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원여행(旅行) ♥

서울중구 만원데이트② : 정동교회↔배재학당역사박물관↔정동극장↔중명전↔정동길

스파이크(spike) 2012. 10. 27. 01:30

 

!!!~서울 중구 소공동 2부 스테이지~!!!

 ★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똑딱이 부여잡고 하라는 그림은 안 그린채 또 다시 볼거리가 많은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온 

 '그래피티 작가 스파이크'는 계속해서 소공동 구석 구석을 눈으로 핥트며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지역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출발~!!!

!!~서울 시청 신청사와 서울 시립 미술관을 봤으니 이제 '정동교회'를 볼 차례~!!

!!!~다들 걸어서 5분 거리 안쪽에 모두 모여 있씀돠~!!!

!!!~이곳이 바로 정동교회~!!!

이 건물은 1895년(고종 32)에 착공하여 1897년(광무1) 10월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예배당

입니다. 원래 정동교회는 1885년(고종 22)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감리교 교회

이지요. 처음에는 '벧엘 예배당'으로 명명한 한옥 예배당에서 예배를 보다가 신자수가 늘어나면서

서양식 벽돌조 예배당을 지었다고 하네요.

!!!~~~할렐루야~!!!

!!!~벽돌 건물을 보면 난 돼지 삼형제가 생각나~!!!

!!!~나는야 늑대 소년~~!!!

정동 교회는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나 본래 모습이 잘 남아 지금 보기에도 멋지며, 일본인 '요시자와'

설계하고 '심의석'이 시공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붉은 벽돌을 쌓고 나무 기둥을 세워 트러스 지붕틀을

얹은 단층 건물이기도 하지요.

!!!~위에서 보니 전체적인 모습을 확실히 알겠군요~!!!

건물 내부는 양쪽으로 늘어선 기둥에 의해 3개의 공간으로 구분된 삼랑식 평면이지만 오늘은 문이

열려 있지 않아 사진으로 남기진 못 했습니다. 또한 십자형 경사지붕을 올렸으며,

남쪽 모서리에는 3층 높이의 평탑형식 종탑을 세웠지요.

!!!~헤리포터이 비밀의 방으로 연결 될 것 같은 문이 멋짐돠~!!!

건물 내부는 단순한 평천장으로 만들어 졌으며 외관은 뾰족하게 보이도록 빅토리아 시대의 전원풍

고딕 양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이 건물과 신관이 함께 공존하고 있지요.

!!!~이야~!!!

!!!~높은 곳에서 '덕수궁'을 바라보니 오늘따라 굉장히 새롭게 보이네~!!!

!!!~저기 좌측에 보이는 '중명전'도 이따 갈꺼여요~!!!

정동 교회에서 좌측 얕은 언덕으로 100m 정도를 올라가면 '배재학당 동관-역사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916년 준공하여 배재중·고등학교가 1984년 2월에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기 까지 동교사로

사용한 곳이지요. 배재학당은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가 1885년 8월에 세운 학교로 처음에는 주변

민가를 사들여 교실로 사용하였습니다.

!!!~아펜젤러는 아까 정동 교회를 만든 바로 그분이로군요~!!!

아무튼 이 건물 주변으로 학교 본관, 동관, 서관등이 들어섰고 많은 건축물들이 있었지만 여기만 남고

대부분 철거 되었습니다. 2001년 3월 15일에 문화재로 지정 되었고 건립 당시의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한국

근대건축의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지요.

!!!~월요일은 휴무, 입장료는 무료이며 입장은 9~17시 까지~!!!

!!!~문을 열고 안으로 입장~!!!

!!!~전시물 중에 고종 황제가 하사한 현판이 있군요~!!!

나라도 뺏긴 우물안 개굴왕의 글자치곤 굵고 힘있으며 바디감이 묵직해 보여 "생각 보단 다른 사람이

었나 보군"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글씨 쓴 사람은 당시의 명필 '정학교'라는 것을 발견 하였습니다.

!!!~그럼 그렇지~!!!

!!!~현판의 뜻은 '유용한 인제를 기르고 배우는 집'~!!!

  !!!~한국의 근대 교육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장소니 꼭 한번 둘러보시길~!!!

!!!~그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더 자세히 살펴보죠~!!!

!!!~교복의 낙인, '뺏지'~!!!~지금 보니 귀엽네요~!!!

ㅋㅋㅋ

!!!~~!!!~이분은 주시경 선생~!!!

!!!~아주 잠깐 천연두의 지석영 선생과 헥갈렸음~!!!

ㅋㅋㅋ

주시경 선생은 1894년에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후 배재학당에서

영문법을 공부하면서 우리말 문법을 최초로 정립하였지요. '한글'이라는 낱말을 처음 만들고 교사로서

민족정신 고양을 위해 계몽운동을 전계한 한글 체계 정립의 개척자였습니다.

!!!!~옛날 배재학당에서는 이렇게 앉아 공부했나 봄돠~!!!

!!!~자율 토론식 미쿡 스타일이었나 보군요~!!!

배재학당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정동교회 방면으로 걸어와 정동길 방면으로 200m 정도를 올라가니

우측으로 '정동극장'이 보였습니다. 스파이크도 끽 해봐야 두 번 정도 공연을 본 적 있지만 정말 놀라울

만큼 재미있고 환상적인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지요.(http://www.chongdong.com/)

!!!~여유가 있으시다면 이곳에서 하는 공연을 꼭 한번 관람해 보시길 바람돠~!!!

!!!~정동 극장 바로 옆 골목으론 '중명전'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있씀돠~!!!

!!!~깜빡 잘 못 하면 중명전이 어디에 있는지 못 찾기도 하지요~!!!

!!!~입장료와 관람 요령은 보시다시피~!!!

!!!~이야~이동네는 정말 멋진 벽돌건물이 참 많죠~?!!!

!!!~나는야 늑대 소년~아우~~!!!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 이라는 뜻의 덕수궁 중명전은 1897년경 황실 도서관으로 탄생

했습니다. 러시아인 '사바찐'에 의해 설계된 서양식 전각 중명전은 근대 문물 수용에 앞장섰던

고종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하네요.

!!!~근대 문물 수용 좀 일찍 쫌 하지~!!!

원래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으나,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쳐를

옮기게 되면서 중명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때 일어난 화재로 인해 고종은 순종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약 3년 반 동안 이곳에서 국사를 처리하였다고 하네요.

!!!~그럼 들어가 봐야지~!!!

!!!~글씨 참 단촐 하고 깨끗하네~!!!

실내로 들어오면 각각의 방들마다 자료들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을사늑약'에 관련한 기록들 입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중명전에서 치욕적인 <을사늑약>이 강제 되는데,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중명전을 침범하고 고종과 대신들을 협박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보호국으로 만들었지요.

!!!~이지경이 될 때 까지 국가 지도자들은 뭘 했는가~!!!

!!!~'조약'은 쌍방 문서의 명시적 합의, '늑약'은 힘을 통한 강제적 체결~!!!

!!!~그래서 '을사조약'이 아닌 '을사늑약'~!!!  

고종은 나라 뺏기자 발등에 불이 떨어져 1907년에 헤이그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 합니다.

그들이 그 유명한 <헤이그 특사>로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영국과 일본의 방해로 별다른 성과 없이 발만

동동 구르다 이준의 사망으로 더욱 좌절만 하고 돌아오게 되지요.

!!!?~전구는 오스람 일까~?!!!

!!!~중명전 테라스 안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진데~!!!

!!!?~세상을 바라보며 고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씁쓸한 마음으로 중명전을 둘러보고 정동길 방면으로 걸어나와 다시금 찬찬히 사뿐사뿐 가을 정취를 느끼며

동네를 구경하였습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때가 중학교 시절이었고 청년 시절에도 꽤 많이 다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 없는 거리의 모습은 스파이크에게 늘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바뀐 것이라곤 새로 단장한 깔끔한 카페뿐~!!!

!?!?~나 어릴적 정동길의 이 나무가 보호수였나~?!?!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기억이 방울 방울…

!!!~~~돈 있음 이런 까페에서 차 한 잔 빠라 줘야 하는데~!!!

!!!~만원 데이트라 그럴 수도 없고~!!!

!!!~암튼 제 3탄도 기대해 주셔요~!!!~아직 볼 곳 많씀돠~!!!

!!!~~!!!

오늘도 즐거운 나들이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참 갈 곳 많고 볼 곳 많은 동네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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