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서평(書評) ◑

사람들은 언제부터 만화를 봤을까?(2)

스파이크(spike) 2026. 2. 21. 10:15


그 이후 삽화와 만화는 점차 확산되고 발전하였다. 문해율이 높아지고 사람들에게 교육적 계몽보단 오락적인 것이 더 잘 팔린다는 사실을 출판업자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발행 부수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연재만화는 19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1809년, 영국의 풍자화가 '토머스 로울런드슨'은 『포에티컬 매거진』에 연재된 일련의 풍자 판화 속에서 지나치게 까다로운 교사의 성격을 지닌 ‘닥터 신택스’를 선보였다. 이 만화들이 단행본으로 묶여 출판되자 작품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런던의 상점들에서는 닥터 신택스 모자, 코트, 머그컵, 접시 같은 상품까지 판매될 정도였다. 드레곤볼 탄생 이후 급격하게 발전한 피규어 및 여러 굿즈의 판매가 이와 비슷하다.

1867년 8월 14일 영국의 『저디(Judy)』에 처음 등장한 '찰스 로스'와 '마리 뒤발'의 「앨리 슬로퍼」, 그리고 1883년 2월 미국 『세인트 니콜라스』에 처음 실린 '팔머 콕스'의 「브라우니스」는 정기 간행물에 꾸준히 등장하며 상품화에도 성공한 대중적 만화 ‘스타’들의 또 다른 사례였다.

19세기 전반까지 미국의 정치 풍자화에서는 말풍선이 여전히 흔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1841년에 창간된 영국의 『펀치(Punch)』를 본떠 만들어진 여러 유머 잡지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양키 두들』(1846), 『프랭크 레슬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페이퍼』(1855), 『하퍼스 위클리』(1857), 『와일드 오츠』(1870), 『』(1877), 『저지』(1881), 『라이프』(1883)는 1843년에 도입된 ‘카툰(cartoon)’이라는 용어와 함께 새로운 표준 형식을 확립했다. 이들 주간 만화 잡지는 말풍선을 버리고 그림 아래에 글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출판물에 실린 많은 단컷 사회 만평 만화들은 이른바 ‘그가 말하자 그녀가 응수하는’ 식의 만담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말풍선은 유머 잡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신문 만화가들이 이러한 오래된 장치를 ‘부활’시킨 것은 세기가 바뀔 무렵에 이르러서였다. 신문 연재만화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지미 스위너턴'은 1892년『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서 스케치 화가로 일을 시작했고, 1893년 말 이 신문을 위해 반복 연재되는 만화 「리틀 베어스」를 만들었다. 1934년에 실린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잡지 만화에서 신문 만화로의 전환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당시 우리는 만화가 '유진 지머먼'과  '프레더릭 버오퍼', 그리고 인쇄 유머 삽화를 그리던 이른바 ‘그로테스크 계열’ 작가들의 영향을 따르고 있었지. 등장인물의 대사를 말풍선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유행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영국의 풍자화가 '조지 크루익생크'의 시대와 함께 이미 지나간 옛 표현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야.”

등장인물의 대사를 말풍선으로 표시하는 방식은 유행이 아니었는데, 그건 영국의 풍자화가 '조지 크루익생크'와 함께 이미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화 부록이 등장했고, '딕 아웃콜트'의 「옐로 키드」와 함께 말풍선은 되살아나 문자 그대로 만화 칸의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