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광장시장을 추억하다!!

스파이크(spike) 2025. 11. 18. 18:11


요즘 친구들이야 라디오를 예전처럼 듣지는 않겠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음악이나 사연(썰)을 들으려면 라디오가 거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라디오 방송에서 '종로 5가 보령약국'이라는 광고가 하나 있었는데, 가수 '이문세'가 진행하시던 '별이 빛나는~밤에'라는 제목의 라디오 프로그램 중간에 한 번씩 나오던 광고였다. 약사가 몇 분이고 일요일은 쉰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종로 5가 보령약국 길 건너에 있는 장소가 바로 '광장시장'이다.

'광장시장'과 '종묘' 근처는 자유당 시절 정치 깡패 '이정재'의 부하들이 시위를 하던 고대생들을 습격하여 사망케 한 후 결국 4.19 혁명이 일어나도록 촉발시킨 역사적 과거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필자가 10년을 넘게 다닌 '광장시장'의 '먹자골목'이자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서민들의 애환(哀歡)을 한잔 술로 풀어 버리는 멋진 곳이었다. 지금 여기에 올리는 사진들은 2007년 광장시장에서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포스팅한 것들은 다시 정리해 소개하는 거다. 이때 이 글이 다음(DAUM) 메인 화면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아마 광장시장에서 술 먹는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던 신선한 내용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이야길 계속 이어가자면 지금은 안 다닌 지 오래 돼 이곳 여사장님이 영업을 계속하시는진 알 수 없으나, 1999년부터 2012년까진 단골로 다니던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그곳이 바로 '명자네 빈대떡' 집이다. 을지로 3가에서 하던 일이 끝나면 주머니가 가벼웠던 나로선 맘이 맞는 동료와 이곳에서 저녁 겸 술 한 잔으로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자 모양의 '코노지' 형태의 좌판식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술들을 마셨는데, 유독 이 명자네 빈대떡에만 늘 손님들이 가득 차, 앉을자리가 없을 때도 간혹 있어 다른 집으로 가야만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여기 광장시장에서 빈대떡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 중 미모가 제일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 본인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때라 명자네에 가면 명자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다들 40대 중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손님들이 거의 전부였기에 젊은 친구 둘이 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앉아 유리로 된 냉장고를 보고 미리 만들어 놓은 전들을 골라 주문을 하면 계란형 플라스틱 접시에 전들을 올려 주셨다. 어쨌건 '광장시장' 먹거리 시장은 술값이 싸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장소였다. 두 사람이 찾아가 저녁식사를 대신한 '파전'에 '소주ㆍ막걸리'를 배부르게 먹는다 해도 2만원이 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장사를 하시거나 지게꾼, 오토바이 배달(딸배완 다름) 분들과 이곳을 찾는 서민층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 가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대문 일대로 야간 장사가 활발히 이루져 유동 인구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안주 종류로는 대부분이 빈대떡(부침개)이고 생선이나 육류 지짐이도 꽤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각이 19~20시 때였는데 홀로 이곳을 방문해 고독한 몸짓으로 한 잔 하고 가시는 중년의 아저씨들과, 배달하시는 분들, 그리고 동료들과 술 드시러 오시는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서민들을 볼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관광지도, 아니었고 한강 이남 쪽 사람들은 이곳 시장을 많이 찾지 않았다. 이곳이 폭발적으로 사람들로 붐빈 것은 블로그의 탄생과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서의 폭발적 반응 때문이었다. 오히려 본인은 그 이후에 평일에 사람들이 많아져 잘 안 가게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나 홀로'오시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저녁 겸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담배 한 모금으로 하루의 시름을 토해낸 후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이젠 볼 수 없게 된듯하다. 그때는 담배를 술 마시며 그 자리에서 폈다.

그렇게 소주 한 병에 새우와 김치 부침개를 놓고 마늘, 고추, 양파가 썩인 간장에 찍어 먹으며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동료와 나누던 시간이 정말 즐거운 한때였단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늘 가벼웠던 지갑과 허기진 배에 뜨끈한 부침개를 먹으며 고소한 입김을 토해내던 필자는, 소주 한잔에 기분 좋은 흐뭇함을 느끼며 이렇게 얘기한 기억이 난다.

!!!~와~오늘은 쏘주가 달아~!!!

그렇게 소주를 각자 두 병 정도 마시며 술기가 올라올 때면 일 년 열두 달 하루를 빼먹지 않고 어김없이 등장하시던 거리의 멋쟁이 색소폰 연주가 '백연화' 할아버지가 등장하신다. 늘 한결같은 복장과 길쭉한 모자를 쓰고 한 곡당 천 원에 술 한잔 드신 분들 앞에서 연주하시는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기쁘게도 하시고, 아련한 느낌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당시 연세가 80대셨으니 지금 살아 계신다면 아흔두세 살 정도 되셨을 듯. 아무튼 색소폰 연주로 소주 한잔에 깊은 생각에 젖어들게 하기도 하고, 사진에서 처럼 젓가락을 두드리며 아저씨들은 신나게 노랠 부르기도 했다. 그 옆에 앉은 손님들도 덩달아 흥얼거리기도 했고. 저시절엔 노래방 기기도 발달해 길바닥에서 노랠 부르는 분위기가 거의 사라진 때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ᆢ요즘 애들은 '작부'를 알까ᆢ?!!

그렇게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길바닥 한복판에서 색소폰 연주에 맞춰 춤도 추었다. 지금 보면 대단히 민폐적인 짱깨식 분위기라 욕할 수 있는데, 저때만 해도 등산 마치고 지하철 맨 앞뒤칸이나 노약자석에서 막걸리판 벌리는 일도 흔했다. 어쨌거나 2007년에 올렸던 포스팅을 근거로 글을 쓰다 보니 넋두리가 길어졌다. 또한 글을 썼던 필자가 이제는 저 사진에 나오는 분들처럼 나이를 먹게 돼, 이렇게 다시금 광장시장이 입에 오르면서 옛 사진을 찾아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무튼 길어서 이만 줄이기로 하고 반응 괜찮으면 하나 더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