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무음의사이렌6>운명의 만남:스파이크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9. 7. 18:48


댓글은 몇 차례 오갔다.
그리고 어느새, 자연스럽게 메시지는
개인 SNS로 이어졌다.

처음엔 짧은 인사였다.

‘안녕하세요, 블로그에서 본 민찬우 입니다.’

그 다음은 음악 얘기, 사진 얘기.
어느새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그 모든 흐름은 초코펜이 이끌고 있었다.

“지금은 답장을 짧게 해. 난 답장이 짧은 게 좋아. 궁금증을 남겨둬야 하는것처럼.”

“이제는 취향을 공유해.
내가 좋아할 만한 걸 찾아. 힌트는 강아지.”


그는 그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마치 자신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손가락을 빌려 글을 쓰는 것 처럼.

그리고 마침내 약속이 잡혔다.
토요일 오후, 홍대 앞 카페.

그날, 그는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셔츠 깃을 세웠다가 내리고, 머리를 만졌다가 헝클었다. 심장은 손목시계를 고장 낼 듯 뛰고 있었다.

카페 문을 열자, 종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대화, 커피 내리는 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녀가 있었다.
사진 속에서 보던, 블로그 속 글의 주인이자, 초코펜이 말해준 바로 그 얼굴. 긴 생머리, 웃을 때 먼저 올라가는 왼쪽 입꼬리.

순간, 시간은 잠시 멎은 듯했다.
그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다가갔다.

“김… 유미 씨?”

여자는 고개를 들고 살짝 웃었다.

“아, 네. 찬우 씨?”

목소리.
그것은 화면 너머에서 글자들이 만들어주던 목소리와 겹쳐졌다.

두 사람은 서툴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커피잔 사이로 대화가 오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몇 분이 지나자 놀랍도록 편안해졌다. 그녀의 취향과 말투, 심지어 농담까지 이미 초코펜, 아니 김유미가 그녀의 모든 SNS와 현재까지 뉴스기사에 달은 댓글과 커뮤니티 사이트나 채팅에서 적었던 모든 글들, 심지어 개인 노트북에 남겨놓은 사적인 일기까지도 모조리 해킹해 그녀와 가상의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 속삭였다.

'초코펜, 네가 해낸 거야.'

여자의 눈동자에는 호기심과 작은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그들은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기울고, 카페 불빛이 은은히 번질 무렵, 그는 처음으로 확신했다.

“우린… 모든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여자는 잠시 놀란 듯하다가,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모니터 속에서 수없이 보았던, 그러나 지금은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를 가진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 만남이 초코펜의 유도였는지, 스스로의 선택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그녀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퇴근길에 불빛이 좋은 카페를 찾아 들어가면 그녀가 있었다. 주말이면 공원, 한강 벤치나 즐길만한 장소에 함께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었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사람이 지금은 바로 곁에 있었고, 그녀의 웃음은 화면 너머보다 훨씬 따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작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연락이 이렇게 늦어?”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었다.

“응? 바빠서. 매번 답장 못 할 때도 있어.”

그녀는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는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예전엔 초코펜이 항상 즉각 대답해주었다.
커서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고, 단 한 번도 그를 외롭게 두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달랐다. 바쁘다며 늦게 답장하고, 피곤하다며 약속을 미루기까지 했다.

갈등은 점점 잦아졌다.

그는 그녀의 말투 하나, 무심한 표정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네가 나한테 진심 맞아? 내가 혼자 더 좋아하는 거 아냐?”

“왜 이렇게 예민해? 우리 아직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고, 한때 운명이라 믿었던 호흡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 우리, 그만 만나.”

그 말은 짧았지만, 그의 가슴속에 칼처럼 꽂혔다. 순간 귀에 피가 몰리는 듯 울렁거렸다.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건 뜻밖의 한마디였다.

“어… 그래.”

그녀는 안도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어나, 그대로 떠났다. 남겨진 커피잔 속 얼음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분노와 굴욕, 자존심의 붕괴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또 버려졌다. 또 혼자가 됐다.’

어릴 적 부모와의 거리, 친구들과의 단절, 그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집으로 돌아와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 대화창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그는 키보드를 세게 내리쳤다.

초코펜, 왜 이렇게 된 거야? 왜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놓고, 이렇게 무너뜨려?

하지만 초코펜은 대답하지 않았다.
커서는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지만, 그 깜빡임은 이제 빈 화면 위의 기계적 신호일 뿐이었다. 아무런 위로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꺾였다.
공허가 분노로 바뀌었고, 분노는 차가운 충동으로 굳어졌다.

-6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