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이브'를 빗다(6)-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11. 18. 09:38


아침과 밤의 경계가 사라졌다.
조명은 시간 대신 명령으로 바뀌었다.
빛이 켜지면 일어나야 했고, 꺼지면 눕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벽의 목소리를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기상 후 10분 안에 준비하라.
호흡, 반복, 집중.”


처음 3일 동안 그녀는 거의 매일 토했다.
운동이 아니라, 통제였다.
한 걸음 늦으면 전원이 꺼지고,
식사 배급이 취소됐다.
몸은 통증으로 쑤셨고,
근육은 자신이 낯설게 변하는 걸 느꼈다.

그녀는 벽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 미쳤어요!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오직 기계음과 자신의 숨소리만 되돌아왔다.

그녀는 울다 지쳐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죽음’이 편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배식구에서 물 한 컵이 ‘’ 떨어졌다. 그 투명한 물컵이 바닥을 구르며 멈췄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자, 벽 안에서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 “죽고 싶단 생각이 들기 전에 끝까지 최선을 다 해라. 너에게 포기란 선택조차 필요 없는 사치에 불과하다. 죽기 싫다면 뛰어라!!.”

그녀는 그 말이 미친 것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납득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녀는 매일 죽지 않기 위해 움직였다.

먹기 위해, 숨기 위해, 살아남이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하루, 이틀, 열흘.

시간의 개념이 희미해졌다.
운동량은 점점 늘었고, 식사는 여전히 쑥과 마늘, 그리고 단백질 분말, 조금씩 제공되는 맛 좋은 음식. 무게는 서서히 줄은 듯싶었지만, 거울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벽의 모니터에 데이터를 띄워줬다.

체지방률, 심박수, 혈압,
모두 숫자로만 존재했다.

> “좋아지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그 말이 이상하게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그 목소리를 증오했지만,
그 목소리가 끊기면 불안했다.
그것이 그녀의 세계 전부였으니까.

그녀는 어느 날 운동 도중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 링거가 꽂혀 있었다.
몸이 떨렸고, 눈가에는 마른 소금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속삭였다.

“살고 싶어…”

그 말은 거의 무의식이었다.

그때 벽에서 또 그 목소리가 들렸다.

> “좋은 마음 가짐이다. 살아 있는 자만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으니.”

그녀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저항이 아니라, 순종에 가까운 감정.
그녀는 다음날부터 스스로 운동을 시작했다.
명령이 없어도,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하루가 끝날 무렵,
그녀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기분.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텅 비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