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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 역사문화마을에서 기대했던 첫 번째 '최승효 고택'은 문이 잠겨있고 인기척도 없어 몹시 실망했다. 아무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최승효 고택'에 관련하여 역사적, 건축사적으로 매우 깊은 가치를 지닌 전통 한옥이라 해서 안쪽이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듯 많은 쓰레기가 놓여 있었고 풀들이 심하게 자라 폐가처럼 느껴졌다. 이 고택은 1921년경 독립운동가이자 구한말 광주의 만석꾼이었던 최상현 선생이 지은 집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옥의 넓은 다락방을 활용해 독립운동가들을 피신시키고 은신처로 제공했으며, 독립자금을 조달했던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이다.

!!?ᆢ폐가 수준인데ᆢ?!!
!!ᆢ자세히 보면 아닌 듯하기도ᆢ!!

사직공원 인근 양림산 구릉의 경사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축되었고, 경사면을 활용해 한옥 구조에서는 보기 드문 반지하층 공간을 구성한 것이 큰 특징이라 한다.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다고.

어쨌거나 집이 굳게 닫혀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듯하다. 역시 문화마을답게 곳곳이 전통가옥으로 만들어져 있어 보기 참 좋았다.

이런 한옥들도 리노베이션을 통해 모던하게 바꾼다면 굉장히 아름답게 꾸며놓고 살 수 있지만 좀처럼 구매도 힘들고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맹점이다.

어릴 적엔 이런 골목길이 대부분이라 온갖 놀이를 하며 시끌벅적하게 놀았다.

저녁이 되면 엄마들이 들어와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렸고 하나둘씩 집으로 사라진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나타난 또 다른 고택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장우 가옥'이다.

이곳은 1899년(대한제국 광무 3년)에 호남의 갑부였던 정병호가 처음 지었고, 1965년에 동강학원(동강대학교 등)의 설립자인 이장우 박사가 매입해 지금까지 보존돼 오고 있다.

!!ᆢ진짜 딱 들어가면 우와 소리가 남ᆢ!!


!!ᆢ기가 막히네ᆢ!!
원래 이 집은 1899년 호남의 대부호였던 정병호라는 인물이 안채와 대문간을 처음 지었다고. 광주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3대 부자'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집이었으니 당시 기준으로 정말 어마어마한 '호화 럭셔리 하우스'였다.

세월이 흘러 1960년대 초, 정병호의 동생이 광주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고, 결국 집이 매물로 나오게 되었다. 이를 1965년에 매입한 사람이 바로 호남 지역 교육계의 거목인 동강 이장우 박사다.

!!ᆢ굴뚝은 나중에 막아 논 듯 보이네ᆢ!!
이장우 박사는 동강대학교, 동신대학교, 동신중·고등학교 등을 설립한 인물인데, 이 집을 사들인 후 사랑채와 행랑채, 곳간채를 추가로 중축하면서 비로소 지금 우리가 보는 완벽한 상류층 가옥의 형태를 완성하게 되었다.

문화재로 등록될 당시 소유주가 이장우 박사였기 때문에 오늘날 '이장우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마당에는 아주 특별한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은 상지(上池)와 하지(下池)로 구분되는 독특한 이중 구조로 짜여 있다. 상지 쪽에는 커다란 돌거북 한 마리가 물속에서 유영하며 사랑채 안쪽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어 정말 놀랐다.

저 돌 무게가 엄청날 텐데 당시에 어떻게 만들고 운반해 왔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돌 옆면까지 엄청 신경 써 조각에 최선을 다한 모양이 놀랍기만 했다.
!!ᆢ배경이 물 속이야ᆢ!!


예로부터 거북이는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동물이었고, 집안의 번영을 기원하는 시각적 장치였다. 그 주변을 둥글게 감싼 향나무와 정갈한 디딤돌의 배치는 어느 각도에서 그림을 그리기에도 훌륭한 조형미를 풍겼다.

!!~와~!!
!!?ᆢ집을 이렇게 꾸미려면 도대체 얼마나 부자였던것임ᆢ?!!


자연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조선식 조경과 달리, 정원수를 동글동글하고 조밀하게 가위질해 다듬는 방식(왜철쭉, 회양목 등 구형 조경)은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임천회유식 정원)의 조경 기법인데 이장우 가옥에도 많이 적용 돼 있었다.

!!ᆢ풍 저 란 상(風 翥 鸞 翔)이라ᆢ!!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오르고, 난새가 공중을 빙빙 돌며 춤추듯 날아다닌다."
이 구절은 난새(상서로운 새)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기운차고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수려한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라는데 글씨가 너무 멋져 놀랍기만 했다.

!!ᆢ동 강 정 사(東 岡 精 舍)ᆢ!!

동쪽 언덕에 있는 학문과 정신 수양을 위한 집(정사)'이라는 뜻이다. 보통 예전 선비들이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기르던 서당이나 정자, 혹은 고택의 현판에 많이 쓰이는 이름이다.
!!ᆢ작자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네ᆢ!!


이 집은 1899년에 지어져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1965년 이장우 박사가 매입해 대대적으로 중축했다. 그 과정에서 근대기(일제강점기~현대 초)에 유행했던 일본식 정원 문화나 별장 조경 양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됐다.

!!?ᆢ일단 집에 우물이 있다ᆢ?!!
!!ᆢ부자는 아닐 수 있지만 저런 돌 받이가 있으면 부자ᆢ!!

아무튼 당시 전국의 수많은 자산가 가옥이나 상류층 정원이 이런 식으로 일본식 조경을 많이 접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일단 다리가 아프니 마루에 앉아 쉬었다가 주변을 더 둘러보자.
-2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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