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1)트럼프는 살인자인가 애국자인가?!!

스파이크(spike) 2026. 3. 20. 07:16


국가는 처음부터 정의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가장 강한 자가 가장 약한 자를 제압하면서 시작된 구조다.

그 위에 질서를 세우고, 그 질서를 ‘’이라 부르고, 그 법을 ‘정의’라고 포장했을 뿐이다.
그래서 국가의 본질을 한 단어로 줄이면 결국 이것이다.

!!ᆢ폭력ᆢ!!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 조직이다. 개인이 휘두르면 범죄가 되는 힘이, 국가가 휘두르는 순간 질서가 된다. 이 모순적인 구조 위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지도자는 '살인자'인가, 아니면 '수호자'인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국가는 원래 사람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도 그 안에서 살아간다.

!!ᆢ이유는 하나ᆢ!!

질서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법천지에서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이다. 전쟁터에서도, 마약 카르텔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도, 정의를 말하는 정치인은 오래 살지 못한다.

결국 인간은 선택한다.

완전히 자유롭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계와, 어느 정도 억압되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사이에서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정의보다 질서를 먼저 놓는다. 질서는 생존의 조건이고, 정의는 그 위에 세워지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질서를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희생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아니 허용 된다는 게 가능키나 한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10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하는 것, 1000명을 위해 10명을 희생하는 것, 심지어 그 안에 민간인이 포함되는 상황까지도 비극적이지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고 본다.

국가는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 그 희생을 결정하는 자와, 그 희생을 감당하는 자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버튼을 누르고, 죽음은 다른 사람이 맞는다. 그래서 국가의 폭력은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 결코 가볍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나는 한 가지 기준을 둔다.

그 폭력이 공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권력자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인가. 이 기준이 무너지면, 그 순간 국가는 보호자가 아니라 범죄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가 더 필요하다.

!!ᆢ책임ᆢ!!

국가는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희생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질서'가 아니라 '착취'다.

나는 최소한 두 가지는 필요하다고 본다.

도덕적 책임과 금전적 배상.

희생은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희생을 가볍게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국가는 생존을 위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폭력의 무게까지 외면하는 순간, 그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질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그 피의 무게를 끝까지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질서는 이미 정의를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