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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상을 크게 입었다. 여자를 보기 위해, 단지 여자를 보기 위해, 몇 달 며칠을 눈을 감고 벽면만 응시했다.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가뜩이나 적게 먹던 음식을 조금 더 줄여 집중에 집중을 더했다. 워낙 입이 짧아 많이 먹지도 않았지만 백수로 기생하면서 부모님껜 큰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게 백수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의 돈을 최대한 안 쓰기로 마음먹었기에 최대한 적게 움직이고, 몸에서 땀이나 자주 씻게 되면 물 값도 나가게 돼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모공에 땀이 차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만 보였다.

그렇게 눈을 감고 하루하루 투시를 위해, 아니 옆집 여자를 보기 위해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하지만 그가 투시를 하게 된 계기는 여자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핸드폰을 본 것처럼 오로지 벽면 투시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옆집에 여자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노력과 집중력은 놀라우리만치 향상됐다. 마치 목표와 목적의식이 명확해져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을 잘 달리게 하기 위한 당근 같은 존재가 바로 옆집 아가씨였다. 하지만 투시에 성공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커다란 내상을 입은 그는 엄청난 자괴감에 휩싸여 거침없는 현타에 정신줄이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ᆢ배ᆢ배ᆢ배휘나ᆢ!!
그래서 그걸 만회하고자 눈을 감고 이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천장 너머론 침대가 놓여있는 듯했고 주변을 천천히 스캔하자 여자의 방이 아닌 남자의 방처럼 느껴졌다. 그런 점에 실망한 그는 이번엔 엎드려 누워 이불 위에 코를 박고 아래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아랫 방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당연히 평일날 늦은 아침에 다들 일하러 나가지 집에 있으리라곤 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각도로 실망한 그는 이 투시 능력을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아니 막말로 가장 쉽게 구현해 낼 수 있는 것은 범죄에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CCTV도 많고 차량 블랙박스도 도처에 있는 상황에서 투시 능력으로 범죄를 저질러 수익을 낸다 해도 금방 잡힐게 뻔하다고 느낀 그는 이 투시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심하며 다시 벌러덩 누웠다.
"국정원엘 찾아가서 이런 능력이 있다고 보여주면... 아니야, 아니야. 그 새끼들을 어떻게 믿어. 사람 속이고 죽이고 정보 캐내는 게 일인 새끼들일 텐데. 잔뜩 이용만 해 먹다 버리겠지. 그럼 뭐가 좋을까... 뭐가 좋을까...?"
그렇게 계속 고민만 했지 그에게 뭔가 특별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뭔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자 여지껏 자신이 뭘 위해서 이렇게 방 안에 틀어박혀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심각한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일방적으로 상상하고 관찰해서 실망하고 분노한 자신만이 초라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그러져 들어가는 욕망을 분출하고자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집 밖으로 나갔다.
현재시간 01시 18분.
도대체 얼마 만에 집 밖으로 나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나왔음에도 세상은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것처럼 보이질 않았다. 교통 신호와 상관없이 가볍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딸배 새끼들과 멀찍이 들리는 사이렌 소리는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소음이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슬리퍼를 질꺽질꺽 끌다시피 걷다 보니 배가 출출함을 느꼈고 주머니를 뒤져봐야 히키 백수에게 돈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허기짐을 배꼽에 붙이고 오랜만에 걸었더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는 편의점 한 곳을 발견하고 그 앞에 편의점 이용객을 위해 마련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지친 몸을 뒤로 젖혀 턱을 최대한 하늘로 치켜들고 세상을 거꾸로 보듯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며 짤랑짤랑 소리가 났고 편의점 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은 알바생이 한 손에 빗자루를 들고 발로는 종이박스를 툭툭 차며 테이블 위의 쓰레기들을 치웠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빗자루로 쓸며 그의 앞으로 다가오자 그는 닭다리 꼬듯 다리를 접어들어 올렸다. 그렇게 묵묵하게 편돌이는 플라스틱 파라솔과 의자 주변을 청소한 뒤 다시 문을 짤랑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렇게 가까이서 오랜만에 사람을 봐 속으론 반갑기까지 했으나 아무 거리낌 없이 청소를 하고 아는 척도 안 하는 편돌이에게 뭔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저 새끼 저거. 내가 투시 능력이 있다는 걸 알면 겁나 놀랄 텐데. 아... 진짜."
그러곤 다시 자세를 잡고 플라스틱 의자 손걸이에 양손을 기대고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새벽이라 그런지 도로에 자동차만 지나다닐 뿐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그는 투시능력이 있기에 앞으론 낮시간에 이곳엘 와서 눈을 감고 여자들을 관찰할까를 생각했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도 눈을 감고 쳐다보면 내가 자신을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모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이따가 낮시간에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다짐했다. 단지 선글라스만 착용하면 굳이 투시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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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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