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만화책 속 슈퍼 히어로들은 이제 스크린을 뚫고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날아다닌다. 하늘을 가르고, 총알을 튕겨내고, 도시 하나쯤은 하루 저녁에 구해낸다. 너무 그럴듯해서 잠깐 착각이 든다. 저런 존재가 실제로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덜 더럽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우리는 그 비현실적인 존재들에게 이토록 열광할까. 외모 때문일까, 재력과 힘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상적인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압도적인 능력 때문일까.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그들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정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삼겹살 무한리필처럼 끝이 없는 무료 봉사, 거기에 어떤 권력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중립성. 정치적 계산이 배제된 정의라는 환상이 그들을 더욱 성스럽게 만든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는 그런 존재가 없을까. 악당을 쓸어 담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 말이다. 있다. 경찰, 검찰, 군인. 이 말을 읽고 벌써부터 “미친 거 아니냐”, “지금 장난하냐”는 반응이 나올 걸 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 일반 시민이 가질 수 없는 총과 권한, 강제력과 국가의 이름을 손에 쥔 집단. 그 힘의 크기만 놓고 보면 이들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오리지널 슈퍼 히어로가 맞다. 나쁜 놈을 잡고, 처벌하고, 나라를 지킨다. 설정만 보면 완벽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들이 정말 우리의 영웅처럼 느껴지느냐는 질문 앞에 서는 순간,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일까. 부모의 고마움을 당연하게 여기듯, 늘 곁에 있는 존재라 체감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그건 변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니,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영웅은 강한 힘을 가졌기에 존경받는 게 아니라,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가 명확하기 때문에 존경받는다. 하지만 현실의 슈퍼 히어로들은 종종 정의보다 조직을 먼저 보고, 국민보다 권력을 먼저 본다. 어떤 악은 과하게 때리고, 어떤 악은 애써 못 본 척한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사는 입에 달고 살지만, 현실에서는 줄을 서고 번호표를 뽑는다. 그래서 우리는 스크린 속 영웅에게는 환호하면서도 현실의 영웅 앞에서는 냉소를 보낸다. 영화 속 히어로는 배신하지 않지만, 현실의 히어로는 때때로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정의가 직업이 되는 순간, 정의는 관리 대상이 되고, 관리되는 정의는 언제든 선택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영웅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단지 힘을 가진 공무원, 혹은 힘을 가진 조직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강함 때문이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저 세계에서는 정의가 계산되지 않고, 힘이 거래되지 않는다는 믿음. 현실에서 그 믿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니, 우리는 스크린으로 도망친다. 히어로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현실의 히어로를 의심하는 기묘한 이중 구조 속에서 말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편함이야말로 질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진짜 슈퍼 히어로가 필요한 건 영화관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한 말이다.
☆
'◐ 낙서비평(政治)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런 젠장!! 다 날라갔어!! (0) | 2026.01.12 |
|---|---|
| 이 새낀 어느나라 대통령이야? (2) | 2026.01.11 |
| 정신나간 법들을 계속 만드네!! (3) | 2026.01.10 |
| 미국ㆍ일본ㆍ한국!! (2) | 2026.01.10 |
| 찢명아, 늑대는 안나타나니?!! (0) | 2026.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