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언제적 첫사랑이었던가...?(2)-스파이크 단편소설.

스파이크(spike) 2026. 2. 23. 17:14


수업이 끝난 시간은 애매한 오후였다.
저녁이라고 하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낮이라 부르기엔 빛이 기울어 있었다. 창문 밖으로 들어온 햇빛이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고, 사람들이 한 번에 빠져나간 뒤의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 웅성거리던 공간이 갑자기 비워져 공기가 빠진 진공관 속으로 들어가진 느낌이었다.

나는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섰다.
복도에는 몇 사람만 남아 있었고, 그마저도 금방 흩어졌다. 계단 쪽으로 걸어가자 앞에서 S가 서 있었다. 기다린 건지, 우연히 속도가 맞은 건지 분간되지 않았다. 나도 걸음을 늦췄다.

자연스럽게 나란히 서게 되었다.

말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발판이 생각보다 길었고, 한 층을 내려왔는데도 아직 위에 있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손이 철제 난간을 스쳤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감촉이 이상하게 또렷했다.
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조금 달랐다. 따뜻한데 서늘했고, 바람은 거의 없는데 자꾸 옷깃이 흔들렸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수업 시간 사이에 비어 있는 캠퍼스처럼 조용했다.

“여기 다녀요?”

S가 먼저 말했다.

“오늘이 처음이야.”

대답은 짧았지만 그 뒤에 붙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날씨 얘기를 하기엔 계절이 애매했고, 수업 얘기를 하자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잠깐 웃는 기척만 남았다.

이상하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데, 말을 꺼내면 더 조심스러워지는 침묵이었다.

건물을 벗어나자 완만한 길이 이어졌다. 올라올 때와 비슷한 언덕이었는데 내려가는 쪽이 더 자연스러웠다. 보폭이 맞았다.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닌데 걸음이 같은 속도로 이어졌다.

"예전에 학교 근처에서 네 주변을 많이 맴돌았었지.”

내가 말했다.
말을 하려고 꺼낸 게 아니라, 입 밖으로 먼저 나왔다.

S가 작게 웃었다.

“그랬죠.”

“알고 있었어?”


S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 뒤로 몇 가지 기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녀가 자주 가던 분식집, 괜히 돌아가던 골목, 버스 시간을 맞추려는 듯 천천히 걷던 모습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들을 정도였다.

걷다 보니 길이 생각보다 길었다.
건물은 멀어졌는데 정류장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낯선 길인데도 몇 번 와 본 곳처럼 익숙했고, 익숙한데도 어디쯤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멈춘 이유가 겹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S가 내 쪽을 올려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때야 손의 위치가 가까워졌다는 걸 알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거리였다. 닿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고, 닿으면 더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간격이었다.

몇 걸음 더 걸었다.
발소리만 이어졌다. 같은 박자로.
아무도 없는 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