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서비평(政治) ◐

최강욱, 폴포트를 꿈꾸다!!

스파이크(spike) 2025. 9. 5. 20:07


역사는 때때로 ‘인류의 선구자’를 자처하며 등장했지만, 사실은 헬게이트를 활짝 열어젖힌 자들을 기록해 놓습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이 사람의 본명은 '살로트 사르'입니다.

!!ᆢ트로트 아니고 살로트ᆢ!!

이름만 듣기엔 유복한 가정의 비범한 청년 같지만, 유럽의 안산(安山)이라 불리는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더니 갑자기 “나는 인민을 위해 사는 혁명가다”라고 외치며 본격적인 공산주의를 퍼트리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빨갱이짓의 댓가를 자기 국민의 목숨으로 치뤘다는 데 있지요.

1975년, 내전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쥔 폴 포트는 “이제부터 모두 농민!!”을 선언합니다. 프놈펜에서 커피 마시던 사람, 안경 쓴 교사, 불경을 읽던 승려까지 전부 강제로 논밭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의 머릿속엔 “기계화된 현대는 타락이다, 진짜 순수한 사회는 흙에서 나온다”라는 환상이 있었지요. 환상은 좋지만, 문제는 그게 공상병자의 상상도(想像圖) 즉, 망상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지요. 배고픔에 쓰러지고, 조금이라도 고개를 드는 이는 반역자로 몰아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심지어 “안경 쓴 사람들과 연필을 쥔 손가락에 굳은살이 있어도 지식인=반동분자”라며 죽여버렸습니다.

그렇게 4년간 살해된 사람이 170만~200만으로 '메가데스'의 두 배나 됐습니다. 한마디로 캄보디아 인구의 1/4이 사라진 것이지요. 이 땅은 결국 “킬링필드”, '학살의 들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훗날 뉴욕타임스 기자 '시드니 션버그'와 그의 현지 통역가 '디쓰 프란'의 우정과 학살의 참혹상을 다룬 '킬링필드'란 영화가 개봉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존 레논'의 'Imagine'이 사운드 트랙으로 쓰이질 않았음에도 국내에서 영화를 소개할 땐 꼭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곤 했지요.

아무튼 그가 말한 “평등”은 모두가 함께 굶어 죽는 평등이었고, “자유”는 말할 자유조차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1979년, 베트남이 군대를 몰고 들어오자 폴 포트의 “유토피아 실험”은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글 속으로 도망쳐 한때 유격대를 유지했지만, 결국 내부 분열로 쫓겨나고, 1998년 죽었는데, 일부는 심장마비라고 하고, 일부는 자살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사람들을 그렇게나 죽인 사이코 패스 연쇄살인마보다 너 악질인 폴 포트가 사지를 찢기는 고통을 받다 죽지 않아 그 당시 너무나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새낀 역사에 남을 “학살자”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기 좃국의 자식을 대학입시 합격을 위해 문서를 위조해 주고, 좃국이 죽창 들고 반일선동을 일으키자 함께 부화내동 하며 일본 고급 자동차 렉서스를 몰고 다니던 '최강욱'이란 재활용도 불가능한 쓰레기가 있습니다. 이 새낀 늘 주둥이를 함부로 굴려 듣지 말아야할 욕설을 받아먹는 변태가 아닐까 추정될 정도로 좌빨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놈입니다.

!!?ᆢ'김건희'를 암컷이라 했지 아마ᆢ?!!

그런데 이번에 조국당의 성비위 사건이 터지자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한 후, 개ㆍ돼지 언급까지 펼치며 2차 가해를 거리낌 없이 떠들어 댔지요. 그러면서 "주변 많은 2찍들을 모아 묻어 버리면 민주주의가 도약할 것"이라는 개소리를 쳇Gpt로 번역해도 개소리로 들릴만한 망발로 지껄여 댔습니다.

어쩜 이렇게 빨갱이 새끼들의 대가리 속 고정된 관념과 신념이 1975년 폴 포트가 집권할 당시와 큰 차이가 없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필자도 늘 "빨갱이 새퀴들은 다 죽여야 돼!!"라고 글 말미를 농담처럼 장식하곤 하는데,  최강욱 이 새끼는 대한민국이 공산화가 된다면 진짜로 폴 포트와 같은 행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를 새끼란 생각이 들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우파가 죽임을 당하기 전, 먼저 이 새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답이 보입니다.

!!?ᆢ어떻게ᆢ?!!

!!ᆢ죽여야 돼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