태에서 주변 땅(성하맨션 주변 부지 포함)의 개발이나 고택 보존을 추진하려 해도 소유권 소송과 갈등이 수십 년간 이어지며 손을 댈 수 없는 족쇄가 돼 최부잣집은 저렇게 방치되고 있다.

어쨌거나 잔여 부속 건물로 작은 한옥들이 오밀조밀 밀집 돼 있고, 아까 본 사유달 같은 경우도 최부잣집에서 분리 돼 나온 건물로 보인다. 그렇게 계단식 복도에 앉아 최부잣집의 본체를 내려다보면서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앉아 쉬었다.

날씨기 너무 좋아 한참을 쉬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자 성하맨션이 광주 시내를 호령하듯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좀 아쉬웠던 점은 최부잣집의 모슨 땅과 건물을 예전에 삼성에서 모두 구입해 한국인의 전통 마을 같은 테마 파크를 만들었으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는 망상도 해본다.

-20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