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이브'를 빗다(7)-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11. 21. 10:16


하루의 끝은 숫자와 그림으로 나타났다.
그녀의 심박수, 체온, 운동 시간, 체중 감소량이 벽의 모니터에 그래프로 떠올랐다.
그래프의 끝이 푸른 구간에 도달하면
문이 열렸고, 붉은 구간에 머무르면 문은 열리지 않았다.

푸른 구간이 며칠간 이어지던 어느 날,
배식구에서 처음 보는 접시가 등장했다.
하얀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음식.
고기와 채소, 소스 한 방울까지
모두 완벽하게 짜인 영양소와 칼로리가 정해진 듯 보이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몹시 먹음직스럽게 보였고 고급 레스토랑의 식탁 위처럼 음식은 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그걸 바라보다가
눈물이 났다.

그녀는 그날 그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다.
그건 단순히 맛이 아니라, ‘승인’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이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칼로리 소모에 실패한 날엔
배식구는 열리지 않았다. 조명은 희미하게 꺼졌고, 그녀는 어둠 속에서 물 한 모금 없이 밤을 보냈다. 그때마다 그녀는
벽을 향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오늘만은, 제발...”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벽은 신처럼 침묵했다.

그녀는 점점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몸이 아니라 그래프가 자신의 생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체중계 위에 오를 시간이 도래할 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기도하듯 숨을 죽였다. 그래프가 오르지 않으면, 그녀의 하루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몸무게와 운동량의 고통이 줄어들수록 불안은 커졌다. 몸은 가벼워지는데 마음은 무거웠다. 그녀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벽에 시선을 고정했다.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그녀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끝없는 공포감은 느끼지 못해도 칼로리가 소모되지 않아 하루를 굶는 것으로 마감하고 잠드는 시간이 더 두려워졌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벽면 스크린에 ‘오늘의 평가’라는 문구가 떴고,
그 아래에

“규정 미달ㆍ보상 중지"
"도달: 92%. 재시도 필요.”


...라는 숫자가 깜박였다.


조명은 꺼졌다.
물도, 음식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벽을 주먹으로 쳤다.

“나 열심히 했잖아!
배가 고파 미친 듯이 했다고!”


손이 아프도록 두드렸지만
벽은 여전히 침묵했다.
그녀는 주저앉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노력이나 감정이 아니었다. 오직 수치만이 진실이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운동을 시작했다. 호흡이 거칠었고, 눈물이 흘렀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벽이 열릴 때까지,
푸른 구간에 닿을 때까지.

새벽이 밝을 무렵
모니터의 불빛이 다시 켜졌다.

“목표 달성.”

배식구가 열리고,
이번엔 작은 은빛 트레이에
온기가 도는 식사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손을 떨었다.

그녀의 세계는 완성됐다.
굶주림과 보상, 실패와 승인,
모든 감정이 수치로 환원된 세계.

그녀는 어느새
살아남기 위한 인간’이 아니라
완벽을 증명하는 피조물’이 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