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심미안(審美眼)의 발견>(1) 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8. 4. 00:06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나빴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텔레비전을 너무 가까이에서 본 탓에 눈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지만, 본인은 딱히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의 눈은 점점 나빠졌다. 근시, 원시, 노안이 구분 없이 찾아왔고, 양쪽 눈 모두 일상생활에 점점 더 불편을 초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녘,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 글자들이 선명하게 읽히는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이다. 마치 눈을 감은 채 글을 '느끼며' 읽어 내려가는 초능력을 얻은 듯했다.

그렇게 눈 감은 상태로 화면의 글자를 읽어 내려가고 있을 즈음, 이불 속에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을 울리며 그의 꿈을 깨웠다. 잠에서 깬 그는 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방금 꿈에서 보았던 장면과 비슷한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실망한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혹시 정말 눈을 감은 채로도 글자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은 채.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눈을 감자 보이는 건 그저 캄캄한 어둠뿐. 글자는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눈꺼풀 너머로 글자를 느끼는 훈련을 하면, 언젠가 눈을 감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후, 그는 이불 속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스마트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늘도 할 일 없잖아. 잘 됐지. 오늘 안에 꼭 눈 감고 글자를 읽고야 말 거야.'

이런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끝에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원래도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점점 더 사회와 고립되었고, 어짜피 히키코모리 인생, 집 안에 틀어박혀 눈을 감은 채 스마트폰만 응시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점점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지가 멀쩡한 아들이 하루 종일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깔끔한 성격에 방도 지저분하지 않았고, 식성도 까다롭지 않아 많이 먹지도 않았다. 그나마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모습에 부모는 결국 그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터치도, 잔소리도 이젠 없었다. 그저 조용한 방 안에, 눈 감고 누워 있는 아들이 있을 뿐이었다.

1년이 지나 수염은 목젖 아래까지 자랐고, 머리카락은 어깨를 덮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부모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 감고도 보여...”

부모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움직임을 멈춘 채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그저 그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는 부모가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눈 감고도 보인다니까...!!”

그 말을 남긴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이불 위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고 눈을 감았다.

‘노력하면 된다더니... 드디어 초능력을 갖게 됐구나.’

하지만 곧 문제에 부딪혔다. 이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다.

‘눈 감고 볼 수 있으면 뭐하나. 낮에는 어차피 다 보이는데...’

이 능력은 오직 ‘어두운 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만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그런 상황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곧 자신을 위로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능력이 꼭 필요한 분야가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 큰돈을 벌 기회가 생길꺼야...’

그렇게 그는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고민과 훈련을 반복 했고, 어느덧 밤은 계속 돌아왔다. 그런 하루하루가 반복되던 그때 잠을 청하려 눈을 감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눈을 감았음에도 천장에 달린 LED 조명이 선명하게 보였고, 고개를 돌리자 가구와 책상까지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을 떴을 땐 어둑하고 잘 보이지 않던 공간이, 오히려 눈을 감으니 훨씬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눈을 감으면 보이고, 뜨면 안 보인다...?'

세상의 법칙이 거꾸로 바뀐 것 같은 이 기묘한 현상 앞에서 그는 점점 더 깊은 혼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했다. 아니, 생각이라기보단… 망상이라 부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달빛조차 가려진 어두운 밤.
낮고 짧은 비명 소리에 벌떡 일어난 그는
'이건 분명 범죄다!' 라고 단정하고 창문을 열어 소리가 난 방향을 살폈다.

"설마 강도? 살인? 납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그는 이불을 걷어차고 바깥으로 불쑥 뛰쳐나갔다.
거리는 컴컴했고,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범인이 어디 있는지 감지하려 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눈을 감은 채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한 일인지.

머리를 휘휘 저으며 주변을 살피던 그는,
가로등 아래 펄럭이는 행사 현수막에서 검은 부분을 찢어내 머리띠처럼 눈 위에 둘렀다.
마치 쾌걸 조로처럼. 그리곤 비명이 들렸던 쪽으로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범인과 마주쳤다!

그 순간, 그는 온몸을 휘둘러 범인을 제압하려 했지만...



"…음, 멋지긴 한데... 이거 완전 영화 <데어데블> 아냐?"

현실의 그는 싸움이라고 해본 적 없는, 겁 많은 소심한 찐따였다. 실제로 누군가와 맞붙고 체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 망상을 털어냈다.

“에휴, 또 오바했네…”

다시 방에 들어와 스마트폰을 꺼낸 그는 검색창에 이렇게 적었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것’

잠시 후, 검색 결과가 화면에 주르륵 떴다.
하지만 구글이든 AI든, 그가 원하는 딱 맞는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이런 것들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명상, 요가, 타자 연습, 피아노, 점자 읽기.

“…이걸 하자고 내가 능력을 키운 건 아닌데…”

그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눈을 감아도, 마치 눈을 뜬 것처럼 방 안이 훤히 보였다는 사실. 반대로, 눈을 뜨면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감은 쪽이 훨씬 더 선명하게, 훨씬 더 또렷하게 사물이 보였다.

그는 처음엔 당황했다. 그러다 곧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 그럼 나는 이제… 눈을 감아야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가?’

그리고 곧바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씨발, 좆됐다… 자야 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탄식은 가볍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시력의 반전이 아니라, 일상의 근간이 뒤틀린 느낌이었다.

자려고 눈을 감으니, 눈앞에 방 천장이 훤히 보였다. 어깨 옆 책상, 천장에 붙은 거미줄, 창문 틈새로 흔들리는 커튼, 그리고 멀리 있는 시계 바늘까지 모두 또렷했다.

‘잠을 잘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너무 밝아져.’

눈꺼풀 안쪽에서 환한 세상이 펼쳐지고,
눈을 뜨면 오히려 짙은 먹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

그는 몸을 돌려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씨발. 자야 되는데..."

-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