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간토(旅行) ◈

메이지 신궁 가는길 - 일본 도쿄 방문기 (7)

스파이크(spike) 2007. 11. 21. 00:23

'하라주쿠'역에서 내리자 마자 우측으로 걸어가다 보면 '메이지 신궁'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관문이 보입니다. '도리이(鳥居)'라고 불리는 기둥은 수많은 변형이 있지만, 2개의 원통형 수직기둥 위에 직4각형의 들보가 가로로 2개 얹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첫번째 가로대는 기둥의 양쪽 끝을 지나 바깥까지 뻗어 있고, 2번째 가로대는 그보다 약간 아래쪽에 걸쳐져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교와 함께 일본에 전래된 인도의 아치형 관문인 '도라나'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만주나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대문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리이'는 흔히 붉은색으로 칠을 하며, 신사의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다. 또 산이나 바위 같은 곳에 세워 그곳이 신성한 장소임을 나타낼때 쓰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둥에 3개의 국화가 특징적으로 보이는데 '가마쿠라시대'의 천황이 국화를 좋아해서, 옷이나, 검등에 넣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후의 천황도 국화를 사용해서,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하네요. 

'도리이'를 지나 조금더 걷다보면 우측으로 연등(燃燈)처럼 보이는 '술통'들이 굉장한 크기로 정리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거라 신기하더군요. '메이지 신궁'은 메이지 천황과 쇼켄 황태후[昭憲皇太后]를 제사지내며, 1915년부터 조영(造營)하기 시작하여 1920년 완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전의 요요기 황실 소유지를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苑)에는 전국에서 365종, 약 10만 그루의 나무가 헌납되어 진귀한 인공림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나무들이 굉장히 많아 도시 한복판에서 신선한 공기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메이지 신궁 외원(外苑)은 천황의 장례식이 치러진 구 아오야마[靑山] 연병장터로 회화관(繪畵館)을 중심으로 '신궁 야구장'을 비롯한 많은 스포츠 시설이 있다고 합니다. 구 본전(本殿)은 1945년의 공습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그 후 근대 신사 건축의 정수를 모아 1958년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시제(時祭)는 메이지 천황의 탄생일인 11월 3일이며 이 날은 국경일(문화의 날)로 정해져 있습니다.

일본 술통 옆으로 서양술통도 있었는데 옆의 안내서에는 프랑스 '브루고뉴'가 원산지인 와인을 '메이지 진구'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해외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가며 나쁜것은 거절하고 좋은 것은 호의를 가지고 받아들일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메이지 황제'의 전문(前文)도 함께 기록돼 있었는데 이런 생각하나가 일본을 바꾼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메이지 신궁' 입구에 들어가게 되면 정갈하게 하는 손을 씻고 신성한 장소에 입장하라는 의미가 있는 우물이 있습니다. 양손을 씻기만 하고 먹는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물을 뜨는 대나무 바가지가 일본 스러운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메이지 신궁의 가장 특징적인 점을 꼽으라면 어떤 것일까요? 그래서 한국의 전통 건물과 무엇이 다른가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처음 발견한 것이 '지붕'과 '처마'였습니다. 지붕을 잘 보시면 한국처럼 기와가 올어져 있지 않는 것을 볼수 있는데 그 모양이 독특하고 신기 했습니다. 저런식으로 지붕을 올리면 여름에 덥고 비가 오면 빗물이 강하게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구요. 하지만 각(角)이 살아있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할수 있겠지요. 이런 모습때문에 일본의 건축 이미지가 중국과 한국과 다른 모습으로 기억 되는듯 보입니다. 

한국의 전통 건축물과 또 어디가 다를까요? 네~!! 보시다 시피 단청(丹靑)의 모습이 다르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한국의 단청에 문양(文樣)

을 넣어 굉장히 화려하고 또다른 멋츨 창조한 반면 일본에는 돌출면은 하얀색을 칠을 하여 깔끔하고 단단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또한 우측을 사진을 보시면 뭔가 허전한 느낌을 받는데 그 이유는 국내에는 지붕의 중간쯤에 기둥을 연결하여 안정적으로 보이게 한 반면 일본은 기둥이 없어 굉장히 시원해 보이고 명쾌한 느낌은 들지만 무게 중심이 우측으로 쏠리는 것 같아 안정적이지 못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요(^_^;) 그래서 일본 건축물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 백과사전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 브래태니커 백과사전 참고▼)

일본은 국토의 대부분이 수목이 울창한 산으로 덮여 있고, 양질의 목재가 풍부한 자연 조건 속에서 목재가 건축 재료의 주종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점에서 화강석이 많이 이용되는 한국이나 벽돌을 적극 활용한 중국의 건축과 크게 대조되는 점이라 합니다. 비가 자주 오고 여름에는 무더우며 습도가 높은 기후조건 때문에 대체로 지붕은 경사가 급하고 실내는 개방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랫동안 불교가 생활에 밀착되어 있어 건축에서도 불교사찰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고유한 종교인 신도(神道)에 영향받은 신사건축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불교건축이 중국식 건축 형태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신사건축은 원시시대 건축에서 유래되는 고유한 형태를 간직하는 점이 주목할 점이라고 합니다.  

 또한 오랜 농경생활 속에서 자연과 동화된 가운데 일본의 고유한 건축관이 형성되었는데, 좌우 비대칭의 건물배치, 수평성을 강조한 외관, 굴곡이 없는 평탄한 실내공간, 단순한 형태, 치밀하게 정비된 세부의 처리 등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건물배치에서는 여러 건물들이 일렬로 늘어서거나 좌우가 서로 대칭이 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경직된 딱딱한 외부공간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건물 외관은 지붕 처마의 평탄한 선을 비롯하여 기둥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수평 부재들과 건물 사방에 설치된 툇마루들로 해서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안정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실내는 네모 반듯한 단순한 내부와 반듯이 처리된 천장으로 밝고 반듯한 실내공간을 꾸미고, 복잡한 채색을 피해 색채를 단순화하고, 창살의 무늬도 수직과 수평선으로 구성하는 등 외관을 단순하게 처리했습니다. 각 부재의 가공에서는 부재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가공하고 이것들이 서로 치밀하게 맞물리고 서로간에 일정한 비례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여 정연하게 정돈된 형태미를 추구한다고 하네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토토로'엔 큰 나무가 나옵니다. 그곳에서 보여주었던 신비스런 나무 처럼  커다란 나무가 필자의 눈에 띄었습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이였는데, 나무 기둥을 둘러싸고 걸려있는 작은 나무판들이 특징이였습니다. 이름을 써서 소원(所願)을 비는 것이라 하는데 한글로 쓰인 것들도 눈에 많이 띄더군요. 배낭여행중이라 가격이 비싸 직접 써서 걸어놓고 오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담아두고 왔답니다.(^_^)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메이지 신궁에서 결혼식 사진을 찍기 위해 신랑,신부가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기모노'를 입은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라 필자의 관심을 많이 끌었는데 '기모노'는 나라 시대(奈良時代:645~724)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남녀가 즐겨 입어왔으며 중국의 파오(袍) 양식의 옷에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기모노의 기본형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소매는 길고 넓으며 목부분이 V자로 패여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단추나 끈이 없이 왼쪽 옷자락으로 오른쪽 옷자락을 덮어 허리에 오비(帶)를 둘러 묶습니다. 여성들의 겉옷인 소매가 짧은 기모노(고소데[小袖])는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1338~1573]에 도입 되었으며 현재 쓰이는 넓은 '오비'는 18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기모노는 흔히 생각하듯이 원래 일본 옷은 아니지만 그 뛰어난 아름다움은 17~18세기 일본의 의상 디자이너들이 이루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장식적인 스타일 덕분에 기모노는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옷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 브래태니커 백과사전 참고)

 

메이지 신궁을 다 둘러보았습니다. 관람하는데 (대략) 1시간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듯 합니다. 메이지 신궁을 보신후 길건너 젊음의 거리라 할수있는 '하라주쿠'역으로 가보시는 것도 좋을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