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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고택에서 제일 멋지고 부러웠던 것은 복도에 달려있는 미닫이 문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미닫이 문과는 달리 상당한 재력의 부잣집이라 창호의 디자인이 보통 이상이었다.

!!ᆢ이렇게 낡아 빠지게 두지 말고 오일 좀 발라요ᆢ!!


여기 고창은 특히나 신경을 많이 쓴 듯 보이는데 쿠미코(組子, くみこ)라 불리는 기법을 사용한 듯 보였다. 쿠미코는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작은 나무 조각들을 정교하게 맞추어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전통 목공예 기법이다. 문, 창문, 미닫이문(쇼지), 가림막(파티션) 등의 창틀과 인테리어 요소에 주로 활용되며,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온 장인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 매달려 있는 제비 모양의 쇠붙이는 '들쇠'로 평소에는 창호를 닫아서 벽이나 창문으로 쓰다가, 여름철이나 잔치가 있어 공간을 넓게 써야 할 때는 문을 위로 들어 올려 처마나 대들보 아래에 매달아 고정하는데 쓰인다.

한옥에서 새 모양 철물(특히 오리나 갈매기 같은 물새)은 화재를 막아주는 주술적 의미를 가진다. 목조 건물인 한옥은 불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물을 상징하는 새를 철물이나 기와에 새겨 "불을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ᆢ누가 거북이 등껍질에 대못을 박아놨노ᆢ!!


!!ᆢ쫌만 기다려라ᆢ!!
!!ᆢ우리 집 정원도 이곳 이상으로 만들어 놓으마ᆢ!!


!!?ᆢ아치형 보를 '우미량'이라고 하던가ᆢ?!!
!!?ᆢ아님 낙양각ᆢ?!!

서까래나 기둥에 쓰인 나무들만 봐도 반듯반듯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깔끔하게 깎인 게 찐부자의 풍미가 전해 내려오는 듯.

!!ᆢ이제 다 봤으니 밖으로 나가 다른 곳도 살펴보자ᆢ!!

!!~와~!!
!!ᆢ양림동 여긴 진짜 분위기 자체가 80년대ᆢ!!


어릴 적에 이런 집에 세를 들어 산 적이 있다. 지하에 우리 가족이 살고 윗집이 주인집이었는데, 월세 산다고 그 인간들이 꽤나 우리 집을 무시했던 기억이 있다. 아주 어릴 적이었음에도 그런 인상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선 어머니의 사골세 설움이 꽤 컷을 것이라 여겨진다.

잘나 봐야 얼마나 잘났고 못나봐야 얼마나 못났다고,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엔 그런 인간들이 많았다. 지금 그 사람들과 그 자식들이 얼마나 훌륭히 잘 됐는지 솔직히 궁금하다.

아무튼 양림 역사문화마을은 근현대사의 분위기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아기자기한 동네이자 얕은 맛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20년 전 을지로에서 종로를 거처 광화문 일대를 모두 걸어 다닐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곳 양림동도 서울 인왕산 근처와 모습이 매우 흡사하고 분위기가 멋진 동네여서 잘만 가꿔 나간다면 서울 '익선동'처럼 천지개벽이 이루어질 것 같은데, 지방 인구가 줄어 서울과 같은 시너지는 발생할지 의문이다.

!!ᆢ광주에 일본식 음식점이 서울보다 더 많아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해ᆢ!!

!!ᆢ반일의 도시 아니었노ᆢ!!

이제 다음 목적지로 갈 예정인 양림교회의 교탑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광주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양림교회는 광주·전남 지역 기독교 선교의 발상지이자,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라 하겠다.

!!~캬~!!

!!?ᆢ뭔가 느낌 있지 않아ᆢ?!!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 배유지)과 오웬(Clement C. Owen, 오기원) 등이 양림동에 정착하면서 이곳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수피아여고, 숭일고, 기독병원(제중원) 등을 세워 광주의 교육과 의료의 기초를 닦았다.

일제강점기 시절엔 신사참배 거부 운동, 3·1 독립운동, 그리고 광주학생독립운동 등에 깊이 관여하며 호남 지역 민족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정면과 측면에 우뚝 솟은 고딕 스타일의 종탑이 정말 멋지단 생각이 든다. 청록색 지붕을 얹은 뾰족한 종탑과 붉은 벽돌의 대비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강렬하고도 고풍스러워 웬만한 성당들보다 멋지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야.

교회 내부엔 들어가 볼 수 없어 밖에서 사진을 담아 보았는데, 넓고 정갈하게 배치된 목재 장의자들이 길게 이어져 있으며, 천장은 완만한 삼각형 구조의 서까래 형태를 노출해 아늑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듯 보였다.

근대사에 나오는 국내의 수많은 성당들을 많이 가봤는데 이곳 양림교회도 당시 조적조 건축 양식을 그대로 따와서 그런지 매우 따스해 보인다.
-24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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