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진중권!! 조영남 두 번 째 칼럼에 대한 비판

스파이크(spike) 2016. 7. 15. 13:45


[진중권기고] 유시민도 모르는 '조영남 사건'의 본질(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24343&CMPT_CD=MTOP1_2015#cb)이란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작성하여 예전에 저도 한 번 인터뷰를 한 적 있던 '오마이 뉴스'에 기사를 올렸습니다. 본인의 소신을 어떡하든 관철 시키려는 듯 그와 조영남을 비판한 신문들 중 쟁점인 부분을 하나씩 캡처하여 일일이 반박하는 것으로 구성 돼 있더군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길게 글을 작성하며 수 많은 이유를 갖다 붙이다보니 문장이 너무나 길게 늘어져 읽는데 무척이나 피곤하였습니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말 자체가 길어지기 마련이듯이... 어쨌거나 그 내용 중 상단에 있는 부분부터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어 한 가지 씩 토를 달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는 기고문에서 조영남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예술의 관념이 19~20세기 초에 머물러 있어서'라고 했습니다. 또한 '일부 작가들이 드러낸 처참한 미의식 수준을 비판하고 그들도 현대미술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빠드리고 창작활동을 하고있다'며 조롱 하였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일반대중과 일부 미술 작가들이 수구적 정신에 빠져 있다는 듯 말을 하면서 정작 그가 예로 든 것들을 보면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예술가들과 비교를 했다는 점이지요. 본인 자신도 그런 과거적 미의식에 갇혀 예를 들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진중권은 글 서두에서부터 서양에선 조수를 시켜 관행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렇게 작품 활동을 한 작가들이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모두 알도록 작업 했다는 점 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던 진중권이란 진보적 3류 생계형 평론가가 그 사실을 떠들진 못 했을 테니까요. 또한 실행을 맡기거나 지시를 했다는 것은 원작자가 작품에 많은 부분을 관여하여 완성품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을 의미 하는데, 그 때 당시엔 전화기가 없어 렘브란트가 비둘기 다리에 "가로 폭을 늘리고 세로를 줄여서 십여점 부탁한다"고 조수에게 서신을 띄우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자칭 아트테이너이자 팝아티스트라고 떠벌리던 조영남은 어땠을 까요? 그는 분명 자신이 유명세를 이용해 손수 화투 작품을 자신이 모두 그린 것처럼 방송, 언론에서 얘기 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의 문제제기에 대해 진중권은 계속적으로 '개념미술' 드리대며 또 다른 외국 작가와 일반 대중들이 잘 알지 못 하는 현대미술의 시대적 사항들을 나열하곤 우매한 군중이 흥분한다니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스스로 느껴보란 식의 어려운 미술용어와 인물들을 막무가내 식 오만방자한 잘난척으로 마구 쏟아내기 시작 하였지요.


!!!~깝죽대는 녀석의 입을 칼(刀)로 자르고 싶으나, 그렇게 솟아난 내 마음(心)만 베리라~!!!

!!!~~!!!

▲발췌 주소(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25182)


위의 내용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강인규' 씨의 반박 글이며 그러한 논쟁에 대한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 해 놓아 붙여 보았습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조영남의 행동은 법적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여기에 필자는 하나를 더 첨부해 진중권이 '현대미술의 규칙을 대한민국에서 왜 검찰이 제정하려 드는가?'라고 물은 것에 대한 예를 들겠습니다. 1980년~1990년 대에 '공포의 외인구단'과 주인공 '오혜성(까치)로 유명해진 만화가 이현세 화백이 '천국의 신화'라는 작품을 출간 합니다. 그런데 만화 장면 중 하나가 외설적 내용이 담겨 있다하여 검찰에 의해 곤욕을 치뤘지요. 일본 만화에 비해 너무나도 순궁무진한 작품만을 그릴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옛 이야기를 그리며 굉장히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완벽한 작화를 했음에도 당시 한국 제1의 만화가에게 칼끝을 들이댔던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썩을 때로 썩은 놈들이 칼 들고 남의 살 썩었다며 도려내는 작태 또한 현재진행형~!!!   

  

결국 그렇게 기소 된 이현세 씨는 온 정성을 다해 그려 나갔던 작품을 몇 년간의 법적공방으로 인한 피로감 때문이었는지 흐지부지 끝내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도 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사건을 무죄로 종결 시켰는데, 그 이후 정권이 바뀐 영향도 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변해 검찰이 문화분야에서 칼끝을 겨누는 일은 그나마 조금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검찰이 행한 이런 사건의 결과적 영향 때문인진 모르겠으나, 진중권은 조영남에게 겨누워진 대작(代作) 사건의 결론이 앞으로 이현세 씨처럼 될 것이라 판단하고 조영남을 쉴드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정도 나름대로 해 보았지요. 또한 조영남의 인맥이 워낙 많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자들이 포진 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를 비호 해 '미래가 불투명한 생계형 평론가의 살길을 인적 네트워크로 채워 나가려는 차원에서 이렇게 열을 내 호위무사로 둔갑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특히 조영남의 대리작가를 통한 단가 후려치기로 그림을 조달받아 사인만 하고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 창조경제를 개척한 부분에 대해선 윤리적 문제와 법적인 문제가 대두 됨에도 그 지점에 난해한 미술사조를 끼워넣어 대중들에게 미술을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만들어 혼란을 야기시킨 후 조영남 사건 자체보다 다른 쪽으로 논쟁의 부분이 옮겨 가 버리게 만든 것 같아 그러한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는 짓이 '황장수'랑 똑같얘~!!!


어쨌거나 다시 처음 박스 글 안의 내용으로 돌아가 진중권은 '루벤스의 경우 인물의 얼굴과 손 외에는 조수들에게 실행을 맡겼다'라는 말을 합니다. 또한 '렘브란트는 아예 조수들에게 '렘브란트 풍'으로 그리라고 지시했다'고 했지요. 이 말인즉슨 조수들을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놓고 근거리에서 감독을 했단 말이 됩니다. 하지만 조영남의 경우는 매니저가 전화로 짜장면 주문하듯 문자나 전화를 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하게 주목 해 봐야하는 부분은 '얼굴과 손'입니다.


!!!~왜 얼굴과 손이냐~!!!



얼굴과 손을 제외하곤 나머지 부분을 조수에게 일임한 루벤스는 역시 그림을 그릴 줄 알고 그림도 볼 줄 알며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작가라 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체에서 가장 명시성이 높은 곳이 바로 얼굴(面)이요 그중에 눈(目)은 최고이며 특히 매우 그리기 어려운 인체의 한 부분이 바로 손(手)이지요. 또한 사진이 없던 시절 풍경화가 아닌 인물을 표현한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얼굴과 손이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엄청나게 차이 날 수 밖에 없어 굉장히 섬세한 작업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스타일(style)이라고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개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얼굴과 손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그렸다는 루벤스는 가장 표현하기 어렵고 그리기 힘들며 본인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부위를 자신이 그렸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조수를 시켰다고 해서 조영남이 납품받아 싸인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대리작가 송화백은 인터뷰에서 조영남의 어설픈 작화 능력을 꼬집기까지 했다~!!! 


예전에 일본의 한 만화가가 슬럼프에 빠지니 담당자가 어시들을 동원, 거의 모든 뎃생을 끝내고 얼굴과 손만 빈 공간으로 남겨 쉬어야만 하는 작가에게 강제로 그리도록 해 윤리적으로 비난 받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하나의 작은 공방처럼 운영되는 코믹스 만화와 조영남의 그림은 비교 대상이 아니기에 진중권 식의 잣대로 긍정화 시키는 것은 절대 옳은 방법이 아니지요. 여기서 필자는 그림 한 장 제대로 그려보지 않고 작품을 시대적 텍스트로만 이해한 후 인체의 기본 구조도 알지 못 하고 그림에 대에 떠드는 진중권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선(線) 하나에 따라 보여지는 '느낌'이 달라 질 수 있어 세심하게 신경을 써 작업에 임할 수 밖에 없지요. 물론 앤디워홀이나 제프쿤스 같이 공장형 대량생산이나 이브 클랭의 작품들의 예로 들며 그는 반론을 제기 하지만, 퍼포먼스 같은 형식의 쇼로 이슈화 시켜 작품에 임하는 작가와 작업실의 조수들도 작품 제작에 참여시킴으로써, 의식적으로 완성작에서 미술가의 손길을 지워버린 그들과는 조영남은 표현 방식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있기에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미술사적 이론을 사이사이 접목해 무조건 적으로 떠드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미술협회의 조영남 고소장에도 진중권을 안아무인 평론가라 써 놓았음~!!!



그러면서 진중권은 그런 이야기를 한 송씨를 비꼬듯, 그렇게 조용남 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자가 왜 팔리지 않으며 콘셉트가 없거나, 운대가 안 맞거나 하는 식의 말을 하곤 그것이 현대미술의 논리인양 손가락을 놀려 댔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이러한 접근 방법으로 말하면 송씨나 그 밖의 작가들을 모욕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갤러리 대관료가 비싼 현실에서 송씨 같은 가난한 화가가 전시회를 한 번 하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지요. 또한 갤러리에서 초대전이나 기획전을 한다해도 워낙 많은 작가들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란 좀처럼 쉽지 않으며 자리도 한정 돼 있어 잠깐동안 그림을 전시한들 경기(景氣)도 안좋은 상황에서 하얀 벽면에 빨간 스티커를 붙이기는 하늘의 별을 따다 그림 옆에 붙여 놓는 것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 말은 운대가 맞지 않는 것이 더 적절한 비유일 수 있겠으나 '콘셉트'를 미술계에서 관철 시키지 못 한 것이라 치부 해 버리는 논리가 과연 합당한지 되묻지 아니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조영남은 콘셉트도 있고 운대도 맞아 떨어져 미술계를 관철 시켰는가~??!!! 


 조영남은 '지금은 라디오시대'란 인기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개인다큐 형식의 방송과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그림을 꾸준히 소개 해 왔습니다. 또한 '화개장터'라는 유일무이한 중박 히트곡과 개인적 사생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었지요. 만약 조영남이 강원도 송씨와 같은 비슷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다면 과연 콘셉트를 관철 시켰을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합니다. 아마 그러한 현실에 직면 했다면 조영남 자신도 고향 방구석에서 기타나 튕기고 노래를 부르며 모사(模寫)로 소일 했을지도 모르지요. 즉, 본인의 인지도를 이용, 작품을 선전했던 그와는 출발 선상이 시작부터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앤디워훨은 이렇게 말 했습니다. "미래에는 누구든 15분간(즉, 아주 짧은 시간동안)의 유명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아마도 지금 송씨는 그 15분으로 인해 유명세를 누렸고 대리작가로 평생 살아가야 할 것 입니다. 또한 아주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의 가쉽거리에 파닥 거리다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이라 여겨지네요. 예술의 본질은 솜씨에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남을 기망하면서까지 금전적 이득을 취하며 예술을 논하는 것 자체도 논리적으로 합당치 않아 보입니다. 그런자를 쉴드하듯 수 많은 서양 작가를 늘어 놓고 떠드는 진중권에게 진지하게 한 마디 하고 싶네요.


!!!~더 이상 미술가들을 모욕하지 마라~!!!

!!!~다음 편에서 뵙죠~!!!

-조영남·진중권의 또 다른 이야기-


*조영남과 진중권의 콜라보~!!!(1) (http://blog.daum.net/softmanman/7086976)

*조영남과 진중권의 콜라보~!!!(2) (http://blog.daum.net/softmanman/7086990)

*진중권!! 조영남 두 번 째 칼럼에 대한 비판(http://blog.daum.net/softmanman/7087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