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이브'를 빗다(5)-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11. 13. 11:47


잠이 들었는지, 실신한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오래된 소음이 들려왔다. 휘발유 냄새, 전기 모터의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조심스런 발소리.

그녀는 그 소리가 과거의 어딘가에서 들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기억은 꿈처럼 열렸다.

초등학교 시절,

집은 늘 어두웠다.

부모는 맞벌이를 했고, 저녁엔 싸움이 잦았다.
그녀는 주로 부엌 식탁 아래에 앉아 있었다.
불빛이 가장 약한 그곳이 안전해 보였다.
엄마의 목소리, 아빠의 한숨,
그 사이에서 그녀는 언제나 ‘소리 없는 존재’였다.

중학교에 들어서며 체중은 급격히 늘었다.
급식을 남들보다 많이 먹었고, 먹을 때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방과 후에 할인마트를 찾아 세일하는 빵과 인스턴트 라면을 종류별로 먹어가며 자신의 식도락을 과시했다.

처음엔 위로가 됐다.

무언가를 씹을 때만 세상의 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곧 ‘뚱뚱하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체육시간엔 옷을 갈아입지 않으려 일부러 늦게 들어갔고, 몸집이 커지니 갈아입는 게 불편해졌다. 또한 주변에 친구들이 있으면 팔을 허우적 거닐며 옷을 갈아입는 자신을 보이는 게 싫었다. 먹을 땐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자신이 보이는 행위가 우습게 보일까 는 걱정됐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자신을 보고 꺄르르 웃는 소리가 그녀는 듣기 싫었다. 어느 날은 거울의 면적보다 커진 몸집으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았고, 사진 속 자신은 낯선 괴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녀의 체중은 세 자릿수를 넘겼다. 학원을 안 다녔기에 대학도 가고픈 마음이 안 들어 일찌감치 포기했고 그녀는 취업 대신 집 주변 공장에 들어감을 택했다. 단조로운 기계음과 기름 냄새가 하루를 덮었다. 그렇게 시시한 하루하루는 쌓여갔다.

하지만 신나는 날도 있었으니 바로 월급날이다. 급여를 받은 날엔 삼겹살, 치맥, 소주로 자신을 위로했고 남아 있는 돈으로 어떻게 한 달을 알차고 맛있으며 배부르게 먹을지를 생각하고 계획했다. 그것이 그녀에겐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증거 같았다.

스물두 살.

어느 날부터 그녀의 방은 점점 쓰레기로 채워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떡 벌어진 어깨를 앞, 뒤로 흔들며 걸어가서 할인마트에서 음식들을 사 올 때였다.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그녀를 보자, 돼지라고 놀려댔고 어떤 녀석은 배를 손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약 올렸다. 그놈들을 잡아 혼내주려 했지만 몸은 따라주질 않았다.

굴욕감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 음식은 배달로 바뀌었고 봉투, 플라스틱 컵, 캔깡통, 버려진 옷들 등등 쓰레기는 점점 쌓여갔다. 처음엔 며칠 후 한꺼번에 치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는 문을 열지 못하게 됐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어렵게 출퇴근을 하며 집에 머물 땐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고 하루를 보냈다.

그리곤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고르다 멈추고, 피드 속 ‘예쁜 여자들’을 스크롤하다가
눈물이 났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어...”

하지만 그 말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 버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몸, 모든 것이 공격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숨었다.

직장에도 병가를 내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배달음식이 도착하면 문 앞에 두고 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웃들이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 점을 인지할 때마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때 처음으로 ‘성형ㆍ지방흡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곤 인터넷 속 광고성 기사를 보았다.

“세계 최고의 성형외과, 당신의 인생을 바꿔드립니다.”

사진 속 의사의 미소는 신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 병원의 이름을 메모했다.
밤새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다,
새벽 네 시에 상담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클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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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기억들은 모두 현실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때의 자신이 만든 결과였다.
단 한 번, 누군가의 손에 맡기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순간.

그녀는 벽을 바라봤다.

그 벽 안 어딘가에,
그 미소를 짓던 의사가 있었다.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당신이 날 구하러 온 거예요... 아니면 없애러 온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