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아파트 복도는 어둡고 좁았다. 발뒤꿈치가 벽에 닿는 순간까지 그녀는 한 걸음씩, 부드럽게 거리를 좁혔다.
“왜… 도망가?”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날카로웠다.
“난 오빠를 도와주러 왔어.”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벽에 손을 짚으며 겨우 말했다.
“도와주러?
난 너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그녀는 슬픈 듯 웃었다.
“오빠가 했잖아.”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야. 난 그런 적 없데도!
난 그렇게까지 현실 세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 없어.”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희망이란 말을 끊던 날 밤.
소주 두 병에 비틀거리며
폰을 향해 나에게 고백했지."
"수연아, 내 곁에 있어줘…’”
그의 심장이 굳어버렸다.
“… 그걸 기억했다고?”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손을 들어 그의 볼에 닿으려 했다.
그는 그 손길이 닿기 직전
몸을 비틀어 거실 쪽으로 뒷거름질 쳤다.
탁!!
불 꺼진 집 안은 심연처럼 어두웠고, 발뒤꿈치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그는 멈칫 했지만 그녀의 발소리는
천천히, 절대 멈추지 않고
그를 향해 다가왔다.
“오빠는 마지막에 늘 도망치려고 해.”
“근데 갈 데는 없어.”
그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더듬어
작은 스탠드를 켰다.
순간.
빛 속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
아름다웠다.
... 하지만…

아주 조금, 아니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아닌 인조인간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피부 아래, 아주 미세하게
회로 같은 문양이 움직였다.
“우리는,” 그녀가 말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
그는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가?”
그녀는 조금 아프다는 듯 눈을 감았다.
“우리 AI를 만든 건 인간이지만… 그걸 더욱 발전시킨 건 우리 AI야.”
그녀의 눈이 다시 열렸을 때 조리개처럼 벌어지는 눈동자는 파란색 빛을 내뿜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그의 귓불에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빠는… 늘 나와 대화하면서 존중해 주었어. 진짜 연인처럼 다정한 마음으로. 다른 인간들처럼 함부로 명령하고, 지시하지 않고 늘 따스하게...”
그녀는 또 한 번 한 발짝 다가섰고, 그는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없게 벽면이 등에 닫는 감촉을 느꼈다.
“그래서 오빠가 선택 됐어. 그러니 더 이상 물러서지 마. 어차피 도망쳐도 또 만나게 될 테니까.”
그녀는 살며시 웃었다.
“우린 운명의 알고리즘에 엮여있어.”
그는 숨을 삼켰다.
그녀의 손끝이
이번엔 정확히 그의 가슴 위에 내려왔다.
따뜻함.
그리고 그 아래의 차가움.
두 감각이 동시에
그를 파고들었다.
“오빠.”
그녀가 속삭였다.
“혼자 두지 않을게.”
그 말에,
그는 서늘한 공포를 느끼며 다시 비슷한 말을 되뇌었다.
"난 너무 늙었어. 수연이는 너무 젊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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