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심미안(審美眼)의 발견>(10)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8. 20. 19:36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의 번호가 없는 번호라니. 말도 안 돼. 그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저장된 '엄마'를 눌러 반대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길 바랐다. 하지만 목소리는 가끔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아가씨의 목소리만 반복해 들릴 뿐이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그는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도 기립성 어지러움증이 일어났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래도 믿었던 엄만데, 아무리 분가를 하고 연락 한 번이 없던 엄마지만 전화번호까지 바꿀 것이란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 길로 부모님이 열흘 후 이사를 간다고 했던 같은 단지 작은 평수 아파트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파트 입구에서 카드키가 없어 들어갈 수 없자 경비실에 호출 버튼을 눌러 1802호에 부모님 뵈러 왔다고 한 후, 문 좀 열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경비 아저씨는 머리와 수염이 긴 수상한 사람이 모니터 씨씨티비에 보이자 누구시냐고 물었다.

"저 아들인데요. 부모님 좀 뵈려고요."

"몇 호요?"

"1802호요"

"여기 고도제한 때문에 15층까진데요. 혹시 1502호 아니고요?"

"네? 1802호라고 들었는데요?"

"여기 1502호 까진데. 혹시 아벗님 존함이 어찌 되시나요?"

"이자, 재자, 명자요."

"여기 그런 분 안 계시는데요."


그는 경비실에서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릴 듣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부모님은 분명 같은 단지, 작은 평수, 방 두 개짜리 106동 1802호로 간다고 했다. 하지만 여긴 1502호가 가장 높은 층이다. 그래서 그는 경비실 호출 버튼 앞에서 떨어져 핸드폰을 들고 '아빠'라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그는 같은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 나올 줄 알고 무척이나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빠는 전화를 받았다.

"왜?"

3개월 만에 전화 통화를 하는데 아빠의 목소린 냉담한 한마디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개월이 다된 시점에 돈이 떨어져 전화를 했을꺼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응. 엄마 핸드폰 바꾸면서 번호 이동했어. 근데 왜?"

"아... 아니 전화번홀 바꿨으면 알려줬어야지. 암튼 전화 한지 꽤 된 것 같아 통화 좀 하려고. 잘 지내죠?"

"응. 우리 걱정 말고 너나 잘 지내고. 특별한 용건 없지? 없으면 엄마한테 전화하라 하마. 끊는다."

"잠깐만, 잠깐만. 아빠 106동으로 이사 간다고 하지 않았어?! 거기 가보니 그런 사람 없다고..."


ᆢ뚜 뚜 뚜ᆢ

"여보셔요? 여보셔요?"

그는 재차 '여보셔요'를 왜 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끊은 것이다. 물어볼 말도 다 못 했는데. 그런 아빠의 태도에 화가 난 그는 입으로 쌍시옷 욕을 중얼대며 다시 아빠 한데  전화를 걸었다.

"아, 왜, 또?"

"아니 말하는데 전화를 끊음 어떻게?"


그는 아빠가 또 전화를 냉큼 끊을까 봐 얼른 말을 이어 붙였다.

"아까 새로 이사했다는 그 집에 갔더니 아빠네 주소가 아니래. 그래서 이상해서 전화했지."

"그 집으로 갈까 하다 그쪽집에 문제가 생겨서 딴 집으로 이사했다."

"어디로 갔는데?"

"그건 알꺼없고 이젠 알아서 잘 살아."

"아니, 알꺼 없다니. 아빠. 가족인 아들한테 집주소도 안 알려줄 만큼 숨길 이유가 뭐야?"

"끊는다."

-뚜 뚜 뚜-

그는 아빠의 그런 행동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을 가졌다. 어찌 아들을 이딴 식으로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분노를 속으로 되뇌이며 허탈한 마음과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 못 하고 두 손을 쥐고 허리를 굽힌 채 땅을 향해 입만 움직이며 소리 없는 소릴 질렀다.

!!ᆢ으악ᆢ!!

---

옥탑방으로 돌아온 그는 아들을 그렇게 대하는 부모에 대해 심한 분노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앞으로 닥처 올 며 칠 후에 대해 심한 번뇌에 빠져들었다. 일단 이 집은 전세다. 한동안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명의는 아빠 이름으로 돼 있어 2년 후 재계약을 못하면 쫓겨 날 수도 있지만, 이런 다세대에 들어올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그 이후에도 지낼 수 있을꺼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주일 안에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진짜 굶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공포였다. 그는 키도 별로 크지 않고 음식 섭취량도 많지 않아 일명 멸치라 불리는 찐따였다. 그러나 그건 히키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지 먹는 걸 싫어하진 않았다. 특히 한 달에 한번씩 짜장면과 탕수육 소짜릴 딸배콜로 시켜 먹을 때의 맛은 쾌락적 흥분감과 식욕을 충만케 하는 일종의 마약과 같았다. 그러나 지금 현실에선 짜장라면도 못 먹을 판이라 생존권에 지장이 생길 위기에 직면했다. 그때 스마트 폰이 요란한 소릴내며 옥탑에서 울어댔고, 그는 아빠가 얘길 해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고 번뜩 생각하며 화면을 밀어 스피커 폰으로 받았다.

"여보셔요?"

"동호냐? 나야 찬대. 잘 지내냐?"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확인한 그는 엄마가 아닌 점에 실망하면서, 예전 자기를 데리고 다니며 숙식노가다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해 준 친구 녀석이란 걸 인지했다. 아무튼 웬일로 갑자기 전화를 했는지, 결혼이라도 하게 돼서 청첩장을 주려고 하는지, 아님 뭔가 부탁을 하려 전화한 건 아닌지 의심부터 들었다. 그런데 대뜸 찬대 이 새끼가 이런 말을 꺼냈다.

"야, 너 놀지?"

"뭐?"

"요즘 일 하냐고?"

".ᆢᆢ."

"말 못 하는 거 보니 노네. 야, 너 나랑 일 하나 같이하자."


-10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