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심미안(審美眼)의 발견>(11)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8. 21. 20:03


"친구야, 나랑 일하나 같이하자."

몇 년 만에 대뜸 전화를 한 친구 놈이 같이 일을 하자해서 그는 일단 의심부터 들었다. 사기는 가까운 사람한테 당한다는 인터넷 숏츠를 몇 번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 놈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갑자기 뭔 소리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찬대 이놈이 얼마 전 사업체 하나를 차려 카니발 몰고 전국을 누비며 돈을 벌 생각이라고 말했다.

"야. 내가 이번에 숙노 그만두고 개인사업 시작했잖아. 이게 아파트, 주택공사를 하면서 사장님 한 분을 알게 됐거든. 그분이 수전, 배관 기술 잔데 이제 연세도 있고 해서 나한테 기술을 전수해 줬거든.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기로 하고. 지금 어디야?"

수화기 너머로 이야길 듣고 있던 그는 지금 어디냐는 질문에 혹시나 바로 만나자는 말이 나올까 엉뚱한 얘길 했다.

"나 지금 바빠. 부모님 뵙기로 했는데 아빠랑 통화는 됐는데 엄마랑 아직이야. 근데 왜?"

"왜긴 왜야. 사업체 차렸는데 같이 일할 사람이 없어서 너한테 연락한 거지. 너 나 아니면 놀꺼 아니야. 요즘 일 해?"


찬대의 도발적 언동에 동호는 기분이 상했지만 형수에게 전화로 쌍욕을 박던 아빠도 옆에서 본 적 있던 그는, 그런 비꼼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답 빨리 안 하는 걸 봐선 놀고 있네. 어디야? 집이야?"

"요즘 나 자취해. 독립했어."

"뭐? 자취? 니가? 진짜? 어디?"

"예전에 살던 집 근처야."

"지금 가도 되냐?"

"안된다니까. 부모님 뵈러 가야 돼."

"알았어. 그럼 이 번호로 연락 주고. 근데 내 번호 삭제했냐? 모르는 번호 받듯 하던데."

"아니, 아니. 갑자기 전화가 와서 그랬어. 암튼 나중에 또 통화하자."


그렇게 전화를 끊은 그는 살짝 당황한 듯 뻘쭘히 전화기를 쳐다보았고 당장 돈이 없으니 찬대를 따라다니며 한동안 버텨야겠단 생각만 들었다. 히키에 찐따인 그가 어딜 찾아가서 알바를 시켜달라 하기엔 엄두가 나질 않았고 일도 해 본 지 오래된 터라 오히려 적시적소에 걸려온 친구 놈의 전화가 그에겐 밥을 굶지 않게 할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 놈이 옆에 있기에 사람들과의 대면에서 어느 정도 병풍역할도 해 줄 것을 알기에 심리적으로도 한숨 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대한테 전화를 받고 바로 다음날 전화를 하면 자신이 일을 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식량이 떨어질 날이 얼마 안 남아 초조했지만 끌려 다닌다는 느낌이 들어 이틀간은 무조건 기다렸다. 그리고 3일째가 돼 갈 때 그는 전화를 걸었다.

"찬대? 나야 동호."

"알아. 일하기로 결정은 했노?"

"정확히 뭔 일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엉. 니 상태 아는데 힘든 일 시킬 순 없지."


그는 찬대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늘 거슬렸지만 그래도 자신을 항상 챙겨줬던 놈이라 마음을 다잡고 이야길 경청했다.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얘기하고, 너 어디냐? 지금 갈게 보자. 너 자취한다며. 내가 글로 가면 되잖아. 나 카니발 샀잖아 카니발."

그렇게 집주소를 알려주고 오후에 만나기로 정한 다음 친구가 온다고 하니 일어나 집안 청소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자취를 시작하고 부모님과 같이 살아갈 땐 청소를 하고 신경 거슬리지 않기 위해 방은 항상 청결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자취를 시작하고부턴 깨끗함은 자취를 감췄다. 역시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산다는 건 피곤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살고 있는 옥탑방은 크기가 작아 치우는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돈이 없어 곰팡이를 말끔히 제거하려 락스를 희석해 발랐더니 집안에 밤꽃 냄새 비슷한 남자다운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창문을 열고 충분히 환기를 시킨 다음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밖을 내다봤다. 아파트서 나올 때만 해도 살짝 쌀쌀했는데 이젠 앞에 보이는 동산에 푸르름이 공간을 꽉 채워가는 모습이 보시니 뭔가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여름에 창문형 에어컨이 없으면 삶아 뒤질 거야."

그래서 그는 더욱 돈의 절실함을 느끼게 됐고 찬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이나 늦게 도착한 그에게 왜 안 오냐는 전화를 했고, 차 막히고 여기 주차할 때도 마땅치 안 타는 소릴 들었다. 그 후 그의 자취방에 들어선 찬대는 그를 보자마자 한 마딜 툭 던지며 휴지통 뚜껑을 열어봤다.

"딸쳤나? 밤꽃냄새 뭐야?"

"안쳤어 병신아."

그는 찬대의 돌발적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고 얼른 일 얘기나 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앞섰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그럴 맘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야~근데 네가 어쩐 일로 자취할 생각을 했냐? 네 성격상 그러긴 힘들 텐데. 혹시 집에서 쫓겨났냐?"

ᆢᆢᆢ

"뭐야? 답 없는 걸 보니 진짜루?"

"아니야 븅신아. 분가한 거야."

"ㅋㅋㅋ. 아닌 거 같은데..."

찬대는 양쪽 눈을 활처럼 휘듯, 조롱의 얼굴로 싱글싱글거렸다. 그런 행동에 마음이 긁힌 그는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며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하자는 일이 뭐야?"

"아! 이번에 내가 사업을 시작했잖냐. 정확히는 하수구 배관을 뚫는 일이고, 요즘 아파트가 많다 보니 배관이 막히는 경우들이 겁나 많거든. 그래서 그걸 좀 해보려고. 너도 알다시피 노가다 경력도 이젠 꽤 잔뼈가 굵고 돈도 조금 모았으니 자영업자 사장님이 돼야지."

"그게 돈이 되냐? 그거 뚫어 얼마나 번다고. 그리고 뚫어 뻥이든 약품이든 마트에서 팔잖아."

"그거가꼰 안 되지. 심하게 막힌 경우도 있으니. 암튼 뭐든 경쟁이긴 한데 난 괜찮을 것 같애. 사장님한테 배운 것도 있고 일 들어오는 거 보면 혼자 해결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그분이 힘들어서 동네에서만 하고 좀 지나면 그만두시겠대. 어때, 할 맘 있어?"


지금 상태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그는 조만간 자신에게 닥칠 생존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언제부터 시작하냐고  물었다.

"일단 좀 머리랑 수염이나 깎어. 뭔, 인도 멸치 요가 수련자도 아니고."

-1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