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서평(書評) ◑

슈퍼맨 탄생(誕生)과 미국 만화 - (완결)

스파이크(spike) 2009. 7. 24. 12:08

 

 

미국 코믹스 만화를 보면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입고 있는 의상(衣裳)에 눈길이 가곤 합니다.

몸에 짝 달라 붙는 '쫄졸이'이에 빤스를 밖으로 입고 폴짝 폴짝 뛰어 다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약간

선정적인 느낌도 들곤 하지요. 가설이긴 합니다만 슈퍼 영웅들이 이런 옷을 입는 이유는 남자들 간의 관계를

유달리 강조하는 삶의 조건 속에 동성애적 요소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심리학적 분석도 있습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

 

특히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전 부터 쫄쫄이를 입기 시작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남성 무용수

발레리노(Ballerino)들이 입는 '발레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복장은 민망함을 넘어 공연을 보러

관람객들이 좌석에 앉아 심오한 눈길로 싸이즈와 폭을 비교, 분석케 하는 시각적 측정법을 발달시켜 공연을 

관람 할 때, 창조적 활동시 원활하게 움직이는 우뇌 뿐만 아니라 계산적인 좌뇌의 기능도 증가

시키는 역할도 수행 하게 하였지요.

 

...농담임돠. 진짜로 믿지 마시길...

(^_^;)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팬티가 밖으로 나와 있는 기능성 쫄쫄이를 입는다는 것은 웬만한 능력자가 아니면 

그러한 복장을 착용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며 또한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을 입고 소화해 내기도 보통 일은 아니고요. 근래 이런 식으로 옷을 입은 사람을 

기억해 보자면 얼마 전 서거 하신 '마이클 잭슨' 형님이 유일 하지 안을까 생각되네요.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팬티를 밖으로 어울리게

입기란 거의 불가능 한 일 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능성 '쫄쫄이'인 트리코1(Tricot)를 

'슈퍼영웅'들은 언제 부터 입고 등장 했을까요?

 

그 시작을 알기 위해서는193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36년 등장한 만화 팬덤(Phantom)은 슈퍼영웅이 쫄쫄이를 입고 등장한 최초의 작품입니다.

꼭 잠수복을 입고 물 안경을 쓴 것 같은 주인공이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패션 아이템 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레이 무어(Ray Moore)가 그림을 그리고 리 포크(Lee Falk)에 의해

스토리가 구성 되어 탄생한 첫 번째 코스튬 히어로 였으며, 지금 까지도 이 만화의 영향으로 인해 거의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기능성 쫄쫄이에 빤스를 밖으로 입고 날라 다니고 있지요.  

 

'레이무어'에 대해 아주 간단히 살펴보자면 그는 1905년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나 1984년 미주리에서 사망 할

때 까지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만화가가 되기 전엔 보석상의 아들로 가업을 물려 받아

기술자가 될 줄 알았으나 1936년 신비롭고 환상적인 성격에 적합한 모험 물 '팬덤'을 그리면서

쫄쫄이를 탄생 시키기에 이르지요.

 

아무튼 '의복'에 관한 문제는 여기서 간단히 줄이기로 하고 계속해서 슈퍼맨(Superman)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지를 살펴 보면서 대단원의 결말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슈퍼맨은 두 명의 유태인 젊은이가 탄생 시킨 가상의 신문 연재 캐릭터 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계속적인 작품을 창조 하였지만 5년 동안 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작품을 바라봐주는 편집자들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지요. 하지만 얼마 후 그들의 작품은 미국 수도권 제일 유명한 신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3년이 지났을 때에 신문 연재 수퍼맨은

거짓말 처럼 발전 하였고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슈퍼맨은 1938 6 액션코믹 #1(Action Comics #1)에 처음 출현 했습니다

'조'와 '제리' 처음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 할 당시 130달러에 판권과 소재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였고,

1939년 말에는 6개의 신문사와 슈퍼맨을 연재하기로 계약 하였습니다.

 

1940년대 중반이 되자  'Superman's daily & Sunday Adventure'는 178개 신문에서 볼 수 있었으며

또한 1941년 미국 내 가장 유명한 주간지  'Saturday Evening post'의 아티클에 '제리'와 '조'는

인터뷰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슈퍼맨 코믹 연재물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230개의 신문에

연재 되는 중 이었고 2.50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하는 순간 이었지요.

 

!!!~ 그러나 이 커지면 문제가 발생하는 ~!!!

 

 'Saturday Evening Post' 1941년 이 두 명의 단짝이 매년 75.000달러를 벌어 들인다고 하였으며,

'DC'의 슈퍼맨이 창출하는 수익의 일부를 점유 한다고 말 했습니다 .하지만 1946 '제리'와 '조'는 자신들이

좀 더 나은 처우를 받기 위해 소송을 걸기 시작 하였고 '1948200,000달러를 받고 그들이 만들어낸

슈퍼맨 또는 그 어떤 캐릭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覺書)에 사인

함으로써 소송의 막은 내려지게 됩니다. 그 후  'DC'사는 즉시 필자 명에서 

'조'와 '제리'이름을 지우게 되지요.

 

하지만 '슈퍼맨'에 대한 소송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78년 슈퍼맨의 엄청난 경제적 성공에 따라 'Warner Communication'은 '제리'와 '조'에게 연금

35.000달러와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는 특혜를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슈퍼맨 캐릭터를 포함한 모든 관련

된 것들에는 "조와 제리에 의해 슈퍼맨은 창조 되었다"라는 문구를 꼭 포함 시키기로 합의 하였지요.

  

그러나 슈퍼맨이 탄생한 후 10년 내내, 'DC'는 다른 몇 몇 경쟁 만화 출판자들이 만들어낸 슈퍼맨과

비슷한 파워를 가진 슈퍼 영웅에 대해 소송을 진행 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출판 회사

중에는 원더우먼(Wonderwoman)만든 'FOX Feature Syndicate'

마스터 맨(Master Man)만든 'Fawcett Comics'가 있었지요. 

1941 'DC' 는 슈퍼맨의 복제품인 '캡틴마블(Captain Marvel)'의 존재와 이로 인해 'Fawcett' 가 엄청난

수익 창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고소 하기에 이릅니다. 'Fawcett'는 소송을 하는 와중에도

1940년대 중반 까지 또 다른 슈퍼 영웅들을 제작 하였습니다. 1953년 이 소송은 12년이라는 경이적인 기간

동안 진행 되었고 5번의 재판을 거쳐야 했습니다. 법원은 결국 'DC' 의 손을 들어주었고

'Fawcett' 'DC'에게 벌금을 물고 'Captain Marvel' 과 관련된 

모든 출판을 끝내야만 했습니다.

 

...미국도 예전엔 저작권 법이 엉망이었군요...  

 

그러는 동안에도 '조'와 '제리'는 'New York Daily Mirror''San Francisco Chronicle'까지 계약을

함으로써 해안(海岸)에서 해안까지 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슈퍼맨의 독자들을 점점 늘려가게 됩니다.

또한 일간지와 일요 신문에서 보는 강철맨의 모험에 독자들은 빠져 들어 그의 인기는 점점 커져만

갔으며 그 후 이러한 상황은 1966년 말까지 25년 이상 계속 이어지게 되었지요.

 

'DC' 1970년대 'Captain Marvel' 에 대한 권리를 받아들였으며, 이야기 흐름 중 급하게 캐릭터가

필요 할 때에는 'Kryptonian'의 부제로 종종 'Captain Marvel' 을 이용하는 등

이전의 라이벌 캐릭터들을 같은 편으로 출현 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슈퍼히어로'들은 미술계에도 많은 영향을 선사 하였습니다.특히 팝아트(PopArt)계의 

멜 라모스(Mel Ramos)로이 리크텐스타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소개된 만화에 등장하는 영웅적인 남자 주인공들을 적극적으로 활용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라모스의 <슈퍼맨>과, 리크텐스타인의 <뽀빠이>는 남성적인 힘과 용기를 나태 내는 

전형(典型)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팝 아트(PopArt)로 넘어 가는 과정에서 '아방가르드'는 만화를 발견 했다.

또한 '실험주의적' 만화는 부지불식 중에 현대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움베르토 에코

 

  먼 훗날 슈퍼맨에 관하여 밝혀진 이야기 중 1989년 미국의 한 청문회에서 '필립모리스'사가 1979년 

슈퍼맨(2)에 '말보로' 광고를 삽입 하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지불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걸로 봐선

얼마나 슈퍼맨이 중·장기적으로 인기가 있었는지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의 결론으로 서서히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슈퍼맨을 향한 '제리'와 '조'의 신념은 수퍼맨을 클리브랜드의 작은 아파트에서 전 세계적인 성공으로,

또는 코믹북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인공으로, 그리고 미국 신문 만화 장르의 대표적인

한 부분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앞을 내다보며 뭔가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는 힘은 엄청난 상상력과 많은 부분의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 이었음에도 그들은 결코 도전 정신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게 되지요.

물론 그 이후 두 사람의 삶이 평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성공을 보고 상상력을 키워나간 유능한

젊은이들은 '제리 시겔''조 셔스터'와 같은 상상력과 믿음을 가지고 지금도

미국 코믹스 만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죠 셔스터(Joe Shuster)는 1992년 78살에 생일을 앞두고 사망 하였고,

 제리시겔(Jerry Siegel)은 1996년 82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  

 

...글을 마치며... 

 

 아주 오래 전 부터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꿈과 희망만을 가슴속에 품고 경제적인 이익만을 바라보며 모순(矛盾)으로 가득 차 있는

미국으로 입국 하기만을 갈망 하였지요. 그러한 미국은 세계를 한 순간에 멸망 시킬 만큼 엄청난 양의

핵폭탄으로 무장하고 있으면서도 세계 평화를 외치고, 그러한 평온을 자신들이 이끌어 가길

원하는 국가 또한 미국이었으며, 끝 없는 인종차별과 극과 극으로 달리는 부와 빈곤의 영역

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부여 하는 듯 행동 하면서도 모든 인간이

다 평등하지 않음을 상기시키는 국가 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국가 체계 속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문화적 분위기는 국가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 어려운

소수자 이거나, 도움을 요청해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절대적

능력을 발휘하는 슈퍼영웅이 ('로또'가 되었든 하는 일이 '대박'이 터졌든) 언젠가 자신을 도와 줄 것이라

간절히 믿으며 살아가게 합니다. 그런 믿음에 걸 맞는 환상의 인물이 바로 '슈퍼맨'이며 엄청난 힘과 초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피(血)와 폭력을 싫어하고 정의를 구연하기 위해 악당들과 싸우지만 결코 그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세상의 정의를 바라보고, 또한 시원스런 액션 활극과 모험으로

대중들을 현실적 답답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즐거움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슈퍼맨이 인기가 있는 것 일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도 이현세, 김수정 선생님의 '까치'나 '둘리'가 또 다른 젊은 신진 작가들에 의해

계속적인 연재물이 탄생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가의 전성기가 끝나거나 사망

하였을 경우 그의 캐릭터는 그것으로 생명력을 다하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캐릭터들이 새로운 시도와

노력으로 젊은 신진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개성의 생명력을 부여 받는다면 오히려 죽지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미국의 '슈퍼맨'처럼 만화 속 상상의 인물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또 다른 독자들을

대면하게 될 것이라 생각 되기 때문 입니다.

 

...대본소 구룹 형식의 만화 말고...  

 

...ㅋㅋㅋㅋ...

 

(^_^;)

 

  1. Tricot 트리코 편물기로 짠 메리야스 직물. 레이스와 같은 투명 무늬도 짤 수 있다. 소재로는 나일론·레이온·견·양모·면사가 사용된다.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어 장갑·스타킹·내복·티셔츠 등에 쓰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