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OTT서비스는 볼께 너무 많아서 볼께 없어!!

스파이크(spike) 2025. 12. 17. 08:39


상점에 물건이 너무 많아도 고르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데 넷플릭스를 비롯한 영화·드라마 플랫폼에 들어가 보면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작품 수가 ‘많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정말 엄청난 콘텐츠들이 널려 있다. 유럽 영화부터 인도 영화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 봤던,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작들은 의외로 많이 빠져 있다. 이 점은 분명한 단점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작품을 보려면 이곳저곳 흩어진 OTT플랫폼을 찾아다니며 가입을 하거나, 또다시 돈을 지불해야 한다. 몇 편 보고 싶은 작품 때문에 매번 결제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 지금은 대표적으로 넷플릭스와 웨이브 정도만 유지하며 그 안에서 구미에 당기는 것들만 골라 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무엇을 볼지 ‘선택’하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특히 외국 드라마의 경우, 동서양의 문화적 배경 차이 때문인지 내용이 허술하게 느껴지는 작품들도 적지 않아, 1~2편을 보다가 흥미를 잃고 접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봤는지조차 헷갈리고, 제목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이제는 작품의 제목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 일부가 ‘인기작’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내가 이름조차 잘 알지 못했던 나라의 드라마를 보게 될 때면, 그들의 삶과 일상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묘한 재미가 있다. 미국과 일본 드라마에 익숙해진 패턴 속에서, 유럽 시골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전원일기 같은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재미보다는 ‘신기함’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마치 드라마로 보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느낌이랄까.

문제는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선택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넘어왔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방송사가 편성해 준 시간에 맞춰 앉아 보기만 하면 됐고, 재미없으면 “오늘 방송이 별로네” 하고 말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엇을 볼지, 어디서 볼지, 돈을 쓸지 말지까지 모든 판단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고, 선택이 틀리면 시간과 집중력은 그대로 증발해 버린다.

플랫폼들은 끊임없이 “취향 저격”, “추천 알고리즘”을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추천 목록 앞에서 더 오래 머뭇거리게 된다. 이미 수백 편의 콘텐츠를 훑어보고, 예고편을 보고, 평점을 확인하고, 1화를 재생했다가 멈춘 기억들이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감상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에 가까워진다. 고르기 전부터 피곤해지고, 막상 틀어 놓고도 “이걸 보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끝까지 완주한 작품보다 중간에 포기한 작품이 더 많이 남고, 기억에 또렷이 남는 제목은 오히려 점점 줄어든다. 콘텐츠가 넘쳐날수록 경험은 얕아지고, 취향은 선명해지기보다 흐려진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전에,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만 늘어나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낯선 나라의 드라마를 틀어 보고, 이름도 생소한 영화를 눌러보는 이유는 분명하다. 완성도나 재미를 떠나, 그 안에 잠깐이라도 다른 삶의 결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공식과 빠른 전개에 지친 마음이, 어느 순간엔 느린 화면과 어색한 리듬을 통해서만 쉬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작품들은 끝까지 보지 않아도, “저런 삶도 있구나”라는 인상 하나만 남기고도 충분히 역할을 한다. 마치 드라마를 통해 잠시 다녀오는 작은 여행처럼.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좋은 작품을 찾고 있는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틀어도 괜찮고, 놓쳐도 아깝지 않으며, 끝까지 보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그런 시간 말이다. ‘무엇을 볼까’가 아니라, ‘그냥 흘러가도 되는 밤’을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참을 넘기다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않은 채, 썸네일 화면만을 열심히 구경한 후 OTT앱을 끄곤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콘텐츠가 많아서 피곤한 게 아니라, 쉬기 위해서조차 선택을 강요받는 이 시대가 조금 버거운 건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