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가 고팠다.
예전처럼 어지럽거나 짜증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배고픔은 더 이상 몸을 흔드는 고통이 아니라, 그저 참을 수 있는 상태로 변해갔다.
점심을 뭘 먹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머릿속에는 이것저것 스쳐 갔지만, 입맛을 확 잡아끄는 건 없었다. 배고픔을 잊으려 애써도, 결국은 뭘 먹을지만 붙들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정신차려야지. 뭘 먹을까 고심하다가 배고픔도 잊어먹겠어. 이런 것도 배가 불러 하는 생각일텐데’ 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햄버거 체인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남들보다 햄버거를 늦게 접했다. 중학교 이전에 맛본 친구들과 달리, 내가 처음 먹은 햄버거는 군대에서였다. 뻣뻣한 빵 사이에 딸기잼을 바르고, 박스 냄새가 밴 패티를 끼워 넣은 그 군대리아. 제대 후 처음 월급을 받고 동료들과 찾은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나는 그 맛에 깜짝 놀랐다. 그 이후 몇 번 햄버거 매장엘 갔던적은 있지만, 정말 몇 년에 한번꼴로 방문한 게 고작이었다.
아무튼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라 북적일 줄 알았는데, 손님들은 매대 앞 알바생 대신 자판기 같은 기계 앞에 줄을 서 있었다. 키오스크라 불리는 것이란 걸 금세 눈치챘지만, 현금도 안 받고, 카드만 먹는 기계 앞에서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괜히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아, 젊은 손님들이 주문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따라 하면 되겠지...’
줄이 비자, 마침내 키오스크 앞에 섰다. 화면에는 햄버거 광고가 번쩍거리고, 메뉴들은 네 줄 종대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new라 쓰인 게 신제품인가? 뭘 먹어야 하지?”
값은 생각보다 비싸 보였다. 결국 적당해 보이는 메뉴를 눌렀다. 햄버거에는 감자튀김과 콜라가 따라야 한다는 옛 기억에, 세트 메뉴를 찾으려 했지만 화면은 낯설고 복잡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네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다들 무심히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괜히 압박을 느꼈다. 급해진 마음에 매대 안쪽을 향해 “저기요!” 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두 번이나 더 크게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뒤 사람에게 웃으며 “먼저 하세요”라고 말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화가 치밀었지만, 다시 매대 앞으로 다가가 감자튀김을 담던 알바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알바생은 건성으로 듣더니 “점장님!” 하고 불렀다. 모자를 눌러쓴 점장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해결되겠구나 싶어 부탁했더니, 그는 한숨을 내쉬며 키오스크 앞으로 나왔다.
“뭘 드실 겁니까?”
“여기서 제일 많이 팔리는 게 뭔가요?”
점장은 귀찮다는 듯 “소고기, 닭 중 뭘 좋아하시는데요?” 하고 물었다. 내가 소고기를 고르자, 화면을 툭 누르며 “이겁니다” 하고는 세트 메뉴까지 빠르게 주문을 마쳤다. 콜라에 얼음은 빼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무심한 손놀림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영수증이 뽑히자 점장은 번호를 가리키며 “692번. 저 화면에 뜨면 받으세요”라고 말하곤 다시 돌아갔다.
나는 부끄러웠다. 무안함이나 불쾌감보다도, 이런 단순한 기계 하나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곧 불려 나온 햄버거를 받아들며 한입 베어 물자, 새로운 맛이 입안에 퍼지며 욱(!!)하고 솟았던 화가 사르르 녹았다. 뜻밖의 기쁨이었다.
“그래도 애들은 착해.”
소스를 핥으며 혼잣말을 했다. 다음번엔 미리 공부해 와서, 더 맛있는 걸 시켜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나도 한때는 젊었었지. 너희도 곧 늙는다. 나는 사라지겠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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