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화계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여점의 존재와 그곳에서 책을
빌려보는 독자, 그리고 불법 스캔을 통한 다운로드로 만화를 읽는 분들로 인해 많은 작가들이 창작
능력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을 격고 있다는 울분에 섞인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필자가 글을 읽으면서 조금더 주목하여 바라보았던 부분은, 한국독자의 문화적 인식(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이였습니다. 한마디로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여 보는 것이 아닌, 빌려보고 다운로드 받아
보는 독자들에게 강한 배신감과 분노를 토로(吐露)하고 있는 점이었지요. 하지만 필자는 그런 독자들을
비판(批判)하기 전에 우선 우리나라 만화환경에 대한 독자들의 오래된 습성(習性)을 다시한번 되짚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 독자들은 만화책을 구입하여 읽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빌려보거나
다운받아 보는것이 당연한 것 처럼 인식(認識)되어 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이었지요.
우리나라의 만화역사는 오래된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물론 만평(漫評)이 신문지 면에
탄생 한 지 백 년이 다 되었지만 본격 적으로 한국작가가 그린 만화를 단행본 형식으로 보게 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친 후 정치적 혼돈기를 지나 '박통정부'가 '보릿고개'를 타파
하는 1975년까지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만화책을 구입해서 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
일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일예로 각 가정에 텔레비젼 수신기도 비취되지 않아 동네사람들이 부유한
집에 몰려가 함께 TV를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정부는 '만화문화'를 '저질문화'라 일커르며 만화
작가나 출판사,유통업체,대본소(만화가게)에 정책적인 협조와 지원은 하지 않고 틈만 나면 탄압과
정치적인 도구로만 활용하는 작태를 서슴치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980년 대가 찾아왔고 또한번 민주적 암흑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은 교육열은 높았지만
만화에 대한 인식 자체는 아직도 '저질문화'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만화 대본소는 불량학생들이 모이는
우범지역으로 낙인찍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호황을 누렸을까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찾아올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축제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의 경제 는 문어머리 정부의 강제적 지시에 따라 어느정도 안정화되기 시작하였고, 그로인해 1980년대
초반 중산층이 조금씩 두터워 지면서 몇몇 아이들의 주머니엔 용돈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의 주머니가 자연스럽게 문화적 욕구에 어느정도 쏠리기 시작하였고 이때 등장한 놀이
기구의 최고 히트상품 '스카이 콩콩'과 전문 만화잡지 '보물섬'은 한 시절을 풍미하게 됩니다. 이는
'윳놀이, 잣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라는 1차원적 다원화(多元化)놀이에 머물러 있던 어린이들의
놀이문화가 돈을 투자하여 개인이 즐기는 단계로 한걸음 진보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조금 진보한 1980년대 우리의 만화시장은 겨우 구멍가게 수준이였으며 또한 만화책을
읽으려면 작은 만화대본소에서 돈을 내고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단행본'이라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만화는 돈을 주고 만화가게에서 읽거나 빌려보는 것 이상으로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시절 지금의 부모님 세대가 된 젊은 대학도들은 앞선 선배들이 그랬듯이 학교주변 인쇄소에서
불법으로 제본(製本)된 원서나 참고서를 가지고 공부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원할하지 못하였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 자체를 논할 만큼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한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대학가 주변 소규모 제본소는 호황을 누렸지요.
그렇지만 1980년 대는 몇몇 훌륭한 만화작가들로 인해 탄생한 대본소 작품이 극영화로 만들어 지기
시작하면서 인기있는 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문화생을 거느린 공장 시스템으로 작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일본 외색문화를 철저히 근절(根絶)하던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는 침해(侵害)당하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론 오히려 중흥기를 누리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도 1980년 대 후반 불법 일본 해적판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1990년대에
일본만화가 수입, 개방 되면서 가뜩이나 좁은 한국 만화는 싹이 올라 움트기 전에 햇빛이 차단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보면 한국 만화의 부흥기를 이뤄야 했을 가장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리는 결정적이자
안타까운 기간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 이후 한국 만화시장의 체질이 조금씩 바뀌어 단행본을 구입하려는 문화가 발생하려는 찰나, 대한민국은
1997년 경제적 부도 사태인 IMF가 터지게 되었고 서민들은 또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발생한 많은 명퇴자들을 정부에서 추진한 '소자본 창업'에 이끌려 만화 대여점과 피씨방을 앞다퉈
오픈하기 시작하였고, 엄연히 저작권이 존재하는 개인창작물인 만화(漫畵)를 만화관련 종사자들의 의견
수렴 없이 합법적으로 싸게 빌려다 볼수 있게끔 정부가 법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한 컴퓨터 기기의 급격한 발달로 스캔을 통한 돌려보기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고 만화대본소에서 대여점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자연적으로 습성화 되어 돌려보던
만화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아예 컴퓨터로 다운받아 공짜로 보는것이 당연한 것 처럼 만들고
각인(刻印)시켜 버린 계기(契機)가 되었습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점은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1988년을 기준으로 2년 정도 반짝 호황을 누렸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만불'정도 되는 시절이었고, 그 이후 늘 '사교육비'와 '부동산 값'상승 등 경제적 어려움에
서민들은 시달려야 했다는 점 입니다. 한마디로 외형적이나마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모든 문화(文化)를
여유있는 자세로 즐길수 있는 국민적 여건(與件)은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으며 그로인해 예술의
아웃사이더 (outsider) 취급을 받던 만화를 구입해서 읽는 문화 또한 동반 상승하지 않았고 기간도
너무 짧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부모님 세대가 그러했고 지금 한창 만화책을 구매해서 읽어야 할 10대들의 부모님 세대에도 만화는
빌려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인식이 당연한 것처럼 돼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시대에 단행본을 구입
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만화를 볼수 있는 마당에 부모님에게 눈치받으며 얼마되지 않는
용돈을 참고서가 아닌 만화책을 구입했을 때 과연 부모님이 좋아라 하실것도 만무하며, 만화책을 구입해서
보는 것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그 부모님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한데 만화책을 사서 본다는 것은
구매력이 높은 나이어린 독자들에겐 정말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는 만화책을 대여점에서 빌려다 보는 독자나 다운받아 보는 독자에게 투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오랜시간 축적(蓄積)되어 이렇게 만들어 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정부의 무책임한 '문화정책'과 경제를 늘 어렵게만 이끌어주시는 정책 수반자들의
작태(作態)라고 핑게대고 싶으며, 독자의 문화적 인식이 낮아서 그렇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출판 시스템의 부재도 큰 영향이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러한 인식(認識)과 습성(習性)을 한꺼번에 바꿀수는 없습니다. 조금 씩 생각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수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며, 특히 정부가 자기들 입맛에 맞춰 대여점 늘려놓고 고용창출 되었다고
큰소리 치지말고, 일할 회사도 없는 '애니메이션'과 나 육성하지 말며, 문화적 욕구를 다양하게 분출할 수
있는 '문화정책'과 '서민경제'를 살리는데 노력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자는 독자가 냉정하고 늘 옳다고 생각 합니다. 필요하면 읽고, 재미 없거나 관심없으면 안보는게 일반
대중들의 또다른 습성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만화업종에 관련된 사람들뿐만이
아닌 만화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현상황을 개선(改善)하고 대안(對案)을 찾으려고
차근차근 노력한다면 조금 허약해진 대한민국의 만화도 곧 건강을 회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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