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엑썰런트인플라이트>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7. 29. 20:47


그는 비행기를 타는 일이 죽도록 싫었다.
출장은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반복됐지만, 비행 하루 전만 되면 가슴께가 조이듯 답답해졌고, 속은 헛헛하게 뒤집혔다. 특별히 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고도 수천 미터 상공의 그 조밀한 금속 안에서, 한 치 오차도 없이 고정된 의자에 몇 시간씩 몸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저리가 났다.
그에겐 감옥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날 밤도 평소처럼 안정제 한 알에 수면제를 곁들였다. 그러나 약효는 오래가지 않았다. 새벽 네 시, 갑작스레 눈이 번쩍 떠졌다. 침대 옆 협탁 위를 더듬던 손이 스마트폰 대신 수화기를 건드렸고, 떨어진 핸드폰이 번쩍— 하고 화면을 터뜨리듯 밝혔다.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시간만 확인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씨... 진짜 또 가야 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킨 그는 핸드폰을 침대에 툭 던져두고, 질질 끌리는 발로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얼굴을 헹궈내며 거울 속 자기 얼굴을 잠시 마주했지만, 그 표정은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했다. 기계처럼 양복을 걸치고, 그는 여름이면 아직 대낮처럼 밝을 새벽도 아닌 어두운 길을 나섰다. 공항철도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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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출근 시간대의 1호선은 늘 그렇듯 꽉 들어찼다. 앉을 자리는커녕, 사람들 틈 사이로 숨 쉴 공간조차 드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한 얼굴들, 무표정한 눈빛, 눌린 숨소리, 가끔씩 터지는 하품. 그는 그들 사이에 서 있으면서도, 마치 이 군중 속에 투명인간처럼 끼어 있는 기분이었다.

밤잠을 설친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지하철 특유의 냄새— 향수와 땀, 눅눅한 먼지, 희미한 담배 찌든내까지— 온갖 체취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 안에서 그는 점점 무감각해졌고,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엉켜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뽕짝 음악이 폭탄처럼 터졌다.
낮고 둔탁한 스피커음에 모두가 그쪽을 흘깃 돌아봤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음악 주인은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할 뿐, 전화를 받을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짜증기가 번지기 시작한 찰나, 음악이 뚝 끊기더니, 이어진 건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들렸다.

“전화는 왜 했능가? 뭐시? 둘째 돌잔치? 아, 됐어잉. 내 자식도 못 챙겼는디, 형님 자식까지 내가 챙겨야 쓰것나!”

갑작스런 사적 통화는 지하철 전체를 졸지에 ‘가족 모임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피식, 마른 웃음을 흘리며 옆자리 흰 이어폰을 낀 승객들을 힐끔 쳐다봤다.

“저것들은 귓구멍에 방탄을 씌워놨네...”

귀를 틀어막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는 사실이 괜히 부러웠다.

하지만 그 평온도 잠시였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이번엔 유튜브를 켰다. 깡통 굴러가는 듯한 중국어 더빙이 울려 퍼지고, 알 수 없는 게임 영상의 배경음악이 지하철을 점령해갔다.

그는 눈을 감았다 뜨며, 참을성을 다잡았다.
그러다 문득, 상상 속에서 자신이 그 남자의 명치를 발로 걷어차는 장면이 선명히 그려졌다.

‘씨발... 짱깨 새끼 졸라 짜증나게…’

욕설이 혀끝까지 치밀었지만, 꾹 삼켰다.
인종차별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공중도덕이 무너진 모습을 볼 때면,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균열나는 느낌이었다.

정치인들은 표심을 위해 중국인을 감싸고, 역차별을 ‘다문화’라 포장했다. 그 모든 게,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여기서도 쎄쎄, 저기서도 쎄쎄…'

그는 이 말을 입안에서 작게 되뇌이다 삼켰다.
웃음기 섞인 씁쓸함이 혀끝에 맴돌았다.

다음 역에서 문이 열리자, 이번엔 스테인리스 손수레를 끄는 남자가 “돋보기 싸게 팝니다~!”를 외치며 차량안으로 비집고 들어섰다.
잡상인, 통화자, 유튜브 영상, 사람들의 하품과 미간 찌푸림… 모든 소리가 마치 한데 뒤엉킨 혼돈의 교향곡처럼 울려 퍼졌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씨발… 싹 다 죽여버리고 싶네.”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말이 입 안에서 맴도는 것만으로도 속이 조금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1호선은 왜 이렇게 미친 놈들만 모아놓은 거야… ? 틀딱, 마계 인천, 홍어 새끼들… 진짜 고담시 따로 없네… 밤에 베트맨 나오겠어”

그때, 누군가 그의 등을 두 번, 톡톡 건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허리가 살짝 굽은 작은 할머니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하이, 헬로? 웨어 유 프롬?”

순간, 그는 멍해졌다.
할머니는 약간 밝게 물들인 머리에 진한 분을 바른 얼굴, 그리고 소녀처럼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 한국 사람이에요.”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되물었다.

“그래? 근데 키가 웰케 커?”

“190이요.”

“어이구야~ 키가 딱 외국 사람 같네. 그냥 외국인이여!”

그는 멋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하지만 예기치 못한 관심은, 뭔가 그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는 진심으로, 이 공간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멀어지고 싶었다.

다행히도 곧이어 전동차 내부 방송이 울렸다.
「이번 역은 공항철도 환승역입니다.」
그는 재빨리, 그러나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했다.

“아… 저, 여기서 내려야 돼서요.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마치 탈출하듯 전철 밖으로 빠져나왔다. 혹시 할머니가 뒤따라올까봐,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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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철도 플랫폼

공항철도 플랫폼에 도착한 그는, 푸석한 숨을 토해내며 한쪽 유리 벽 앞에 섰다.
투명 방음벽에 붙은 낙서보다 못한 싯구절이 눈에 들어왔지만, 뇌리에선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그의 왼편으로 덩치가 다소 있는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김포… 양촌리 공장, 어떻게 가?”

강한 억양이 묻어나는 말투.
하얀 도토리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 중동계보다는 남아시아계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뒤에는 친구로 보이는 또 다른 외국인이 뒤쪽에 붙어 있었다.

그는 잠시 당황했다.
툭툭 던지는 반말로 하는 말투에 살짝 언짢아졌지만, 동시에 외국인이라 그런가 싶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외국인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서 출발해 왔어요?”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어디서 출발했냐고. 어디서 와서 여기 온 거냐고.”

외국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용인 공장. 오늘, 다른 공장 갈 거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나라, 진짜 잡탕이 돼가는구나…’

편견은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플랫폼에서 ‘양촌리 공장 가는 길’을 묻는 외국인이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다는 사실이, 그에게 묘한 현실감을 안겼다.

그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꺼냈다.
검색창에 ‘양촌리 가는 길’을 입력하고, 지하철 경로를 확인한 뒤, 영어와 몸짓을 섞어가며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그 순간, 마침내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외국인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땡큐. 땡큐 베리 마치.”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악수를 받아주었다.
이방인 특유의 꾸밈없는 미소가 눈 앞에 나타나기 무섭게, 외국인은 친구와 함께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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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도착

그는 스크린도어가 열리자 여기가 출발점인 것을 알고있어 재빨리 열차 안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과 피로, 짜증과 무력감. 온갖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편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했다.

‘그래도 이 나라는... 아직 돌아가긴 하네.’

그렇게 공항철도는 인천공항역에 도착했고 그는 제1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흐트러진 인파 사이에 섞여 공항안으로 연결 된 지하도를 거처 공항 내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때 푸르스름한 아침빛이 커다란 유리돔 너머로 흘러들고 있었고, 로비는 이미 다양한 언어의 말소리로 북적였다.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 자동발권기의 전자음,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의 웃음소리...
이제 그는 그런 소리들이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건 그냥, 다큐멘타리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 같았다.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세상의 소리.

그는 자동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해 공항 2층 메인 로비로 올라갔다. 출국장 입구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주고받는 여행자들, 급히 체크인 카운터를 향해 뛰는 사람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와 유모차를 미는 부모들… 그야말로 작은 세계가 복도 위에 펼쳐져 있었다.

"외국인이 이렇게 많다니... 진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구나...?!"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로비 한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그리고 백팩을 열어 여권과 e-티켓을 꺼냈다.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전날 밤 먹은 수면제의 잔상이 남아있는 탓인지, 아니면 단지 ‘비행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생기는 불쾌감 때문인지...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이 몇 시더라…’

티켓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Tokyo, HND. 08:40 Boarding / 09:10 Departure.
2시간 남짓. 길지 않은 비행이지만, 그에게 그 시간은 감옥 같았다. 조용하고, 귀가 먹먹하며, 세상과 단절 된, 밀폐된 감옥.

보안검색대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익숙한 순서대로 움직였다. 벨트를 풀고, 손목시계를 풀어 바구니에 담고, 노트북은 별도로 꺼내놓았다. 보안요원이 신속하게 그를 스캔했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공항 내부는 새하얗고 반짝였다.
무인 면세점과 명품 숍, 아침부터 줄을 선 커피 매장까지. 그는 그런 풍경들 사이를 무심하게 지나쳤다. 더는 호기심도, 감탄도 없었다.
공항은 이제 더 이상 설렘의 장소가 아니다. 그에겐 출근길처럼 반복되는 낡은 풍경일 뿐이었다.

탑승구 근처에 도착한 그는 구석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서로 피곤한 표정의 여행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었고, 어디선가 “파이널 콜”을 알리는 방송이 울렸다.
그는 배낭을 옆에 내려놓고, 짧게 눈을 감았다.

기내에서 뭘 마실지, 옆자리는 누구일지, 창가 쪽일지 통로 쪽일지... 그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떠나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그는 진짜로 지쳐 있었다. 장소가 아니라, 떠나는 행위 그 자체에...

‘나는 왜 이렇게까지 계속 떠도는 걸까?’

불현듯, 답 없는 질문 하나가 가슴 속에 부유했다.

진동.
주머니 속 핸드폰이 미약하게 울렸다.
그는 무심코 화면을 확인하다가, 배경 사진을 본 순간 손을 멈췄다.

햇빛이 쏟아지던 여름날 저녁,
해변가에서 살짝 헝클어진 머리로 웃고 있는 여자 친구의 얼굴.

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는 눈꺼풀을 살짝 내리감았다.

'그래, 결국 이것 때문에 참는 거지…'

비행이, 여정이, 이 피곤한 반복이 그 미소 하나로 가라앉는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멀리서, 그러나 분명히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이 모든 피곤을 감내할 이유였다.

「탑승이 시작되었습니다. Economy Class 승객은 3구역부터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분한 게이트 방송이 울렸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권과 탑승권을 다시 손에 쥐고, 등 뒤로 배낭을 둘러메었다. 줄은 천천히 움직였고, 그는 그 흐름에 맞춰 발을 내디뎠다.

비행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여행’이 아니었다. 그저 또 하나의 의무. 반복되는 출근, 혹은 피할 수 없는 순환.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지겹고 피곤한 여정의 끝, 그 어딘가에서 들려올 누군가의 목소리 하나가 세상의 모든 기내 방송보다 더 반가울 거라는 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