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같은 개, 다른 분노 개버린!!

스파이크(spike) 2026. 5. 5. 09:43


요즘 용산의 한 음식점에서 개를 버려두고 폐업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여론이 시끌벅적하다. “버렸다”, “학대다”라는 말이 순식간에 인터넷에서 퍼지고, 사진 몇 장에 감정이 폭발해 가게 사장을 죽일 듯이 쪼아댔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돼지새끼 김정은이 선물로 문재앙에게 준 풍산개를 둘러싼 논란이다. 당시 그 개들은 법적으로 대통령기록물(국가 소유) 성격이라며 퇴임 이후 개인이 계속 보유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인수를 거부했다. 또한 사육·관리 비용 지원을 둘러싸고 돈을 안 주면 밥을 줄 수 없다며 못 키운다 땡깡을 부리듯 정부와 충돌했다. 그래서 결국 개들은 국가에 반환됐다.

!!ᆢ맞다~개버린ᆢ!!

그런데 이걸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다. 그때는 “법적 지위가 애매하다”, “지원 문제다”, “불가피한 결정이다”라는 식의 변명이 나왔음에도 동물협회나 동물애호가, 애견인 및 일반 시민들이 이 정도로 지랄을 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음식점 사장에게 개를 “버렸다”, “책임져라”라며 죽일 듯 달려든다. 같은 ‘개’ 문제인데 왜 기준과 비난이 이렇게 달라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만도 못 한 새끼

물론 이번 음식점 사례도 문제의 소지는 충분히 있고 동물을 방치했다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잣대가 누구에겐 적당히 좋게 좋게 적용되고, 누구에겐 더 가혹하리만큼 비난이 쏟아진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다.

당시 풍산개 사안은 문재앙이 법과 제도, 예산 문제를 이유로 들며 애견인 처럼 행동하다 키우던 개를 거부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번 용산 식당의 개 방치 사건 역시 단순히 감정으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실제 방치 여부와 책임 소재를 따져가며 판단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런 기준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누가 했느냐에 따라 같은 행동이 ‘불가피한 선택’이 되기도 하고, ‘악질적인 학대’가 되기도 한다.

그때는 조용했고 지금은 분노한다.
기준이 아니라 감정으로 움직이는 전형적인 선택적 분노다. 동물권을 외치는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정말 동물을 위한다면 상황과 대상에 관계없이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좌파가 버리면 한없이 조용하고, 그 외 사람들이 실수하면 끝까지 물어뜯는다. 그게 과연 동물을 위한 행동인지, 아니면 특정 프레임에 맞춰 움직이는 건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논란의 본질은 개가 아니다. 사람이다. 그리고 진영이다. 사람을 보고 분노하고, 사람을 보고 침묵한다. 그래서 기준은 늘 흔들린다. 이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좌빨들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