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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입르뽀] 폭동 맛집을 찾아서(17)-광주공원

스파이크(spike) 2026. 6. 15. 07:07

여기는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위치한 광주향교(光州鄕校)로 조선 시대 지방 유생들의 교육과 성현들의 제사를 담당하던 공립 교육기관으로 광주공원 뒷 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향교는 보통 경사진 지형을 활용해 앞쪽에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를 따르지만, 광주향교는 평지에 가깝게 조성되어 서쪽에는 강학 공간(명륜당)을, 동쪽에는 제향 공간(대성전)을 배치한 '좌묘우학 (左廟右學)' 의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향교 입구 쪽에 마련된 현대식 지원 시설과 유림회관 건물에서는 시민과 청소년들을 위한 전통 예절 교육, 다도 체험, 성인식(관례·계례)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ᆢ딱 봐도 헬기장인데ᆢ?!!

명륜당 마당 뒤편으로 보이는 돌계단과 또 하나의 삼문은 제향 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內三門)이라고 하는데 여기가 맞는가 모르겠다. 아무튼 맞다고 치고, 이 문을 통과하면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동무·서무가 위치해 있다고. 고즈넉한 조경과 돌담이 어우러져 가장 깊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라는데 왜 우리가 짱깨 사학자를 모시는지 알 수가 없다.

광주향교는 조선 태조 시기(1392년 경)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무등산 장원봉 아래에 있었으나 호랑이의 피해가 잦아 1488년(성종 1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이후 수차례 중건하여 오늘날의 장엄한 모습을 갖추게 됐단다.

!!?ᆢ장엄해ᆢ어디가ᆢ?!!

구한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는 장성 출신의 기우만을 중심으로 호남 유생들이 모여 항일 의병 봉기를 주도했던 역사적 장소라고도한다.

!!?ᆢ단발령은 잘한 것 아냐ᆢ?!!
!!ᆢ위생에도 많은 도움이 됐을 텐데ᆢ!!

아무튼 1896년 광주·전남 지역 최초의 근대식 공립 교육기관인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현 광주서석초등학교의 전신)가 바로 이 광주향교 안에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비석 정면에 세로로 '대소인원개하마비(大小人員皆下馬碑)'라고 새겨져 있는데, "지위가 높고(大) 낮은(小)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人員)은 이곳에서부터 말에서 내려(下馬) 걸어 들어가라"라는 뜻이다. 왕릉, 공묘(문묘), 성균관, 그리고 지방의 향교처럼 신성하고 존경을 표해야 하는 공간의 입구에 세워두던 일종의 표지석. 유교 성현들을 모신 광주향교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ᆢ애미나이가 알려줌ᆢ!!

여기는 광주공원 '비석군'인데 친일인물 윤웅렬, 이근호, 홍난유의 단죄문이 있다고 한다.

누워 있는 걸 보니 아마 이것들인 듯싶네. 일제시대에 큰돈을 벌고 편안이 들 사셨는데 죽어서 비석으로 누워서 잘 사시는 걸 보면 다음에도 친일파 하실 듯하오.

아무튼 윤웅렬은 그 유명한 윤치호의 아버지이기도 했으며, 이근호는 '을사5적'의 한 명인 이근택의 동생이라고 한다. 다들 전라도 사람은 아니고 이곳에서 벼슬 자리를 해서 잊지 말자는 취지로 비석을 만든 것이라고.

아무튼 이렇게 죽어서도 비석이 다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 간 것을 보면 친일, 친중, 친미, 친북을 해서 잘살면 장땡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 광주공원을 찾은 저 어린이들이 커서 친일, 친미, 친중, 친북 중 어느 것을 선택할래 하면 저 중에 한 명은 반드시 이렇게 대답할 거임.

!!ᆢ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오ᆢ!!

!!?ᆢ그렇지 얘들아ᆢ?!!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자 내일은 6월 6일 현충일이라 전라도 광주 어머니들 답게 파란색 조끼를 입고 현충탑 주변을 청소도 하고 기리기 위해 방문들을 하셨다.

피 끓는 젊은이들이 빨갱이 새끼들과 처절히 싸워 지킨 내 나라 내 땅인데 자발적 친북 인사가 돼 북한을 찬양하는 놈들이 있다니 참으로 답답하다. 정말 주사파 똥팔육들이 핵생운동을 하며 수많은 젊은이들의 뇌리에 좌파이념을 스미게 만든 것이 안타깝다.

!!ᆢ전두환이 너무 착했어ᆢ!!
!!ᆢ괜히 엔젤두환이 아님ᆢ!!

그렇게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현충탑에 참배를 하고 다른 지역을 탐방하기 위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내려왔다.

여기가 광주공원 정문으로 일제는 1912년 광주공원 성거산 자락에 일본 국조신 등을 모시는 '광주신사'를 처음 세웠다. 이후 1917년에 대대적으로 확장하였고 이곳엔 거대한 '도리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예전보다 입구가 훨씬 넓어지고 계단이 완만해졌구나. 저 때 심은 나무들이 저렇게 큰 것 같진 않고 새로 심은 듯하네. 아까 현충탑 자리가 신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돌계단 옆에는 '김군'이라 불리는 미스테리한 사람의 동상이 설치 돼 있다. 아직까지도 이 사람이 누구의 자식인 줄 모르고 친구들도 안 나타나 이름조차 판명되지 않았다. 웬간해선 그 좁은 동네인 광주에서 누군지를 모르고 소재파악이 안 된다니 참으로 신비롭다. 지만원 박사가 '광수'라고 칭하곤 북괴군이라 주장했는데 그것 또한 일방적인 주장이라 몇 번 살펴보다 진실성이 낮아 보여 접어버린 기억도 있다.

아무튼 죽었다던 사람이 자신이 이 사람이라며 나타나질 않나, 아무도 김군에 대해 모른다고 하는데 실종 돼 최종 사망이 확인된 것도 구구절절 이상하다. 어쨌거나 광주사태에 대해선 광주와 아무런 연고도 없고 그냥 오타쿠 동호회가 만들어져 하나하나 밝혀 내는 것이 더 신빙성 있어 뵌다.

광주공원 입구가 어젯밤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던 포장마차였는데 아침이 되니 거짓말처럼 몽땅 사라져 신기했다. 그 옆으로 '희경루'라는 커다란 한옥 전망대가 있어 다가가 보았다.

-18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