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의 병원 비서팀은 몰랐다.
그가 야간마다 ‘환자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하는 이유를. 그곳에는 이름 없는 환자 지원서들이 있었다. 수술 상담조차 받지 못한, 미등록 신청자들의 목록. 그는 그 중에서 특정 조건을 입력했다.
> 여성 / 21~23세 / 키 165cm 이상 / 체중 120kg 이상 / 수술 희망 부위: 전신
모니터에 238개의 이름이 떴다.
그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각자의 사연이 적혀 있었다.
“살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제 얼굴이 싫어요.”
그 문장들은 마치 기도문 같았다.
그는 의학적 수치 대신, 문장에 시선을 두었다. 어떤 문장은 비겁했고, 어떤 문장은 절박했다. 그는 그 절박함 속에서 “진짜 재료”를 찾았다. 그의 손끝이 멈춘 곳엔 한 여자의 이름이 있었다.
김선아, 스물한 살.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 근무.
가정 형편: 불안정.
BMI 54.1.
수술 희망 부위: 전신.
특이사항: “제 몸은 감옥 같아요.”
그 문장 하나가 그의 뇌리를 붙잡았다.
“ᆢ제 몸은 감옥 같아요ᆢ”
그는 그 말을 중얼거렸다.
“감옥이라면, 구속을 해방시켜야겠지.”
그날 이후, 그는 그녀의 일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정보는 어렵지 않게 모였다. 병원 문진서, 건강검진 기록, 은행 거래 내역, 심지어 SNS 속 사진 몇 장까지. 그는 모든 걸 ‘의학적 관찰’로 처리했다.
그의 시선엔 윤리도, 감정도 없었다.
단지 비율, 구조, 변형 가능성의 관찰.
그는 그녀의 어깨선과 다리 라인을 보고,
잠시 동안 ‘이상적인 곡선’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녀의 얼굴형은 완벽했다. 지방의 그림자 아래 묻혀 있을 뿐.
그는 속으로 말했다.
“이건 추(醜)가 아니라 피복(被覆)이야.”
그는 그 후로 3명의 여성을 선정했다.
모두 같은 기준이었다.
결핍 속의 잠재된 균형, 비극 속의 비율, 무너진 껍질 속의 아름다움.
그는 그들을 멀리서 관찰했다.
하나는 지방 소도시의 요양병원 간호조무사,
다른 하나는 마트 계산대 직원,
그리고 마지막이 '김선아'였다.
선아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했고
같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그는 그녀가 혼자 걷는 길의 조명을 기록했다. 어두운 구간, CCTV의 각도, 버스 정류장 간 거리. 그 모든 것은 한 장의 지도로 정리됐다.
그는 그걸 ‘해부도’라고 불렀다.
육체가 아니라, 환경의 해부도.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의 손 안에서 수술 계획처럼 정리됐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하는 건 납치가 아니다. 복원이다.
그녀는 다른 신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존재야.”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7월의 어느 저녁, 폭우가 쏟아지던 날.
퇴근길 버스가 오질 않아
그녀는 우산도 없이 도로를 걸었다.
그는 차 안에서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봤다.
도로 위 가로등이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보는, 완벽한 ‘전(前) 인간’ 같았다.
그는 엔진을 껐다.
차 지붕 위로 빗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다, 아르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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