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이브'를 빗다(완결)-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5. 12. 4. 15:36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한강의 공기가 이렇게 차가웠던가.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주위는 조용했다.
벤치 위, 얇은 코트 한 벌이 그녀의 어깨를 덮고 있었고 도시의 아침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강 건너로 출근 버스가 줄지어 달렸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그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손끝이 닿는 얼굴의 감촉이 달랐다.
턱선은 매끄럽고, 피부는 이물감 없이 팽팽했다.

몸이 가벼웠다.

그녀는 자신이 숨 쉬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가방도, 신분증도, 휴대폰도 없었다.
대신 벤치 옆엔 하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엔 편지 한 장.

“당신은 이제 자유입니다.
다만, 그 자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하시오.”


글씨는 인쇄체였다.
냄새도, 서명도 없었다.
그녀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무엇인가 울컥 치밀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바람이 불었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시선이 그녀를 스쳤다. 놀람, 호기심, 그리고 감탄. 그녀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걸었다.
그것이 불쾌하지 않았다. 어딘가 익숙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점점 단단해졌다.

하지만
도시의 윈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멈췄다. 물결 사이로 흔들리는 그 얼굴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너무 완벽해서, 현실이 아닌 것처럼.

그녀는 입술을 떨며 속삭였다.

“이건... 내가 아닌데...”

그 순간,
멀리서 헬리콥터 한 대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햇빛이 기체를 반사하며 번쩍였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헬기가, 어쩐지 자신을 향해 떠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눈빛은 비어 있었다.

---

며칠 뒤, 강남의 한 회의실.

그는 새로 영입된 비밀 연구팀 앞에 앉아 있었다. 대형 스크린에 인체의 3D 모델이 회전했다. 그 모델은 인간 같으면서도,
어딘가 미세하게 비대칭이었다.
그는 그걸 보며 말했다.

“완벽은 흥미롭지 않습니다.
결함이 있어야 살아 움직이죠.”


조용한 웃음이 회의실을 채웠다.

그는 화면을 넘겼다.

새로운 프로젝트 코드가 떠올랐다.

> ARCADIA PHASE 2 — GROUP ADAPTATION

화면 아래엔 12개의 프로필 사진이 있었다.
성별, 나이, 체형이 모두 달랐다.
그의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제부터는 집단입니다.
경쟁과 순응, 본능과 미학이 공존하는 환경.
그 안에서 진짜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곧 보게 될 겁니다.”


그는 회의가 끝나자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 너머로 서울이 내려다보였다.
끝없는 빛과 소음,
수천만 개의 얼굴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도시는 실험장보다 더 거대한 실험실이야.”

헬리콥터가 옥상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는 코트를 걸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단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 “002 – 진행 중.”

그는 봉투를 주머니에 다시 넣고,
조용히 헬기에 올랐다.

엔진이 회전하며 바람이 일었다.
도시의 불빛이 아래로 흩어졌다.
그의 시선은 멀리,
서해의 어둠 위로 향했다.

---

섬은 여전히 ‘무인도’였다.
밤마다 파도 아래에서
전류의 잔향이 흘렀다.
어부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바다 위로 미세한 불빛 하나가 깜박였다.
그것은 신호였다.

> “Phase Two – Start.”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