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원여행(旅行) ♥

종묘(宗廟) 가는길(고궁탐방) - 만원데이트

스파이크(spike) 2007. 11. 28. 00:03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 11번 출구나, 3호선/5호선 8번 출구로 나가시면 '종묘(宗廟)'로 가실수 있습니다.

 '종묘' 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한다면 '창경궁' 과 연결 되어있어 '창경궁'을 보신후에 '종묘'를 보셔도 좋고

'종묘'를 보신후 다시 '창경궁' 을 관람 할 수 있다는 점 입니다.

 

한 번 입장으로 고궁(古宮)두곳을 동시에 즐길수 있는 것이지요.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어린이 500원 입니다. '종묘'는 1시간30분에서 2시간이면 모두 관람 할 수

있습니다. 의외로 볼거리가 많고 한적하게 산책도 겸할 수 있어 데이트 하기에도 적당한 장소라 생각됩니다.

또한 사적 제125호인 종묘는 뛰어난 건축적 가치와 60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제례 행사 등의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2001년에는 종묘 제례 및

제례악이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 되었다고 합니다.

'종묘'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보게되는 망묘루(望廟樓) 입니다. 왕이 제향(祭享)

시 이곳에 들러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나라와 백성을 돌보고자 마음을 가다듬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을

가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임금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지요.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현재 건물 가운데 1칸이 '누마루' 로 되어있습니다.

'망묘루' 옆에는 세종 25년(1443)에 조성된 연못이 있으며 궁궐 연못 중앙에는 '향나무' 가 심어져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마루 -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망묘루' 옆으로 함께 붙어있는 건물은 공민왕 신당(恭愍王 神堂)입니다. 이 곳은 고려 '공민왕'의 신위를

 모신 신당입니다. 공민왕은 고려 31대 왕으로 원나라 세력을 내몰고 나라의 자주권뿐만 아니라 잃었던 북방

영토를 회복한 인물입니다. '조선태조'가 종묘를 지을 때 공민왕의 업적을 기리고 제사 지내기 위해 지은

 곳으로 전해지며, 신당에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함께 그린 '연정'과 '준마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작은 도서관도 있으니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열람(閱覽)

하실 수 있습니다.

'망묘루'옆으로는 향대청(香大廳)이 있습니다. '향대청'은 제례(祭禮)에 사용하는 향,축,폐를 보관하는

곳이었으며 제향에 나갈 제관들도 여기에서 대기하였다고 합니다. '향대청'안에 전석(塼石)이 깔려있는

이 길은 종묘제례때 향(香)과 축문(祝文)을 모시는 길이라 하여 향로(香路)라 합니다.

 

이 길은 신로,신향로,향어로,어로,세자로와 같이 존엄함을 나타내기 위해, 다른 길과 다르게 전석을 깔아

차별을 두고 밟고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네요. '향대청' 안에는 작은 박물관 처럼 제례때 사용하는

물품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멋진 용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용찬(龍瓚)이라 하여 '신관례'때 '울창주'를 담아 제상 앞

관지통(灌地桶)에 조금씩 세번에 나누어 부어 지하의 백(魄)이나 신(神)을 올려 모시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운두가 높은 접시모양으로 손잡이와 입을 벌린 용머리를 단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용의 입

안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이곳으로 술이 흘러 나온다고 하네요. 찬반을 받쳐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정말 훌륭한 작품입니다.

좌측상단의 '국자'처럼 생긴것은 용작(龍勺)이라 하며 준상(尊床)에 있는 준(尊)의 술을 떠서 작(爵)을

채우는데 사용하던 것이라 합니다. 우측상단은 용준(龍尊)과 작(爵)이라고 합니다. '용준'은 대제(大祭)를

마친 다음에 이어지는 음복연(飮福宴)때 왕의 어주(御酒)를 담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몸통에는 발톱이

4개인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왕을 상징하는 용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어주를 담는 용도임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작'은 대제에 사용하는 술잔으로 제상 제일 앞에 놓이며 원통형의 몸체에 아가리는 배 모양이고 3개의

다리가 달려있습니다. 양쪽에 대나무 마디 모양의 기둥을 세웠으며 한쪽 기둥에는 용이 물고 있는 형태의

손잡이가 달려있습니다. 좌측하단의 것은 취위(就位)때 쓰이는 세(洗)'관세이' 입니다. 손을 씻을때

쓰는 도구이며 우측하단의 것은 망료기(望燎器)로써 대제의 마지막 절차에서 축문(祝文)폐(幣)

태우는데 사용하는것이라고 합니다. 대야처럼 생긴 도구에 '잉어'의 모습은 정말로 감탄사가 나도록

멋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훨씬 정교한 모습입니다.

'종묘 제사'는 왕이 친히 지내는 국가의 대사(大祀)인 만큼 사용하는 제기(祭器) 또한 특별히 제작, 관리

되었다고 합니다. 제기에 제작 연대를 새기거나, 사용 연한을 정해서 정전 동협실의 제기고(祭器庫)에 별도로

보관하고, 제기가 못 쓰게 될 경우에는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종묘 제사는 왕실 조상에 대한 근본에 보답하는

의미로 지냈기 때문에, 제기도 처음에는 질박한 나무나 흙으로 빚은 제기를 사용하였으나, 후대에 와서

왕실의 절대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구리로 만들었으며, 제기의 형태나 문양도 사물이나 신체에서

취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계절별로 달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종묘제사에 차려지는 음식은 국가제사라는 위상에 걸맞게 정성을 다해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종묘제사는 왕실 조상에 대한 근분에 보답하는 의미로 지냈기 때문에, 제사 음식도 생식(生食)을

하였던 상고시대의 풍습에 따라 익히지 않은 고기나 과일 등을 화식(火食)과 함께 진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에 쓰는 술도 울창주,예제,앙제,청주 등4종류를 쓰는데, 강신과 헌작 때마다 달리 사용하고, 계절마다

담는 술항아리도 달리하였습니다. 또한 근본에 보답하는 의미로, 술이 없던 상고시대를 기려 맑은 물인

명수(明水)와 현주(玄酒)도 함께 준비하였다고 하네요.

어숙실(御肅室)은 왕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제례를 준비하던 곳입니다. 종묘의 정전 동쪽에

자리한 어숙실은 '제궁' 또는 '어재실'이라고도 불리지요. 담으로 둘러진 이 구역의 북쪽은 어재실, 동쪽은

세자재실, 서쪽은 '어목욕청' 입니다.

 

제례씨 왕과 세자는 어숙실 정문으로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서협문으로 나와 '정전'과 '영녕전'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습니다. 이 건물은 태조 4년(1395)년에 정전과 함께 지었으나,임진왜란 중 불에 탄 것을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정전의 규모가 커질 때마다 이 건물은 동쪽으로 옮겨지어졌다고

합니다. 목욕을 할 때 혼자 했을지가 궁금하네요.

(^_^)ㅋ 

공신당(功臣堂) 주변 모습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공신당'은 태조를 비롯하여 정전에 모셔져 있는 역대

왕들의 공신 중 83분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맨 우측 사진은 '공신당'의 문을 촬영한

것인데 육중한 자물쇠가 뭔가 대단한 것이 들어있는듯 '꽉' 잠겨 있습니다.  

이곳은 영녕전(永寧殿)

입니다. 보물 제82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영녕전'은 정전에서 옮겨

진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묘(別廟)

입니다.세종 3년(1421) 5묘제의

관습에 따라 정전에서 나와야 하는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16실에 왕의 신주 16위, 왕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종묘를 돌아보니 '굴둑'이 독특하게 생겼더군요. 서양식 '굴둑'과는 모양이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영녕전 뒷쪽으로 '개구멍'처럼 보이는 작은 공간도 있었는데 비가오면 물이 잘 빠지라고 만든 배수구 처럼

보였습니다. 하나하나에 세심한 신경을 쓴듯 보이는 우리의 빼어난 건축물 입니다.

'종묘'의 하일라이트(highlight)라 하면 역시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전(正殿) 입니다. 정전은

종묘의 중심건물로서 19실에 '태조'를 비롯하여 공덕이 있는 왕의 신주 19위, 왕비의 신주 30위, 총 49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일 목조 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총101M)이며, 전면에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

만든 넓은 월대를 조성하여 사묘(祠廟) 건축으로서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사를 받드는 곳입니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궁궐의 동쪽에 종묘를 건립하고 서쪽에

사직단을 세웠습니다. 현재의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으로 되어 있는데, 종묘는 원래 정전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정전 건물은 태조 3년(1394)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되었고, 영녕전은 세종 3년(1421)에 완공

되었습니다. 정전과 영녕전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광해군 즉위년(1608)에 재건 되었으며,

그 후 몇 차례의 증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곳 종묘는 65세 이상의 노인분들은 무료로 입장하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분들이 많이들 오셔서

쉬고 계셨습니다. 종묘 정문앞으로 '세운상가'가 있고 종로쪽으론 '탑골공원'이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상대로 정문 주변에서 밥을 나눠주기 때문에 노인분들이 많이 계신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정문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걸어가면 '광장시장'도 있으니 종묘를 다 둘러보신후 배가고프다면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 으로 가서 간단하게 요기(療飢)도 할 수 있습니다.

 

...종묘도 참 멋진 곳이네요...   

 

!!!~~!!!

오늘도 즐거운 나들이 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참 갈곳 많고 볼곳 많은 동네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