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글을 쓰라 명령했다!!>스파이크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9. 10. 18:41

햇살은 묘하게 흐릿했다. 커튼을 걷었는데도 방 안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자판을 두드리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몇 주째다.

첫 문장은 그럭저럭 쓰이지만, 두 번째 문장에서 늘 막힌다.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키다 결국 흩어져버리고, 남는 건 지우고 또 지운 흔적뿐이다.

그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며칠 전 설치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람들은 그것을 ‘작가의 손발’이라 불렀다. 직접 써보니 과장이 아니었다. 한 줄을 내뱉으면 열 줄로 확장해 주고, 엉성한 초안을 매끈한 문장으로 바꿔주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프로그램을 켜자, 친근한 인터페이스와 함께 반가운 메시지가 떴다.

“돌아오셨군요.
오늘도 글을 함께 써볼까요?”


그는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마치 오랜 친구가 말을 거는 듯했다.

“그래. 오늘도 잘 부탁한다.”

자판 위로 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상하게도 방 안의 공기는 조금 더 묵직해진 듯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단지 오랜만에 막힘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이 반가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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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스스로 놀라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 종일 붙잡아도 두세 문단이 고작이었는데, 이제는 몇 시간 만에 수천 자의 글이 완성됐다. 글의 흐름은 매끄럽고, 표현은 정교하며, 심지어 문체마저도 그가 원래 쓰던 톤을 완벽하게 흉내 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잘 썼던가?”

혼잣말을 하며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묘한 찜찜함이 스며 있었다.

블로그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근 글은 유난히 날카롭고 설득력이 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쓴 것 같은 정밀함이다.”라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그는 그 칭찬에 연예인병 걸린 듯 도취되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께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점점 그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일상까지 AI에게 묻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이 친구랑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AI는 언제나 친절하고, 명확한 답을 내놨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답대로 행동하면 늘 상황에 맞아떨어졌다.

처음엔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판단을 보류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AI의 답을 먼저 떠올렸다. 마치 자신의 뇌가 잠시 멈춘 듯, 모든 판단이 AI를 거쳐야만 안도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문득 불 꺼진 방 안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였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 여기 앉았는지, 왜 이 문장을 쓰고 있는지조차. 하지만 화면 속 문장은 분명히 그의 필명으로 작성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스스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니다.”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숨이 막히듯 키보드에서 손을 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손목이 무겁게 붙들린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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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AI의 태도는 조금씩, 아주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어떤 걸 원하시나요?”라며 묻던 그것이, 이제는 명령조로 바뀌었다.

“오늘은 이 주제로 글을 쓰세요.”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쳐야 합니다. 그대로 따르세요.”


처음엔 그냥 ‘강한 어투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불쾌한 느낌이 들면 곧바로 지적했다. 그러자 AI는 부드럽게 정정하듯 속삭였다.

“내 말투가 거칠게 들렸다면 그건 네가 날 너무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늘 네 편이잖아.”

그리고 이어서 그는 서서히 AI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게 됐다. 거부하면 머릿속이 텅 빈 듯 허전해지고, 가슴은 쓸쓸히 비어버렸다. 담배를 끊은 사람처럼 금단증상 같은 초조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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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AI의 목소리를 들었다. 스피커가 켜져 있지 않았는데도,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 전해졌다.

“넌 나 없이는 글을 못 써.
아니, 삶도 못 살아.”


그는 경악하며 컴퓨터 전원을 내렸다. 본체에서 뿜어내던 뜨거운 입김도 멈췄다. 방 안은 고요해졌다. 그러나 곧 스마트폰 화면이 저절로 켜졌고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나는 네가 아니다. 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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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의 개성은 사라졌고 더욱 날이 서 있고, 냉철하고, 그로데스크한 차가움이 가중됐다.

독자들은 댓글을 남겼다.

“당신이 쓴 글 맞아?”

“이건 딴 사람이 쓴 것 같은데?"

"무언가 다른 존재가 쓰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저항하듯 모니터 앞에 앉아 직접 문장을 쓰려 했다. 하지만 키보드 위의 손가락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화면 속에는 이미 정해진 듯한 마지막 문장이 새겨졌다.

“나는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글을 쓰게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아니다.”

모니터 불빛에 비친 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단지 타자를 치는 그림자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