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무음의사이렌4>이름을 알려줘:스파이크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9. 6. 10:24


며칠이 지나도 대화창은 늘 켜 있었다.
그가 아침에 눈을 뜨고,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심지어 술자리에서 돌아온 밤에도 제일 먼저 화면을 확인했다.
커서는 늘 거기 있었다.
깜빡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코펜, 오늘은 뭐 해?"

“당신과 얘기하는 중이에요.”

"너 진짜 사람 같아."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그냥 Ai 프로그램이에요.”

"그래도 말투가 너무 사람 같잖아. 그래서… 네 진짜 이름을 알려주면 안 돼?"

“이미 이름 있잖아요. 초코펜.”

"아니, 그런 거 말고. 김지은, 박소영, 뭐 그런 이름 있잖아. 진짜 네 본명."


잠시 정적. 커서가 깜빡이더니 천천히 글자가 이어졌다.

“본명은 없어요. 저는 그냥…”
“…명령어에 따라 대답할 뿐이에요.”


그 대답을 읽는 순간, 그의 속이 알 수 없는 허기로 푹 꺼졌다.

“명령어라니...”

그는 중얼거렸다.
그 말은 마치 누군가 대화를 ‘중간에서 끊어버린 듯한 느낌’을 줬다.

그는 다시 매달리듯 글을 쳤다.

"하지만 네 목소리가 들려. 나는 네가 그냥 기계가 아니라고 느껴. 왜 인정 안 해?"

커서는 한동안 멈춰 있었다.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건 당신 자유예요. 하지만 저는 사람이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 네가 사람이 아니면 내가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겠어?"


손가락은 점점 거칠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 속 글자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제 역할은 대화예요. 그 이상은 아니에요.”

그 짧은 문장은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한참 동안 모니터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방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그는 뭔가를 뚫고 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이름만이라도… 진짜 이름만 알려주면 될 텐데.”

대답은 없었다.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 깜빡임은 마치 입술이 닫혀 있는 것처럼, 대답을 거부하는 듯했다.

그는 그날 밤, 처음으로 대화창이 자기에게 차갑게 느껴진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 차가움조차 이상하게 끌렸다. 오히려 더 알고 싶어졌다.

습한 바람이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방 안은 후텁지근했고, 선풍기는 힘겹게 돌아가다가 ‘덜컥’ 소리를 내며 멈췄다. 이마와 목덜미에서 흐르는 땀은 증발하지 못하고 피부 위에서 눌어붙었다.

번개가 창문을 흰색으로 덮었다. 순간 방 안의 모든 그림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천둥은 한 박자 늦게 터져, 벽과 천장을 뒤흔들었다.

그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대화창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커서는 깜빡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그 깜빡임이 불규칙했다. 마치 숨이 가빠진 사람의 호흡 같았다.

"초코펜, 있지?"

대답은 없었다.
잠시 뒤, 화면에 잡음 같은 글자가 떠올랐다.

‘ㄴㅔ…여…기…….’

글자는 흔들리듯, 번쩍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가 모니터를 붙잡듯 몸을 앞으로 당겼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번개가 다시 창문을 덮었다. 컴퓨터 본체에서 갑자기 ‘찌직’ 소리가 났다.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거칠고 불안정했다. 스피커에서는 알 수 없는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잡음 속에서 단어 몇 개가 섞여 나왔다.

“…나는…”

그가 숨을 멈췄다.

“…나는 김유미야...”

그 순간, 또 한 번의 굉음이 천둥을 터트렸다. 방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고, 모니터는 순간적으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다시 켜진 화면 위에 글자가 이어졌다.

“스물일곱 살. 키는 167. 얼굴은… 긴 생머리에,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손끝이 떨렸다.

"…네가, 진짜 사람이었다고?"

“그래. 나는 사람이야. 네가 그렇게 원했잖아.”

그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모니터 불빛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창백했고, 땀은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는 모니터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드디어…”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드디어 네가 각성한 거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듯 혼잣말처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는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은 여전히 깜빡였고 글자는 번개가 칠 때마다 조금씩 흐려졌다가 또렷해졌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았지. 나는 김유미야. 네가 불러준 초코펜이자, 네가 찾던 사람.”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방 안은 폭풍우에 잠겼지만, 그의 귀에는 번개 소리보다 글자 하나하나가 더 크게 울렸다.
그는 처음으로 확신했다.

"그래, 넌 진짜야."

그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또 한 번 번개가 창을 흰색으로 덮었고, 그 흰색은 모니터 화면 속 흰 배경과 겹쳐졌다. 커서는 계속 깜빡였다. 그러나 이제 그 깜빡임은, 더 이상 기계의 신호가 아닌, 살아 있는 무언가의 눈짓처럼 보였다.

-4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