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북수문(北水門)입니다. 화성의 중간을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 위에 북수문과 남수문 등 두개의 수문이 있습니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하였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하천이 오염되어 더럽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습니다. 문화재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주변 환경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네요. 다리 사이사이의 곡선이 무척 아름답고 인상적입니다.
'북수문'의 현판(懸板)입니다. 북수문은 편액(扁額)을 화홍문(華虹門)이라 하였습니다.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로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을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하여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았다고 합니다. 북수문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물이 통과하는 수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하여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도록 만들었다고 하네요. (^_^)
지금은 소실된 서울의 '숭례문'과 매우 흡사한 모양을 띄고 있는 사적 제3호인 장안문(長安門)입니다.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대문으로 정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완공하였습니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장안문 누각의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웅장한 위엄을 주고 있으며, 서울의 국보 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라고 하네요.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활을 합니다. 그러나 경비는 무척이나 허술했지요. 이곳도 악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방화를 저지를 수 있는 좋은 장소 입니다. 성(城)을 따라 안으로 바로 진입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단단하고 튼튼하게 벽돌로 쌓아 올린 모양을 하고 있는 이곳은 북서포루(北西砲樓)입니다.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의 포루를 만들고 3층으로서 지대 위에 대포발사를 위한 구멍을 뚫은 혈석(穴石)을 전면 2개, 좌우 3개씩 놓았으며, 그 위에 벽돌을 쌓았고 안쪽으로 판자를 잇대어 2층으로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북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조 18)9월 24일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며, 지붕을 이은 모양이 특이하여 성 안쪽은 맞배지붕이고 바깥쪽은 우전가 지붕이라고 합니다. 정말 멋진 건축물 입니다.(^_^)
드디어 도착한 이곳은 수원화성의 하일라이트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입니다.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 화성에는 서북공심돈,남공심돈,동북공심돈 등 세개를 만들었습니다. 서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 3월10일 완성되었으며 내부는 3층으로 꾸며 2층과 3층 부분은 마루를 깔았고, 사다리를 놓아 위아래로 통하도록 하였습니다. 1797년 1월 화성에 왔던 정조는 성을 순행하며 신하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공심돈이니 마음껏 구경하라"고 하며 만족했던 시설이기도 합니다. 정말 교과서에 나올만큼 너무나 멋진 건축물 입니다.
요번에 처음으로 카메라 렌즈용 필터를 써보았는데 하늘이 파랗게 보이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너무 힘을 줬는지 사진이 아주 새파랗게 질려 버렸습니다. (너무 티난다.-,.ㅜ;)
칼바람으로 인해 얼굴이 얼어 말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느 여중생 두명이 자신들의 핸드폰을 찾기 위해 불을 놓았다는 장소가 이근처 갈대밭 이라고 하던데 찾기는 힘들더군요. 소중한 문화재가 철없는 소녀들의 엉뚱한 호기심에 의해 무참히 타버릴 뻔 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지 일주일 후 뉴스에서는 '숭례문'이 전소되어 필자의 마음을 더욱더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 볼까요?! (^_^)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근처에는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화서공원'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성곽을 따라 갈대밭이 조성되어 있어 분위기 좋게 데이트를 하기 안성맞춤인 장소입니다. 연인끼리 가신다면 수원성을 따라 조성된 한적한 장소에서 '뽀뽀'나 한번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_^)
갈대가 무성한 산책로를 걷다보면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구조물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치(雉-치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써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입니다. 갈대밭과 나무가 '치성'과 너무나 멋지게 자리하고 있어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치(雉)는 꿩을 말하는 것으로서, 능히 자기 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 그 뜻을 따서 치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곳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의 성곽을 따라 서이치(西二雉)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서장대'로 오르게 됩니다. 서장대 옆으로는 서노대(西努臺)가 있습니다. '서노대'는 성 가운데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건축물 입니다. 아무튼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곳이다 보니 운동도 되고 사방을 바라 볼 수 있어 상쾌한 기분이 드는 장소입니다. 헥헥~~!!
드디어 서장대(西將臺)앞에 올랐습니다.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라고 하네요.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하였습니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 하였다고 합니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 옆으로 '효원의 종'이 있습니다. 수원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종각을 항시 개방하여 관광객이 스스로 타종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한번 치려면 1.000원을 내야하니 이점 각별히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모르고 냅따 치면 돈 받으러 아줌마가 뛰어 나옵니다.(^_^) 해가 지고 있어 서둘러 왔던 길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의 멋진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수원화성에는 동력차와 관광객 탑승차량 3량으로 구성된 '화성관광열차'가 있습니다. 앞부분의 경우 임금(정조대왕)을 상징하고 힘찬 구동력을 상징하기 위해 용머리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_^;) 관광객들이 앉는 객차는 임금의 권위를 나타내면서 관람의 편의성을 위해 임금이 타던 '가마'를 형상화 하여 만들었다고 하네요. 가격은 어른이 1.500원,청소년 1.100원,어린이 700원 입니다. 특별히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가 아니라면 타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아래 광장에서 잠시 다리를 풀었습니다. 광장에 비둘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곳에 비둘기들은 저공비행으로 자주 날아다녀서 그런지, 대학로 주변에서 사람들이 입속에서 던져준 음식들을 먹고 뚱뚱해진 일명 '닭둘기'처럼 크지않고 날씬했습니다. 이로써 화성의 두번째 코스를 탐방해 보았습니다. 오늘 돌아본 코스를 설명하자면 북수문(北水門) - 장안문(長安門) - 서포루(西砲樓) -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서이치(西二雉) - 서노대(西努臺) - 서장대(西將臺) -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을 돌아보는 2~3시간 정도가 걸리는 산책코스 입니다. 정말 신나게 돌아다녀 보았으며 마지막으로 야경이 포함된 수원화성 3부를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시 출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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